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단독] “거야 중심 합쳐달라” 朴서신, 선거법 위반 무혐의 왜

중앙일보

입력

유영하 변호사가 3월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편지 내용을 전달한 뒤 편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뉴스1]

유영하 변호사가 3월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편지 내용을 전달한 뒤 편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뉴스1]

“거대 야당을 중심으로 합쳐 달라”고 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 서신’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고발 사건에 대해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그 결정적 사유는 ‘특정 정당을 지지·추천한다는 의사를 명확히 나타낸 것으로 보기 어렵다’인 것으로 파악됐다.  선거운동의 개념을 엄격하게 봐야 한다고 본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도 수사 과정에서 중요하게 다뤄졌다.

검찰, 권선택 전 대전시장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朴 옥중서신, 선거운동 해당 여부 쟁점

박 전 대통령은 지난 3월 측근인 유영하 변호사를 통해 “기존의 거대 야당을 중심으로 태극기를 들었던 여러분 모두 하나로 힘을 합쳐줄 것을 호소드린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A4 용지 4쪽 분량의 서신을 공개했다. 총선을 한 달여 앞둔 시점이었고, 정의당은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며 박 전 대통령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의 옥중서신 공개가 선거운동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쟁점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했다. 검찰은 지난 2016년 8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권선택 전 대전시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에서 파기환송 결정을 내린 판결을 참조했다.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선거운동에 대해 “특정 선거에서 특정 후보자의 당선 또는 낙선을 도모한다는 목적 의사가 객관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행위”라고 규정했다. 대법원은 선거운동 해당 여부는 외부에 표시된 행위를 대상으로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봤다. 선거운동의 개념을 제한적으로 엄격하게 봐야 한다는 취지라는 게 법조계 분석이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이 옥중서신 공개 외에 다른 행동은 없었으므로 서신 내용과 표현, 당시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처분을 내리기로 했다.

김종민 당시 정의당 부대표(가운데)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기 위해 지난 3월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들어서고 있다. [뉴스1]

김종민 당시 정의당 부대표(가운데)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기 위해 지난 3월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들어서고 있다. [뉴스1]

검찰 “지지·추천 의사 명확지 않아” 판단

검찰은 서신 내용 중 ‘기존의 거대 야당을 중심으로 태극기를 들었던 여러분 모두 하나로 힘을 합쳐줄 것을 호소드린다’ 부분에서 ‘거대 야당’을 20대 국회에서 113석을 점유하던 당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을 염두에 두고, 지지해줄 것을 의미했다고 볼 여지도 있다고 봤다. 다만 서신에서 21대 국회의원 선거 및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에 대한 명시적인 언급이 없고, 박 전 대통령이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를 지지·추천하거나 권유하는 표현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서신에서 ‘거대 야당’에 대한 실망의 표현도 담겨 있는 점 등에 비춰보면 박 전 대통령이 미래통합당을 지지한다는 의사를 명확히 나타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검찰은 아울러 ‘보수 진영이 분열하지 말고 단합해 달라’는 서신 내용 등은 당시 여야 상황에 비춰 다의적(多義的)인 해석이 가능하다고도 봤다.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특정 정당 또는 후보자의 당선 도모 목적이 있었다고 명백하게 인식될 만한 객관적인 사정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다.

당시 미래통합당이 21대 국회의원선거 지역구 후보자 대다수를 확정하지 못한 채 공천 절차가 진행 중이었던 상황 등도 고려됐다. 박 전 대통령이 특정 후보자를 위한 선거운동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2017년 6월27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2017년 6월27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무혐의 처분…“엄격한 판단 기준” 분석도

수사를 맡은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부장 양동훈)는 이같은 내용을 종합해 지난달 13일 박 전 대통령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고발 사건을 무혐의 처분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검찰이 엄격한 기준으로 판단을 내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당시 총선을 코앞에 둔 시점이었고, 표현 등에 비춰보면 박 전 대통령 서신 내용이 특정됐다고 볼 여지도 있다”며 “검찰이 판례 등을 들며 엄격한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나운채 기자 na.uncha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