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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안에 붙은 담배 광고, 밖에선 하나도 안보이게 가려라?

중앙일보

입력

27일 오후 서울 강남의 대로변에 있는 A 편의점. 대각선으로 매장 내부 보면 계산대 위 담배 진열대의 광고를 볼 수 있다. 전영선 기자

27일 오후 서울 강남의 대로변에 있는 A 편의점. 대각선으로 매장 내부 보면 계산대 위 담배 진열대의 광고를 볼 수 있다. 전영선 기자

#27일 오후 서울 강남 논현동 대로변에 있는 A 편의점.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 형태의 좌석이 마련돼 비교적 공간 여유가 있는 이 편의점의 계산대와 바로 뒤의 담배 진열대는 전면 통유리창과 대각선을 이루고 있다. 편의점 밖 정면에서 2m 간격을 두고 매장 안을 보면 담배 진열대와 담배 광고판은 가구와 어묵조리 기구 등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오른쪽 끝으로 이동하면 담배 광고의 문구를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진열대가 선명하게 보인다.

#같은 동네 이면도로에 있는 B 편의점은 외부에서 대각선으로 서면 매장 계산대 뒤에 있는 담배 광고의 한 귀퉁이가 보인다. 다만 유리창에 각종 홍보물이 붙어 있어 온전히 보이지는 않는다. 이곳에서 골목으로 조금 더 들어간 위치에 있는 C 편의점의 경우 매장 구조가 독특하고 포스터 부착 위치가 절묘해 모든 각도에서 담배 광고의 80% 이상이 가려진다.

편의점 담배 광고, 밖에서 보이면 불법

현행 담배사업법 등에 따르면 편의점 등 담배 판매 소매점 외부에서 담배 광고가 보이는 것은 불법이다. 무분별한 담배광고 노출이 청소년의 흡연을 부추기거나 일반 소비자의 흡연 욕구를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의 사례로 든 편의점 3곳 모두 정도는 다르지만 모두 담배 광고를 노출해 법을 어겼다.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릴 수 있다. 불법 광고 시정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1년 이하의 영업정지 처분도 가능하다.

27일 서울 강남 B편의점 출입문에 각종 홍보물이 붙어있다. 홍보물에 가려 담배 진열대의 상당부분은 보이지 않지만, 이 정도로 가리면 되는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규정은 없다. 전영선 기자

27일 서울 강남 B편의점 출입문에 각종 홍보물이 붙어있다. 홍보물에 가려 담배 진열대의 상당부분은 보이지 않지만, 이 정도로 가리면 되는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규정은 없다. 전영선 기자

담배 판매 소매점의 광고 외부 노출 관련 규정은 2011년부터 있었지만, 누구도 단속하지 않아 유명무실했다. 앞으로는 달라진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흡연율을 낮추기 위한 금연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담배 광고와 판촉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각 지방자치단체는 다음 달 1일부터 두 달의 계도기간을 거쳐 내년 1월부터 담배 광고물 외부 노출을 단속할 예정이다. 점포에 투명 유리를 쓰는 전국 편의점 5만여곳은 모두 대상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랜차이즈가 아닌 동네 가게 등 다른 담배 소매점도 마찬가지다.

통상 계산대 뒷편 담배 진열대 위에 있는 광고가 편의점 경계 1~2m 거리에서 식별할 수 있으면 법을 어긴 것으로 간주한다. 다만 영업소 외부 보행로 폭이 1m 미만이면 보행로 중간 지점에서 판단하기로 했다. 복지부는 당초 지난 5월부터 단속을 할 예정이었지만, 편의점 업계 반발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기인 점을 고려해 단속 시기를 6개월 연기했다.

편의점 업계는 여전히 반발하고 있다. 우선 객관적인 기준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불만이다. 계상혁 전국편의점가맹점주협회장은 ”정확히 어떻게 보이지 않게 하라는 지침도 없이 무조건 단속부터 하겠다는 것은 말이 되질 않는다”며 “복지부와의 간담회에서 ‘단속하지 않는다는 감사원 지적에 따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하는 데 행정력 낭비”라고 말했다.

"차라리 광고 다 떼어내라고 하던가"

규정이 모호한 만큼 단속원의 판단과 성향, 의도에 따라 위법과 합법 여부가 엇갈릴 수 있다는 점도 불만이다. 특히 업계는 편의점 안에 들어오면 누구나 볼 수 있는 광고를 길에서는 보이지 않게 하라는 조치를 수긍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계 회장은 “차라리 매장에서 담배 광고를 없애라고 하면 복지부가 이 문제를 정말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수긍하겠는데, 지금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으로만 보인다”고 지적했다.

서울 종로구의 한 편의점 계산대에 마련된 담배 진열대와 광고. 중앙포토

서울 종로구의 한 편의점 계산대에 마련된 담배 진열대와 광고. 중앙포토

장기적으로 매출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도 걱정거리다. 편의점의 담배 매출 비중은 평균 40%에 달하지만, 마진이 거의 없다. 이 때문에 편의점에서 담배는 집객 효과를 위한 미끼 상품의 일종이다. 대신 편의점은 담배 회사로부터 매달 20만~60만원의 광고비를 받는다. 점주들 사 이에선 앞으로 광고를 가리라고 단속하면 어려운 형편에 이 돈 마저 사라질 것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편의점 점주는 지난 12일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편의점 점주를 사지로 내모는 담배 광고 단속은 철회되어야 한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 점주는 “해당 조항(담배광고물 외부노출 금지)은 보건복지부조차도 10여년간 집행하지 않을 정도로 사문화되어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 “현실적 문제와 편의점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단지 법 조항만 집행하겠다는 행정편의주 의”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로 적자를 보면서 근근이 버티고 있는데, 정부의 행정편의주의 발상으로 매달 30만원 정도의 고정 수입이 날아가게 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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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편의점 업계도 청소년 보호 등을 위한 담배 광고 단속 취지에는 공감한다. B 편의점주는 “구청이나 관계자들이 광고를 보이지 않게 조치하라고 하면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편의점주는 “어떤 광고를 철거하라는 건지 지침을 명확히 하고 단속 시기를 업계와 조율해 주길 바란다”고 했다.

편의점 내부 안 보이게? 묘수는 무엇 

그러나 계도기간 시작 닷새 전인 27일 현재까지 정부도 편의점 본사도 담배 광고를 숨길 묘수를 찾지는 못했다. 편의점 유리를 불투명 시트지로 가리는 방법이 거론되지만, 심야에 매장 안이 보이지 않아 위험할 수 있어 문제다. 한 편의점 프랜차이즈 본사 관계자는 “복지부에서 정확한 지침을 마련하면 따르거나 반대하거나 행동을 취할 텐데 지금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전영선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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