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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월 딸 살인엄마 7년형 안돼"…대법 61년만에 판례 바꿨다

중앙일보

입력

생후 7개월 여자아이를 아파트에 반려견 2마리와 함께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부모 A(21·왼쪽)씨와 B(19)씨. B씨는 올해 항소심 선고 때 성년이 됐다. [연합뉴스]

생후 7개월 여자아이를 아파트에 반려견 2마리와 함께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부모 A(21·왼쪽)씨와 B(19)씨. B씨는 올해 항소심 선고 때 성년이 됐다. [연합뉴스]

대법원이 불이익변경금지 원칙에 대한 판례를 61년만에 변경하며 7개월 영아 살해 피고인의 형량을 더 높게 선고할 수 있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선 이번 사건에서 항소를 하지 않은 검찰의 실수가 의도치 않게 새로운 대법원 판례를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

檢실수→의도치 않은 판례 변경 

22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7개월 된 딸을 방치해 살해한 영아의 엄마 A씨(19)가 미성년자였던 1심에서 부정기형(단기 7년~장기 15년)을 선고받은 뒤, 검찰이 항소하지 않아 성년이 된 A씨에게 최단기형인 7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지난 3월, 2심 재판장이 "검사님이 (항소를 안해) 실수하셨다"며 검찰을 공개적으로 질책했던 판결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을 포함해 대법관 11명이 함께한 다수의견에서 대법원은 "부정기형을 받은 뒤 성년이 된 피고인만 항소한 상황에서 법원은 최단기형이 아닌 단기와 장기의 중간형을 기준으로 정기형을 선고해야 한다"는 새로운 판례를 제시했다.

부정기형은 19세 미만 소년범에게 형량을 특정하지 않고 기간을 정해 내리는 판결이며, 정기형은 성인에게 특정 형량을 정해 선고하는 판결을 뜻한다. 현재까지 법원은 1심에서 부정기형을 선고받은 미성년자가 항소심 중 성년이 될 경우, 검찰이 항소하지 않는 한 불이익변경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 부정기형의 최단기형을 정기형으로 선고해왔다.

이번 판결에서 다수 의견을 주도한 이기택 대법관의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번 판결에서 다수 의견을 주도한 이기택 대법관의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영아 살해 미성년 엄마, 형량 올라갈 듯  

하지만 이번 판결을 따를 경우 1심에서 단기 7~장기 15년을 선고받은 A씨에게 항소심 재판부는 검찰의 항소가 없더라도 7년이 아닌 7년과 15년의 중간값인 징역 11년까지 선고할 수 있게 된다. 법관의 양형 재량이 기존 7년에서 7~11년으로 늘어나는 것이다. 이는 1959년 이후 이어진 한국 법원의 '단기설 판례(선고형의 경중은 부정기형의 단기를 기준으로 판단한다)'를 뒤집는 것이기도 하다.

대법원은 이날 판결에서 부정기형을 받은 소년범 피고인 중 60% 이상이 장기형을 모두 채우고 나온다는 통계까지 들며 "불이익변경금지 원칙은 어떠한 경우에도 피고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부여하는 원칙은 아니다"며 판례 변경의 이유를 밝혔다. 또한 양형의 기준을 중간값으로 설정하는 것이 소년법이 채택한 부정기형의 목적과 책임주의 원칙에 부합한다고 봤다. 범죄를 저지를 때부터 성인이었던 남편 B씨(21)의 경우 원심의 징역 10년이 그대로 확정됐다.

대법원 1부에 배당됐던 이번 사건은 주심인 김선수 대법관과 같은 소부에 속한 이기택 대법관의 의견이 엇갈리며 전원합의체에 회부됐다. 김 대법관은 소수의견인 반대의견에 섰고, 이 대법관은 다수의견은 물론 보충의견까지 썼다.

이번 사건의 주심이었지만 소수 의견에 선 김선수 대법관의 모습. [중앙포토]

이번 사건의 주심이었지만 소수 의견에 선 김선수 대법관의 모습. [중앙포토]

전원합의체 심리에 참여한 13명의 대법관 중 반대의견에 선 건 김선수·박정화 대법관 뿐이었다. 박상옥·민유숙·이동원 대법관은 다수의견에 서며 중간값이 아닌 부정기형의 장기형을 기준으로 정기형을 판단해야한다는 별개 의견을 내놨다. 법조계에선 대법원이 촉법소년 논란 등 갈수록 잔인해지는 소년범들 범죄에 대한 양형 강화의 필요성을 고려한 판결을 한 것이라 평가했다.

