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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식업자에 유기견 맡긴 나주시, 297마리중 절반이 사라졌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비글구조네트워크 실사 결과, 나주시가 위탁 운영 중인 유기동물 보호소와 번식업자의 경매장이 연결돼 있었다. [비글구조네트워크]

비글구조네트워크 실사 결과, 나주시가 위탁 운영 중인 유기동물 보호소와 번식업자의 경매장이 연결돼 있었다. [비글구조네트워크]

나주시가 개 번식업자에게 유기동물보호소 운영을 위탁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논란이다. 특히 나주시는 290여 마리의 유기견을 이 보호소에 맡겼지만 170여 마리의 행방이 묘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동물보호단체들은 번식업자가 유기견을 돈을 받고 판매했거나 허위로 안락사한 뒤 식용으로 둔갑시켰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21일 동물보호단체 비글구조네트워크에 따르면 나주시는 2012년부터 8년 동안 나주시 남평읍의 한 개 번식장에 유기동물보호소 운영을 맡겨왔다. 해당 업체는 '유기동물보호소'와 '한국반려동물 생산자협회 광주·전라지회'란 두 개의 현판을 내걸고 영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호 맡긴 297마리 중 170여 마리 행방 묘연  

김세현 비글구조네트워크 이사는 "이 보호소에 올해 유기견 330마리 정도가 들어갔지만 이후 안락·자연사나 입양시켰다는 통계가 전혀 없었다"며 "그래서 어찌된 일인지 현장에 가봤더니 번식장 겸 유기동물보호소였다"고 말했다. 농림부 동물보호관리시스템에 따르면 나주시는 현재 유기견 297마리를 보호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나주시는 이 업체에 모든 유기견의 보호를 맡겨왔다. 비글구조네트워크의 현장 실사 결과 이 업체가 보호중인 유기견은 120마리뿐이었고, 나머지 170여 마리의 행방은 묘연했다.

김 이사는 "유기견을 모견으로 이용해 번식시켜 태어난 새끼들을 팔거나, 시스템엔 안락사로 표기한 뒤 식용으로 유통시켰을 가능성도 있다"며 "또 해당 보호소에 있는 120여마리 중 일부는 안구가 튀어나오거나 엉덩이뼈가 드러나 있었지만 제대로된 치료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나주시 측은 "문제점을 인지하고 개선 방향을 논의 중이다. 문제된 보호소와는 계약을 해지할 방침"이라고 답했다. 나주시는 이어 "유기견을 옮겨놓을 장소를 알아보고 있다. 앞으로 유기동물보호소를 위탁해서 운영할지, 시에서 직접 운영할지 방법을 고민중"이라고 덧붙였다.

개농장 위탁 사례 수두룩…靑청원도

지자체에서 동물 번식장·경매장에 유기동물 보호를 맡긴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9월에는 울진군 식용 개농장에서 유기동물 보호소를 운영 중인 사례가 알려져 공분을 사기도 했다. 논란 이후 울진군은 보호소를 울진군 직영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울진 외에도 고성·사천·구례 등에서 유사 사례가 적발돼 보호소 대부분이 지자체 직영으로 전환되고 있다. 비글구조네트워크 측은 "전국 지자체가 위탁해 운영하는 보호소에 실사하러 다녀보면 건강원 주인이 보호소를 맡은 경우도 있다"며 "세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운영 지침에 따라 보호소를 개방해야 하는데 꽁꽁 숨기는 업주들도 많다"고 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지난달 22일 '지자체 유기동물 보호소를 시군 직영으로 전환해달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청원인은 "현재 유기동물 보호소의 85%를 민간이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며 "수익을 남겨야만 하는 구조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보호 비용으로 보호소는 더욱 열악해지고, 일부 위탁업자는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폐단이 심하다"고 지적했다. 해당 청원은 21일 오후 3시 기준 1만5000여명이 동의한 상태다.

권혜림 기자 kwon.hye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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