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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자유의 후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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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상렬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이상렬 콘텐트제작 Chief 에디터

이상렬 콘텐트제작 Chief 에디터

대한민국 경제정책의 수장인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전세난민 신세가 된 것은 상징성이 크다.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이 총체적 실패라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나라 경제정책의 총책임자인 부총리가 이런데 일반 국민들은 오죽하겠나. 전세를 못 구해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는 국민들의 심정을 이제는 문 대통령도, 장관들도 알게 됐을까. 자신이 살 집을 제대로 구할 수 없다는 것은 기가 막히는 일이다. 그것은 헌법에 보장된 거주·이전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홍 부총리가 직접 그런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현 정권 경제적 자유 제한 심해 #약자 보호라는 명분 내걸지만 #결국 부동산 참사·고용대란 초래

부동산 참사는 예정된 결과다. 시장의 순리를 거슬렀기 때문이다. 경제 정책은 시장 참여자들의 자유도를 높이는 쪽으로 가는 것이 순리다. 그래야 시장과 가격 메커니즘이 작동해 수요자와 공급자가 원하는 균형점을 찾아간다. 그런데 현 정부 부동산 정책은 되레 자유를 옥죈다. 수요자도 공급자도 예전처럼 자유롭지 않다. 정부는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경로를 무자비하게 틀어막았다. 시장 원리에 맞지 않는다고 경제 관료들이 한사코 버텼던 선을 넘어섰다. 근대화 이후 반세기 넘게 국민들은 전세금에 대출금을 얹어서 내 집을 장만했다. 아이들이 커가면 또 대출을 얻어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갔다. 그런데 현 정부가 투기 방지라는 명분을 내걸고 도입한 갭 투자 규제가 중산층과 서민들의 이런 주거사다리를 걷어찼다.

주택임대차 시장엔 세입자들의 주거안정 도모를 내걸고 계약갱신청구권(2년+2년)과 전월세 상한제가 도입됐다. 임대 시장의 공급자인 집주인의 손발을 묶은 것이다. 그 결과가 전셋값 폭등과 전세 매물 실종이다. 이제 세입자들은 기존 전세금으론 좀 더 넓고, 좀 더 쾌적한 곳으로 옮겨갈 수 없다. 꼼짝없이 최장 4년을 한 곳에 살 수밖에 없게 됐는데, 계약갱신조차 요구할 수 없는 그 후엔 어떻게 하나.

서소문 포럼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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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거주요건은 투기꾼이 시장에 발붙이지 못하게 하려는 장치다. 그러나 과도한 실거주요건은 거주의 자유를 옭아맨다. 재건축을 분양받으려면 2년은 들어가 살아야 한다. 실거주요건을 충족하려는 집주인들의 귀환 행렬이 느닷없이 세입자들을 밀어내고, 전셋값을 끌어올린다. 집값 안정을 노리고 취한 공급자 규제가 결국 세입자 삶을 고달프게 만들었다.

집을 사기 위해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것도 자유롭지 않다. 갚을 형편이 충분한 것과는 상관없이 시가 15억원 초과 아파트 담보대출은 금지돼있다. 집에 현금이 넘치는 경우가 아니면 강남권 진입은 이제 불가능해졌다. 강남 집값을 잡겠다는 정부가 강남을 되레 선택받은 이들만 살 수 있는 특별구역으로 만들어버렸다. 강남 집값과의 전쟁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역사상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고 억압하는 집권 세력은 언제나 근사한 명분을 내건다. 이른바 ‘목적의 수단 정당화’다. 그러나 자유를 위협하는 정책은 예외 없이 심각한 후유증과 부작용을 초래한다. 부동산 정책과 함께 대표적 실패로 꼽히는 소득주도성장도 마찬가지다. 단 2년 만에 최저임금을 29% 올려놓은 것은 고용 시장의 자유도 격감으로 이어졌다. 고용주가 급등한 최저임금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아르바이트생 등 비정규직부터 일자리를 잃었다. 낮은 임금으로 더 일하고 싶은 의사가 있어도 일할 수 없었고, 더 고용하고 싶어도 고용할 수 없게 됐다. 강제화된 주 52시간제는 또 어떤가. 정규 근무시간 이후 일을 더 해서라도 성과를 올리고, 보상을 더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사라졌다. 근로자는 노동의 자유를 누릴 수 없었고, 고용주는 고용의 자유를 행사하지 못했다. 정권은 “일할 기회를 달라”는 근로자들의 목소리도, “사업장을 더 돌리게 해달라”는 사업주들의 요청도 외면했다. 숱한 일자리가 사라졌고, 취약계층은 고용시장의 가장 가파른 벼랑으로 내몰렸다.

문재인 정부에 대해 경제인들이 우려해온 것은 경제적 자유의 침해였다. 그것이 가져올 소용돌이를 현 정권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그 우려는 점점 현실화하고 있다. 정책의 궤도 수정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대신 정부의 개입과 규제가 더 노골적으로 시장을 괴롭힌다. 하기야 집회의 자유, 표현의 자유, 양심의 자유 등이 위협받고 있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을 보면 문제는 비단 경제적 자유 침해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고 봐야겠다. 대한민국이 어떻게 성취한 자유인데, 이렇게 후퇴하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나.

이상렬 콘텐트제작 Chief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