인천 부부 영아 살인사건의 전말

이 판례 변경을 이끈 인천 부부의 영아 살인 사건은 2019년 6월 2일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18세로 미성년자였던 엄마 A씨와 남편 B(21)씨 없이 5일간 방치됐던 7개월 영아 C씨(법원은 피해자라 지칭)는 현관문 앞 종이 박스에 담겨 숨진 채 외조부모에 의해 발견됐다.

이 부부가 친구들과 해수욕장에 놀러가고 술자리를 가지는 동안 아이는 굶주림과 탈수에 의해 사망했다. 함께 방치된 애완견 두 마리에 물려 얼굴과 머리 등엔 심한 상처도 있었다. 검찰은 아이가 애완견의 똥과 오줌, 부부가 버린 쓰레기로 가득찬 집에서 완전히 홀로 있었던 시간을 5일, 최소한의 돌봄도 받지 못한 시간은 8~9일이라 추정했다.

아이가 숨진 사실이 알려진 뒤 두 부부는 아동학대치사혐의로 긴급체포돼 구속됐다. 조사 초기엔 두 사람은 "마트를 잠깐 다녀온 사이에 아이가 애완견에 물려 사망했다"는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경찰은 이 부부에게 아동학대치사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부부가 "아이가 죽었을지도 모른다""죽었겠네" 등의 문자를 주고 받은 점, 숨진 영아를 종이 상자에 옮긴 뒤 방치한 점을 근거로 살인과 사체유기 혐의도 적용했다.

생후 7개월 된 딸을 아파트에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부모 A(21·왼쪽)씨와 B(19)양이 지난해 6월 14일 인천 미추홀경찰서를 나와 인천지방검찰청으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생후 7개월 된 딸을 아파트에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부모 A(21·왼쪽)씨와 B(19)양이 지난해 6월 14일 인천 미추홀경찰서를 나와 인천지방검찰청으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재판서도 혐의부인, 法은 모두 유죄 인정

살인 혐의가 적용된 이 부부는 재판에서 아동학대치사 혐의는 인정했다. 하지만 "살인의 고의는 없었다""장례 절차가 지연됐을 뿐 사체 유기는 하지 않았다"며 살인과 사체유기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1·2심은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모두 유죄였다.

1심은 성년인 남편 B씨에겐 징역 20년을, 선고 당시 19세 미만 소년범이었던 아내 A씨에겐 현행법에 따라 부정기형인 단기 7~장기 15년형을 선고했다. A씨의 경우 수감 태도에 따라 최소 7년에서 최대 15년까지 복역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검찰의 실수와 판사의 지적 

문제는 항소심에서 벌어졌다. 검찰은 1심의 형량에 만족한다며 항소하지 않았다. 실수였다. 해가 바뀌며 A씨는 항소심 선고 시점에 성년이 됐다. 법원은 1심에서 부정기형이 선고된 미성년 피고인이 성년이 되면 정기형을 선고해야 한다. 단기나 장기 없이 남편 B씨처럼 특정 형량을 선고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검찰이 항소하지 않고, 피고인만 항소했을 경우 항소심 재판장은 피고인에게 불이익을 줄 수 없다. 원심보다 높은 형량을 선고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 원칙에 의해 은수미 성남시장도 항소심에서 당선무효형을 받았다가 극적으로 살아났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22일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이 22일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2심 재판장은 법정에서 "검사님이 (항소를 안해) 실수하신 것 같다"며 아내 A씨에게 7년형을 선고했다. 1심에서 단기 7~장기 15년을 받았기에, 최단기형인 7년이 피고인의 불이익 기준이 된다는 종례의 '단기설 판례'를 따랐다. 수도권에 근무하는 현직 판사는 "A씨는 1심 형량에 따르면 이론적으론 7년만 복역하고 석방될 수 있다. 그래서 최단기형인 7년이 2심 형량의 기준이 된 것"이라 말했다.

대법원 판례 변경에 판사들은  

하지만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기존 판례를 뒤집으며 A씨는 다시 한번 재판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이날 대법원의 결정에 대해 한 현직 부장판사는 "대법원에서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법적 안정성 측면에선 다소 받아들이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지방법원에 근무하는 다른 현직 판사는 "피고인이 미성년인 경우 판사가 어떤 시점에 판결을 하느냐에 따라 형량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며 "최단기형을 일괄적 잣대로 삼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어왔다"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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