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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비료 입찰 300억 더 써 혼날 각오했는데 “신경쓰지 마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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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건희 1942~2020 

1987년 이건희 삼성 회장이 취임한 후 27년 동안 7명의 비서실장이 그를 보좌했다.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삼성을 초일류 기업으로 바꾼 ‘신경영’의 초창기 3년간(1993년 10월~1996년 12월) 이 회장 곁을 지켰다. 현 전 회장은 “이건희 회장 같은 경영인이 한두 사람만 더 나와도 대한민국 경제는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7월 출간한 자서전 『위대한 거래』에 이 회장의 알려지지 않은 일화를 담았다. 현 전 회장의 설명을 바탕으로 일부를 소개한다.

현명관 전 비서실장이 본 이 회장 #“사고 싶은 물건이니 당연” 통 큰 모습 #“질로 승부” 지시 “양도 중요” 의견에 #신경영선언 전날 포크 던지며 격노

현명관

현명관

◆ 한국비료 인수에 300억 오버슈팅= 1994년 초여름, 한국비료의 민영화를 위한 매각 공고가 떴다. 한국비료는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1966년 삼성이 국가에 반강제로 헌납한 회사였다. 당시 현명관 삼성 비서실장이 보고하자 이 회장은 “반드시 찾아오라”고 명했다.

금강화학과 대림산업도 한국비료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삼성 경영진은 고심 끝에 2300억원에 입찰, 결국 인수에 성공했다. 삼성정밀화학(현재는 롯데정밀화학)이 그 회사다. 하지만 경쟁사 응찰가는 2000억원. 300억원이나 ‘오버슈팅’했다. 현 실장은 불호령과 문책을 각오했지만 회장의 반응은 이랬다. “사고 싶은 물건을 사는데 비싸게 주고 사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신경쓰지 마세요.” 현 전 회장은 “이 회장은 통 큰 경영자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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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경영 선언 하루 전날 무슨 일이= 1993년 6월 6일, 삼성의 사장단 100여 명이 독일 프랑크푸르트 캠핀스키 호텔에 모였다. ‘신경영 선언’ 하루 전날이었다. 호텔 회의장엔 녹음된 이 회장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 회장은 지시가 경영진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왜곡되는 일이 반복되자 직접 녹음해 전달하는 방법을 자주 썼다. “시간이 걸려도 질로 승부해야 합니다. 당장 매출이 줄어도 할 수 없어. 도전해야 해.” 그런데 직후, 이수빈 당시 비서실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회장님, 하지만 양도 중요합니다. 양적 성장을 통해 흑자를 만들고 질로 나아갈 바탕을 만들어야….” 그 순간 회의장엔 ‘탕! 쨍그랑’ 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이 회장이 테이블에 있던 포크를 바닥에 내동댕이치는 소리였다. 현 전 회장은 “비서실장은 사장단의 보편적인 생각을 대신 전달한 것인데 이 회장이 격노했다”며 “당시 사장단조차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 승지원에서의 항명, 그리고 반전=승지원은 회장의 집무실이자 삼성의 영빈관이다. 삼성의 대소사가 대부분 이곳에서 결정됐다. 이런 곳에서 현 전 회장은 삼성시계 사장 시절, 이 회장에게 항명에 가까운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삼성시계는 일본의 초정밀 기술을 배우기 위해 일본 세이코와 합작한 회사다. 이 회장이 설립을 주도했고, 직접 챙기던 곳이다. 이런 회사에 불만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당시 분위기에선 ‘불경’이었다.

하지만 현 전 회장은 “세이코가 기술이전도 제대로 안 해주면서 불공정한 거래를 요구한다”며 “이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두가 ‘역린’을 건드렸다고 느꼈을 때, 이 회장은 “누가 (해결)하지 말라고 하는 사람 있었어?”라며 현 전 회장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현 전 회장은 “이 회장의 리더십은 기분에 따라 불호령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항명처럼 보이는 말도 귀담아듣고 냉철하게 판단하는 데 있었다”고 말했다.

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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