ADVERTISEMENT

[취재일기] 집회 주동자가 살인자?...노영민의 놀라운 어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 뉴스1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 뉴스1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이 4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8·15 집회 주동자를 ‘살인자’로 불렀다. 노 실장은 “허가되지 않은 집회로 7명(9월 30일 기준)이 죽었다”고 말했다. 노 실장은 국감을 마치기 전 “표현이 과했던 것 같다”고 한발 물러섰다.

국민의힘 살인자 발언 강하게 비판 

하지만 야당인 국민의힘은 5일 노 실장의 ‘살인자’ 발언을 강하게 비판했다. 성일종 비상대책위원은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은 대통령을 보좌하고 그 뜻을 전달하는 메신저다”며 “‘살인자’란 표현은 이 정권 사람들이 국민을 대하는 오만·교만을 보여준 명장면”이라고 꼬집었다.

앞서 9월 11일 문재인 대통령은 질병관리청을 깜짝 방문한 적 있다. 정은경 초대청장에게 임명장을 주기 위해서다. 수여식을 보려 순간적으로 직원이 몰렸다. 당시 전국적으로 거리두기 2단계가 내려졌을 때다. 성 비대위원은 “문재인 대통령은 (실내) 50명 이상 행사금지 기준을 어겼다”며 “그 행사를 주도한 사람들도 살인자인가”라고 따졌다.

윤희숙 의원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본인들 지지자가 아니면 국민을 살인자라 부르는 청와대”라고 꼬집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9월 11일 충북 청주 질병관리본부 긴급상황센터에서 정은경 초대 질병관리청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9월 11일 충북 청주 질병관리본부 긴급상황센터에서 정은경 초대 질병관리청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살인이 성립될 수 있을까 

단순히 야당의 정치공세로 볼 게 아니다. 노 실장의 살인자 발언은 여러모로 심각하다. 우선 ‘집회 주동자=살인자’가 성립되기 어렵다. 익명을 요청한 변호사는 “누군가를 죽일 의도로 집회를 열지는 않았을 것 아니냐”며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도 마찬가지다. 가해자(주동자)의 행위가 사망을 초래했다는 인과관계가 확실해야 한다. 성립되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앞서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 이만희(89·구속) 총회장 역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혐의 등으로 고발된 적 있다. 하지만 그에게 적용된 혐의는 감염병예방법 위반, 공무집행 방해 등이다. 살인은 빠졌다. 이 총회장이 사람을 죽이려 신천지 간부들과 공모, 방역당국에 교인명단 등을 축소해 보고했을 개연성이 성립되지 않아서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정은경 질병청장도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혐의로 고발된 적 있다. 올 2월 중국인 입국제한 조처를 하지 않아 코로나19 환자가 사망했다는 이유에서다. 이 혐의가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이유도 같다.

신천지 이만희 총회장 구속 전 모습. 연합뉴스

신천지 이만희 총회장 구속 전 모습. 연합뉴스

남 탓하기? 

노 실장은 4일 국정감사에서 “진보성향 단체의 집회에 간 사람도 살인자냐”고 묻자 “거기서는 (관련)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의 사망책임을 보수성향 단체에 떠미는 것처럼 들린다.

질병청은 특정 코로나19 확진자로 인한 사망통계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질병청 관계자는 “특정 개인으로 인한 사망으로 오해될 수 있는 소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만 질병청은 주요 감염집단(클러스터)별 사망 현황은 더러 공개해왔다. 예를 들어 A요양병원 환자 몇 명, 사망자 몇 명 식이다. 개별 환자와 사망자 간 관계는 역시 밝히지 않는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사람을 안 가린다. 보수·진보성향 단체들은 지난 8월 15일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집회,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부분의 집회가 불허됐지만 강행됐다. 이후 보수·진보단체 가릴 것 없이 확진자가 나왔다. 바이러스는 이처럼 방역의 약한 틈을 파고들 뿐이다. 노 실장이 클러스터 사망 통계와 바이러스 특성을 정치적으로 해석한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

전문가 "코로나 극복에 담합 중요한데"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정부가 7월 말에 교회 소모임 집합금지 해제하고 여행을 장려했다. 임시공휴일(8월 17일)도 지정했다. 그때 (감염) 씨앗이 뿌려졌고 8월 퍼진 것”이라며 “특정 집회 때문에 코로나19가 확산된 게 아니다. 상황이 겹쳤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 교수는 “누군가 의도적으로 코로나19에 걸려 퍼뜨리면 생물테러다”며 “그런 사람은 없을 것으로 본다. 코로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담합·연대가 중요하다. 남 탓을 해서는 방역에 도움 안 된다”고 덧붙였다.

세종=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