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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손기정 유품 품은 체육공원 재개장…서울역 주차장은 '공중정원' 재탄생

중앙일보

입력

‘2시간 29분 19초 2’.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종목에서 한국인 최초의 금메달리스트가 된 고(故) 손기정 선수의 기록이다. 손기정이 당시 마라톤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골인한 약 2분 후에는 3위로 결승점을 통과한 또 다른 한국인이 있었다. 손기정의 양정고 선배인 남승룡 선수다.

 남승룡은 약 11년 후인 1947년 미국 보스턴마라톤에 출전해 후배 마라토너인 서윤복 선수가 우승할 수 있도록 도운 경쟁자이자 조력자가 된다. 서윤복은 이 대회에서 우승하며 해방 이후 국제 마라톤대회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금메달을 목에 건 최초의 선수가 됐다.

남승룡·서윤복도 있었다…국가대표 기린 손기정 체육공원 

고(故)손기정 선수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세계 신기록을 달성할 당시 직접 신었던 신발. 허정원 기자.

고(故)손기정 선수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세계 신기록을 달성할 당시 직접 신었던 신발. 허정원 기자.

 28일 오전 서울 중구 만리동 손기정 체육공원 내 '러닝러닝(Running Learning)센터'. 건물 2층에 들어서니 손기정과 남승룡, 서윤복, 황영조, 이봉주 등 역대 태극 마크를 달고 뛰었던 국가대표 마라톤 선수의 이름이 빼곡히 새겨진 깃발이 로봇팔에 걸려 흔들리고 있었다. 남승룡, 서윤복 선수가 입었던 최초의 대한민국 국가대표 마라톤 유니폼의 복원본도 함께 전시됐다.

 역대 국가대표 마라토너를 기념하는 공간이 생긴 건 서울시가 '서울역 일대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하면서다. 약 20년 넘게 축구장 중심의 동네공원으로 사용되던 손기정 체육공원이 주민편의를 위한 러닝트랙, 손기정 기념관, 어린이 도서관, 게이트볼장, 다목적운동장 등을 갖춘 공간으로 거듭난 것이다.

“청동투구 돌려달라” 손기정 자필 편지도

2년만에 재개장하며 새로이 생긴 러닝러닝(Running Learning)센터. 역대 국가대표 마라톤 선수들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사진은 이들의 명단이 새겨진 깃발이 로봇팔에 의해 흔들리는 모습. 허정원 기자.

2년만에 재개장하며 새로이 생긴 러닝러닝(Running Learning)센터. 역대 국가대표 마라톤 선수들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사진은 이들의 명단이 새겨진 깃발이 로봇팔에 의해 흔들리는 모습. 허정원 기자.

 이날 오후 서울시는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과 서양호 중구청장, 체육계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손기정 체육공원 재개장식을 열었다. 손기정 체육공원은 손 선수의 모교인 양정보고 부지에 1990년 근린공원으로 조성됐다 1997년에 체육공원으로 지정됐지만 20년이 넘도록 축구장 중심의 동네 공원으로 사용된 탓에 “공원조성의 취지가 퇴색됐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 서울시는 2017년부터 2년여에 걸쳐 핵심 시설인 손기정 기념관 등을 대대적으로 보강했다. 28일 찾은 기념관에는 베를린올림픽 당시 손기정 선수가 직접 신었던 신발과 목에 걸었던 금메달 등이 새로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올림픽 우승 부상(副賞)이었지만 손기정에게 전달되지 못한 청동투구를 돌려받기 위해 고인이 직접 썼던 서신과 여권 등도 직접 볼 수 있었다.

베를린올림픽 당시 월계관으로 만들어진 미국산 대왕참나무 묘목. 1936년 당시 우승 부상으로 주어졌고 손기정 선수의 모교인 양정고(현 손기정 체육공원)에 심겼다. 허정원 기자.

베를린올림픽 당시 월계관으로 만들어진 미국산 대왕참나무 묘목. 1936년 당시 우승 부상으로 주어졌고 손기정 선수의 모교인 양정고(현 손기정 체육공원)에 심겼다. 허정원 기자.

 기념관 앞에는 손기정이 받은 또다른 부상인 대왕참나무 묘목을 직접 심은 나무가 약 80년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고인의 유품 147점과 사진, 손 선수의 시각에서 베를린 올림픽을 재현한 영상물 등 총 214점의 전시물이 공간을 채웠다. 이 외에도 기존 축구장 둘레에 달리기를 할 수 있도록 러닝트랙 역시 새로이 보강됐고, 새로 생긴 러닝러닝센터에는 라운지·카페·라커룸·샤워실 등이 들어섰다.

주차장서 공중정원으로 재탄생한 옛 서울역 옥상  

 손기정 체육공원이 자리한 언덕에서 약 200m 거리에 위치한 서울로7017(옛 서울역 고가도로)에도 변화가 있었다. 서울로7017과 옛 서울역사 옥상을 연결하는 폭 6m, 길이 33m의 공중 보행로가 새롭게 개통했다. 보행로를 건너면 닿는 서울역사의 옥상은 기존 주차장에서 2300㎡(약 700평) 규모의 공중정원으로 변신했다.

약 700평 규모의 옛 서울역사 옥상 주차장이 옥상정원으로 재탄생했다. 새로이 개통한 공중 보행로를 통해 서울로7017에서 바로 이동할 수 있다. 옥상정원에서 열차를 이용할 수 있는 2층 대합실까지도 곧장 이동이 가능하다. 허정원 기자.

약 700평 규모의 옛 서울역사 옥상 주차장이 옥상정원으로 재탄생했다. 새로이 개통한 공중 보행로를 통해 서울로7017에서 바로 이동할 수 있다. 옥상정원에서 열차를 이용할 수 있는 2층 대합실까지도 곧장 이동이 가능하다. 허정원 기자.

 이날 찾은 공중보행로와 정원에는 잔디밭 사이로 꽃사과나무와 남산제비꽃 등 화초가 곳곳에 심어져 있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4층에 위치한 공중정원에서 2층으로 내려가면 곧장 KTX를 탈 수 있는 서울역 대합실, 플랫폼으로 이동할 수 있다”며 “올해 코로나19 여파로 열리지 못한 서울정원박람회가 내년에는 이곳에서 열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간 한쪽에는 시민들이 잠시 쉴 수 있도록 앉음벽과 벤치도 설치됐다. 2.4m 높이의 사각 프레임 위에는 인조식물 등이 있어 삭막하던 공간을 휴식 공간으로 바꿔 놓았다. 과거 옥상 주차장으로 차량이 오르내리던 폐쇄 램프에는 자갈·식물이 자리한 작은 정원이 눈에 띄었다. 파란 가을 하늘과 함께 서울 소공동 일대의 도심 풍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든 공간이다.

 오준식 손기정 체육공원 재개장 행사 총감독은 “효창공원, 남산을 잇는 보행로에서 많은 시민이 걷고 쉬며 삶의 활력과 위로를 얻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옛 서울역 옥상 주차장으로 차량이 오르내리던 폐쇄 램프. 자갈과 식물로 작은 정원 공간을 새롭게 조성했다. 허정원 기자.

옛 서울역 옥상 주차장으로 차량이 오르내리던 폐쇄 램프. 자갈과 식물로 작은 정원 공간을 새롭게 조성했다. 허정원 기자.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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