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로또 같은 정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김기찬
김기찬 기자 중앙일보 고용노동전문기자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참 로또 같은 정부다. 하나도 안 맞는다. 경제, 부동산, 일자리, 외교 등 뭐 하나 시원한 게 없다. 건드리는 것마다 시쳇말로 폭망이다. 하도 안 맞으니 체념하기에 이르는 수준이다. 뜻대로 안 되면 통계를 비틀어 로또 번호를 끼워 맞춰 해석하려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벌어진다. 자신이 만든 정책 때문에 ‘전세 난민’으로 전락해 웃음거리가 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전세 물량이 늘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부끄러움이란 없다. 정권은 있고, 정부가 없는 희한한 상황이다.

제대로 된 정책 찾기가 힘든 정부 #정책마다 절정의 내로남불 감각 #“너나 잘 하세요” 비꼬는 오만함 #상선약수 같은 초심을 돌아볼 때

하기야 이럴 수 있는 건 그에 기생해 권력을 누리는 사람이 있어서 일 게다. 지금까지 흐름을 보면 부도덕하고 몰염치한 부류다. 그들에겐 이 정권이 로또에 진배없다. 뭘 해도 당첨된다. 권력에 편승하고, 뒤로 숨고, 팬덤형 집단화가 만연해 있다. 그러다 검찰이 수사라도 할라치면 수사 자체를 공격한다. 그것도 대놓고 편을 가르면서다. 수틀리면 로또 번호를 자신이 가진 번호표에 맞게 갈아 끼우면 된다는 투다. “우리가 하는 데 어때서?”라며 반문하는 당당함은 덤이다.

적의 총탄에 목숨을 잃은 공무원의 형은 “만행”이라고 했다. 사살된 국민의 가족을 국정감사 증인으로도 못 나오게 막는 국가가 ‘나라다운 나라’인지 되묻고 있다. 옵티머스 등 각종 펀드 사기 사건이 온 나라를 뒤흔드는 데도 국감 증언대에 관련자가 한 명도 못 앉았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반대해서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의 비정규직 직고용과 관련된 국정감사도 증인이 나오지 않아 실체를 감사할 수 없었다. 수사 지휘권을 넘어선 헌정 사상 유례없는 ‘감사 지휘권’을 창조해 발동한 게 아닌가 의구심이 일 지경이다. 이게 21대 국회다. 이쯤 되면 과반의 의석으로 국회를 틀어쥐고 무소불위의 몰염치를 시전(示展)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권엔 로또요, 국민에겐 불행한 변고다.

서소문 포럼 10/21

서소문 포럼 10/21

이 정권이 딱 하나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눈치를 보는 건 있는 듯하다. 북한과 엮인 문제다. 목선을 타고 귀순한 북한 주민을 급하게 북송시켰다. 정부합동조사 결과 살인을 저지르고 도피한 정황이 있다는 이유를 댔다. 비록 살인 혐의가 있더라도 그들은 국내법 상 우리 국민에 해당한다. 그런 그들에게 끔찍한 고문과 공포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모를 리 없다. 이들의 북송에 국제사회도 비판을 했다. ‘사람이 먼저다’라며 인권을 내세우는 대한민국에서 자행된 일이다. 그러면서 북한이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온갖 상소리를 해도 지나치게 묵묵하다. 오히려 그 상소리의 대한민국 내 진원을 찾느라 부산을 떨고 다그치기까지 한다. 국가를 지키기 위한 군대일진대 훈련도 마음껏 못 한다. 훈련되지 않은 군대에 전쟁 억지력을 기대할 수 있을까. 심지어 국방력 강화를 위해 구입한 최첨단 전투기(F 35-A) 도입도 쉬쉬하며 국민에게 선 뵈기를 주저한다. 북한의 신경질과 예민한 반응이 못내 거슬려서다. 최대 동맹국에 나가 있는 대사가 동맹을 갈아치울 수 있다는 발언을 스스럼없이 하는 판이다. 더 나아가 북한 핵은 놔두고, 종전선언을 하자고 덤빈다. 이러니 국가 공무원이 사살돼도 ‘월북’이라며 대놓고 주장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싶다.

그나마 대한민국 국민이 외국에서 기를 펴는 건 글로벌 기업이 있어서다. 삼성, 현대, LG, SK를 일본 기업으로 아는 외국인이 부지기수였던 게 엊그제다. 유학이나 외국 관광을 하다 이런 경험을 한 두 번 안 겪어 본 사람이 없다. 지금은 다르다. 지구촌 어디에서든 코리아 기업임을 안다. 그런 기업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 난 듯한 법안을 쏟아내는 곳이 서울 여의도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라는 질문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다.

미래 세대에 빚을 떠넘기는 행태도 거리낌 없이, 거침없이 한다. 얼마 전 내놓은 국가 재정준칙은 절정의 내로남불 감각을 뽐냈다. 요컨대 자신들은 마음껏 돈을 써도 된단다. 갚는 건 다음 세대의 몫이라고 못 박은 게 이 정부가 만든 재정준칙이다. 일자리를 못 찾아 버둥대는 지금의 청년들이 두고두고 빚을 갚느라 허덕대도 내 알 바 아니라는 건가. 오죽하면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6일 국회에서 “엄격한 재정준칙이 필요하다”고 했을까. 이에 대한 여당의 반응은 기가 찬다. “너나 잘하세요”라고 빈정댔다.

물은 생물을 키우고, 부드러워 다투지 않으며, 낮은 곳으로 묵묵히 흐른다. 그래서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上善若水)고 한다. 이런 물도 독사가 마시면 독이 된다. 같은 물을 마시고도 소는 우유와 고기를 준다. 정부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명확하지 않은가. 권력으로 싸움을 거는 자, 심장으로 싸우는 자. 역사의 승자는 늘 후자였다. 상선약수의 심성과 기개가 있기 때문이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