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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요즘 자주 하는 말 “파이낸셜 스토리 만들자”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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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최태원. [연합뉴스]

최태원. [연합뉴스]

SK하이닉스가 인텔의 낸드 플래시 메모리 사업 부문을 역대 국내 기업 인수·합병(M&A) 사상 최고 액수인 10조3104억원에 인수하게 된 배경에는 최태원(60·사진) SK그룹 회장이 추진 중인 그룹 비즈니스 모델 고도화가 자리잡고 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키울 사업은 확실히 키우고, 시장 내에서 열위에 있거나 상대적으로 시너지가 덜 나는 사업의 경우 빠르게 정리하는 작업을 진행한다는 의미다.

매력 있는 기업 돼야 재무도 안정 #유망사업 빨리 키우려 ‘선택과 집중’ #SK바이오랜드 팔아 모빌리티 투자 #배터리 분리막 분야 떼내 IPO 추진 #T맵도 모빌리티 전문 회사로 육성

최 회장으로선 반도체 판에서만 SK하이닉스 인수(지분 21.05%·인수가 3조4267억원), 2018년 도시바 메모리 지분 인수(15%·약 3조9160억원)에 이어 세 번째 승부수다. 시장에선 모두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재계에선 그간 실탄이 풍부한 SK그룹이 인수합병(M&A)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하지만 10조원을 훌쩍 넘어서는 역대 최대 M&A는 재계의 관측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21일 SK그룹에 따르면 최 회장은 최근 부쩍 “파이낸셜 스토리(Financial Story)를 만들자”는 말을 강조해왔다. 최 회장은 이 단어를 지난 6월에 열린 2020 확대경영회의에서 처음 언급했다. 최 회장이 생각하는 파이낸셜 스토리는 자산 효율화 등 재무 관점을 넘어 SK그룹 내 계열사들이 시장에서 매력이 있는 기업이 돼야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이런 매력이 있다면 당연히 재무적 안정도 이뤄진다.

최 회장은 이를 위해 ‘선택과 집중’ 그리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SK그룹의 비즈니스 모델을 재편하는 큰 방향으로 꼽고 있다. 미래세대가 공감·호응하지 않는 제품과 서비스를 공급하는 기업은 생존이 어렵다는 판단이다.

인텔의 낸드 플래시 메모리 사업 부문 인수는 대표적인 선택과 집중 전략이다. 낸드 플래시 메모리가 반도체 업계 내에서 상대적으로 매력이 떨어진다고는 하지만, 업계 최상위권 사업자가 되면 그만큼 누릴 수 있는 이익도 커진다. SK이노베이션이 2020년까지 환경에 끼치는 긍정·부정적 영향을 합쳐 0으로 만드는 ‘그린 밸런스 2030’ 전략을 추진하는 건 대표적인 ESG 경영이다.

SK는 반도체 사업 외 다른 사업 분야에서도 선택과 집중이 활발하다. 한 예로 SKC는 자회사인 SK바이오랜드 지분 전량을 현대HCN에 매각하고 여기서 마련된 재원은 모빌리티 등 미래 사업에 투자하기로 했다. SKC는 지난 6월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동박을 만드는 SK넥실리스에 1200억원을 투자해 전북 정읍 공장을 증설하고 있다. 지난 3월 815억원을 투자해 증설 계획을 발표한 뒤 석 달 만에 내려진 결정이다.

SK이노베이션도 배터리 분리막(LIBS) 자회사인 SK아이이테크놀로지(IET)를 떼어내 기업 공개(IPO)를 추진 중이다. 이미 3000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SK텔레콤이 최근 모빌리티 사업부를 분할해 내비게이션 서비스인 ‘T맵’을 중심으로 한 모빌리티 전문 기업으로 만드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계열사별로 ‘곁다리’ 사업들을 떼어내 별도의 회사로 만들어 각자의 영역에 집중토록 하고, 이를 통해 확실히 기업 가치를 인정받으려는 포석이다.

SK그룹 전체로 보면 2015년 이후부터 총 19건의 인수 합병이 이뤄졌다. 이 중 세 건은 조(兆) 단위의 ‘메가 딜’이다. 선택과 집중을 통한 비즈니스 모델 재조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란 게 그룹 내·외의 전망이다.

21일부터 3일간 제주에서 열리는 SK그룹 CEO 세미나에서도 선택과 집중을 강조하는 비즈니스 모델 혁신이 주로 다뤄질 예정이다. SK그룹 관계자는 “될 성싶은 사업을 골라 확실하게 지원하고, 시너지나 성장성이 낮은 분야는 지속적으로 조정한다는 큰 방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수기 기자  lee.so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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