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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흑인 주인공 픽사 애니…“한국말 하는 영혼도 나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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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픽사 애니메이션 사상 첫 흑인 주인공인 ‘소울’의 음악교사 조(사진)는 배우 겸 가수 제이미 폭스가 목소리 연기했다. 조가 사는 뉴욕 흑인 사회의 일상도 담겼다. [사진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픽사 애니메이션 사상 첫 흑인 주인공인 ‘소울’의 음악교사 조(사진)는 배우 겸 가수 제이미 폭스가 목소리 연기했다. 조가 사는 뉴욕 흑인 사회의 일상도 담겼다. [사진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인사이드 아웃’이 우리의 감정을 탐구했다면 ‘소울’은 우리가 누구고 어디서 왔는가를 한층 더 깊이 파고들었어요. 12살 때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지금도 여전히 나를 ‘나’라고 부르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말이죠.”

‘소울’ 만든 피트 닥터 감독 인터뷰 #부산영화제서 아시아 최초 상영 #‘인사이드 아웃’으로 한국에도 팬덤 #저마다 다른 개성은 어디서 오는지 #출생 전 영혼이 머무는 세상 그려

지난 5일 화상 인터뷰로 만난 디즈니·픽사의 새 애니메이션 ‘소울’의 피트 닥터(52) 감독은 “올해 23살인 아들이 태어났을 무렵 떠올린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영화”라고 밝혔다. “우리의 인격은 세상과 상호작용하며 형성된다고 여겨져 왔지만 모두 저마다 독특하고 특정한 개성을 타고나는 것도 분명하다. 그런 개성은 어디서 올까. 영화 ‘소울’에선 영혼들이 태어나기 전 준비 과정을 거친다고 상상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독특하고 따뜻한 상상으로 애니메이션의 경계를 넓혀온 픽사 스튜디오의 대표주자다. ‘코코’의 리 언크리치 감독 등과 공동 연출로 악몽 속 괴물들의 별난 우정을 그린 ‘몬스터 주식회사’(2001)가 장편 데뷔작. 은퇴한 노인의 모험을 그린 ‘업’(2009)과 사람의 감정을 의인화한 ‘인사이드 아웃’(2015)으로 잇따라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받았다. 2년 전부터는 제니퍼 리 감독(‘겨울왕국’)과 공동으로 픽사의 콘텐트 최고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이번 5년만의 신작에선 영혼(Soul·소울) 세계를 새롭게 해석했다. 주인공인 중학교 밴드 교사 조 가드너(제이미 폭스, 이하 목소리 출연)는 평생 꿈꿔온 뉴욕 최고 재즈클럽에서 연주할 기회를 얻지만 그날 그만 맨홀에 빠져 영혼들이 머무는 ‘태어나기 전 세상’에 가게 된다.

올해 코로나19로 개최 불발된 칸영화제 공식 선정작에 포함된 데 더해 26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아시아 최초로 상영했다. 오는 12월 OTT 디즈니플러스 직행이 결정되며 언론에 사전 공개된 미국에선 주인공이 흑인인 최초의 픽사 애니메이션으로도 주목받았다. 최근 할리우드 다양성 물결 속에 “디즈니의 역대 시도 중 가장 실존적으로 야심찬 영화”(더 랩), “(삶과 죽음에 관한) 슬프고 재미있고 아름다운 깨달음”(타임) 등 언론의 호평을 받았다.

‘인사이드 아웃’에 이어 5년만에 신작을 낸 피트 닥터 감독. 미국에 있는 그를 화상으로 만났다.

‘인사이드 아웃’에 이어 5년만에 신작을 낸 피트 닥터 감독. 미국에 있는 그를 화상으로 만났다.

앞서 지난달 전세계 미디어 대상의 온라인 행사에서 공개된 짧은 영상에선 조가 지구로 돌아가려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담겼다. ‘인사이드 아웃’ 팬이라면 반가운 공통점도 있다. ‘소울’의 옅은 푸른색 물방울 모양 영혼들은 ‘인사이드 아웃’의 주인공 ‘슬픔이’의 먼 친척뻘처럼 닮았고, 평면과 입체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추상적인 비주얼 실험도 흥미롭다. 피트 닥터 감독은 인간의 본질에 대한 전작의 탐구를 더 파고들었다면서도 “속편은 아니다”라고 했다.

사전 공개된 영상에서 한국말 하는 영혼도 있더라.
“우리 영화엔 다국적 대사가 가득하다. 영혼들이 ‘태어나기 전 세상’으로 가는 장면에선 한국인 스토리 아티스트가 ‘내 바지 어디갔어!’란 재밌는 대사를 해줬다. 관객한테 이곳이 전 지구에서 온 사람들로 가득한 세계란 걸 보여주고 싶었다.”

일종의 사후세계인 ‘태어나기 전 세상’이 우주의 어떤 공간처럼 그려지는 게 흥미롭다. 그곳에서 영혼들은 지구를 내려다본다. 다른 영혼들의 행렬에서 도망친 조는 오랫동안 환생을 거부해온 영혼 ‘22’(티나 페이)를 만나며 삶의 또 다른 측면에 눈뜨게 된다. 새로 태어나기 전의 영혼에 이름 대신 숫자를 붙인 이유는 “한국이든 러시아든 지구상 어디든 갈 수 있어서”라고 설명한다. 600억, 700억 번째 영혼들이 환생하는 마당에 22는 지구를 거부한다. 닥터 감독은 “그녀는 허무주의자다. 지구에서 많은 고통, 시련, 실망을 봤다. 낙관주의자인 조가 그녀를 설득해 가는데 이건 정말 힘든 논쟁”이라면서 “어떤 것에 불평하지만 돌아서면 또 인생은 멋지지 않나. 무엇이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지 둘의 논쟁을 통해 균형 있고 재밌게 보여주려 했다. 어린이 애니메이션인 만큼, 재미있어야 했다”고 돌이켰다.

주인공이 흑인이 된 계기는 운명적이다. 닥터 감독은 “조가 애니메이터라면 어떨까? 과학자거나 사업가라면?” 고민하던 시기 재즈 피아니스트 허비 행콕이 트럼펫 연주자 마일스 데이비스와의 콘서트를 회상하는 마스터클래스 영상을 봤단다. “그는 자신이 예상치 못한 코드를 연주했을 때 ‘모든 걸 망쳤다’고 생각했지만 ‘마일스는 그것을 새로운 일로 받아들였다’고 했죠. ‘마일스는 재즈 뮤지션이 항상 시도해야 할 일을 했고 모든 순간을 가치 있게 만들려고 했습니다’라고요. 훌륭한 스토리일 뿐 아니라 우리영화의 엄청난 메타포가 됐죠. 그래서 조는 음악가가 됐고 훌륭한 재즈 뮤지션들이 제작에 합류했어요. 그렇게 우리 캐릭터는 흑인이 됐죠.”

픽사 안팎의 흑인 창작자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극중 조처럼 40대 흑인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켐프 파워가 공동 연출자로 합류했다. 멕시코 문화를 그린 픽사 애니메이션 ‘코코’ 당시 제작진에 라틴계 스태프가 많이 참여한 것처럼. 그 결과 영화엔 뉴욕 흑인 이발소 등 일상 풍경도 섬세하게 담겼다. 재즈음악에 참여한 뮤지션 존 바티스트의 피아노 연주를 손가락 움직임 하나하나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는 장면, 황금기 재즈 명곡들의 향연도 이 작품의 묘미. 디즈니플러스가 진출하지 않은 한국에선 극장에서 만날 가능성이 크다. 홍보사에 따르면 내년 초 개봉을 준비 중이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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