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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가 키운 인사청문회…文, 조국 임명땐 "인재발탁 쉽지 않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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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해야할 사람들이 청문회를 지켜보며 오히려 나서는 것을 기피하게 될까 걱정된다.”

“좋은 인재를 모시기가 정말 쉽지 않다. 청문회 기피현상이 실제로 있다.”

붙여놓으면 공감이 흐르는 대화처럼 보이는 말 중 앞엣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뒤엣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한 말이다. 
박 전 대통령의 말은 2013년 1월 자신이 처음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했던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이 사퇴한 다음날 가졌던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의원들과 함께 한 오찬에서 나왔고, 문 대통령은 시정연설이 있던 지난달 28일 박병석 국회의장과의 환담 과정에서 이같이 말했다. 7년 여의 시간이 흐른 뒤에 두 사람이 인사청문회라는 한 가지 주제에 대해서 만큼은 의견 일치를 본 셈이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의 브리핑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인사청문회도 가급적 본인을 검증하는 과정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도 했다. “본인이 뜻이 있어도 가족이 반대해서 좋은 분들을 모시지 못한 경우도 있다”고 부연하면서다.박 전 대통령도 당시 “능력 검증보다 죄인 신문하듯 신상털기에 치중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는 말을 남겼다.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시정연설에 앞서 박병석 국회의장 등과 환담하고 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라임·옵티머스 사태 특검 수용을 요구하며 이날 사전 환담에 불참했다. 뉴스1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시정연설에 앞서 박병석 국회의장 등과 환담하고 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라임·옵티머스 사태 특검 수용을 요구하며 이날 사전 환담에 불참했다. 뉴스1

정세균 반대…노무현 고집, 박근혜 맞장구

국무총리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김대중 정부 때인 2000년에 도입됐지만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장관도 청문회 대상이 되면서 일이 커졌다.
2005년 1월 5일 임명된 이기준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서울대학교 총장 시절의 판공비 지출 문제로 닷새 만에 사퇴하자 노무현 대통령은 인사청문회 대상 확대 검토를 지시했다. 여기에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대통령께서 생각을 잘 하신 것 같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인사문제도 체계가 잘 잡히고 이번과 같은 혼선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여당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였던 정세균 총리는 능력 위주 인재 등용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 등을 들어 반대 의사를 청와대에 전달했지만 노 대통령은 3월9일 "국회의 인사청문회 대상을 국무위원까지 확대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못박았다. '투명사회협약' 조인식에서다. 문 대통령은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 비서관이었다.

2013년 1월 24일 당선인 신분이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초대 국무총리로 김용준 인수위원장을 지명하는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인수위 기자실을 향하고 있다. 당시 박근혜 정부 인수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던 진영 현 행정안정부 장관의 모습도 보인다. 뉴스1

2013년 1월 24일 당선인 신분이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초대 국무총리로 김용준 인수위원장을 지명하는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인수위 기자실을 향하고 있다. 당시 박근혜 정부 인수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던 진영 현 행정안정부 장관의 모습도 보인다. 뉴스1

문 대통령이 인사청문회에 대한 달라진 생각을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특히 지난해 9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을 강행할 때에는 “개혁성이 강한 인사일수록 청문회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다”며 “청문회 절차가 제도의 취지대로 운용되지 않고 있고 국민통합과 좋은 인재 발탁의 큰 어려움이 된다는 답답함을 토로하고 싶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과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임명할 때도 “험난한 청문회를 겪은 만큼 행정 능력, 정책 능력을 잘 보여달라”고 말했고, 유은혜 사회부총리를 임명하면서는 “청문회 때 많이 시달린 분들이 오히려 더 일을 잘한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있다”고도 말했다. 모두 야당의 반대로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됐던 인사들이다.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지난해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신임 장관 임명장 수여식에서 조국 신임 법무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지난해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신임 장관 임명장 수여식에서 조국 신임 법무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다음 정부에선 꼭…" 

문 대통령은 박병석 의장에게 “우리 정부는 종전대로 하더라도 다음 정부는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인사청문회 제도 개선이 이번 정부에선 요원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는 뜻이 전제된 표현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여당인 새누리당은 도덕성 검증을 위한 청문회를 비공개로 한다는 내용 등의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민주당은 “청문회의 취지를 부정하고 무력화하기 위한 것”이라며 반대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홍영표 의원 등 45명의 민주당 의원은 지난 6월 똑같은 내용의 법 개정안을 냈지만 입장이 바뀐 국민의힘은 “청문회 프리패스법으로 제2의 조국을 만들 속셈”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같은 공수 전환에 따라 돌변하는 정당들의 입장 때문에 2000년 인사청문회 도입 이후 지난달 30일까지 여야가 발의한 인사청문회법 개정안 162건은 청문 대상을 일부 조정하는 등의 내용을 제외하면 대부분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여야가 9월17일 서욱 국방부 장관에 대한 청문회에서 처음 도덕성 검증을 비공개로 진행한 것은 변화의 조짐으로 거론되곤 한다. “개인적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국방장관이 되면 군정권, 군령권 행사가 어렵기 때문에 비공개로 진행하자”는 여당의 요구를 국민의힘이 “다른 장관은 몰라도 국방부 장관은 특별하다”며 받아들인 결과였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문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해 “인사청문회가 공직사회의 도덕성을 한층 끌어올린 순기능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현재 청문회 기피현상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하면 그것은 결코 나라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음 정부라도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라는 말은 대통령의 진정성을 담은 발언이라고 생각해달라”고 덧붙였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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