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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노트] YFI 블루 커비가 보여준 익명성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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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트위터]

[소냐’s B노트] 2008년 10월 비트코인을 세상에 내놓은 사토시 나카모토의 정체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번번이 실패로 끝났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가 누구인지, 심지어 한 명인지 아니면 다수로 구성된 조직인지조차 알아내지 못합니다. 그가 본인의 정체를 감춘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그가 실험한 암호화 기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고, 창시자의 존재가 비트코인에 의도치 않은 영향을 끼치는 걸 막기 위한 판단일 수도 있습니다. 

#암호화와 익명성

비트코인을 시작으로 암호화폐 세계엔 익명의 사람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익명성의 힘은 강력합니다. 스스로를 감춘 채 다양한 실험을 마음껏 할 수 있고, 혹여 실패하더라도 책임에 대한 압박이 상대적으로 덜합니다. 규제 당국의 표적이 되는 것도 피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장점 덕에 익명의 개발자가 만든 프로젝트들이 대거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디파이(Defiㆍ탈중앙화 금융)도 마찬가지입니다. 디파이는 탈중앙화를 핵심 기조로 삼는 만큼, 중앙화 플랫폼에 비해 익명성을 강조하는 사례가 더 많습니다. 더러는 익명성을 우선순위의 맨 앞에 두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익명성은 암호화폐 업계가 무조건적으로 지향할 만한 가치일까요. 디파이 프로토콜 와이언 파이낸스의 광팬으로 알려진 트위터 계정 블루 커비(Blue Kirby)가 최근 일으킨 일련의 사태를 보면 선뜻 답하기 어렵습니다.

#와이언 추종자 블루 커비, SNS 인기로 사업까지 

블루 커비는 본래 닌텐도 게임 ‘별의 커비’에 나오는 캐릭터 이름입니다. 적의 능력을 복제하는 힘을 지닌 블루 커비는 귀여운 이미지로 뛰어난 친화력을 구사합니다. 블루 커비를 닉네임으로 쓴 익명의 트위터 계정도 특유의 친화력으로 와이언을 적극 홍보해 커뮤니티에서 단기간 내 주목을 받습니다. 때마침 와이언이 거버넌스 토큰 YFI를 출시하면서 블루 커비의 인지도도 빠르게 상승했습니다. YFI 가격이 비트코인을 제치고 3만 달러를 넘기자 블루 커비의 팔로우 수도 2만명 이상으로 급격히 불어났습니다. 팔로우가 늘어날수록 와이언 홍보 효과도 커졌죠. 이에 감동한 안드레 크로녜 와이언 창립자는 그에게 25YFI를 증정했으며 커뮤니티는 매달 7000달러 가량 보수를 주기도 했습니다.

인기에 힘입어 블루 커비는 사업 분야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는 대체불가토큰(NFT) 마켓 플랫폼 라리블(Rarible)에서 NFT을 팔기 시작했고, 한달 간 500ETH(약 18만6000달러) 수익을 거뒀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YFI 가격이 하락하면서 블루 커비의 사업에도 제동이 걸리게 됐죠.

#인기가 오히려 독 됐다?

그후 블루 커비의 명성에 금이 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지난 9월 크로녜 와이언 설립자가 계획 중인 애미넌스(Eminence)라는 게임 프로젝트의 토큰 EMN을 누군가가 임의로 발행했는데, 블루 커비가 본인의 트위터에 해당 구매 링크를 걸며 홍보에 나선 것입니다. 그는 "이 기회를 놓치지 말라"며 토큰 구매를 적극 권장했습니다. 하지만 테스트 단계에 머물렀던 애미넌스는 감사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외부 공격을 받았고, 수 시간 만에 1500만달러를 탈취당했습니다. 공격자가 800만달러를 반환하긴 했지만 이미 일부 사람들이 손해를 본 후였습니다. 이 사태로 충격을 받은 크로녜는 한동안 SNS 활동을 접기도 했죠. 제대로 검증 안 된 토큰을 홍보한 블루 커비에게 비난이 쏟아진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블루 커비는 또 한 번 논란이 될 만한 행동을 합니다. 본인이 가진 YFI를 개당 2만2000달러씩 총 55만 달러에 처분해버린 겁니다. 자산을 사고파는 건 개인의 자유입니다만, YFI 가격 상승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인물로서 그의 행동은 커뮤니티의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습니다. 실제 YFI 가격에도 상당한 타격을 입혔습니다. 암호화폐 분석 업체 메사리(Messari)에 따르면 YFI 가격이 25% 가까이 하락했다고 합니다. 결국 이 일로 그는 커뮤니티로부터 배신자로 낙인 찍히게 됩니다. 

#정체 드러날까 두려워… 100만달러 들고 사라지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얼마 후 블루 커비가 커뮤니티와 완전히 등을 지게 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블루 커비는 오프블루(Off-Blue)라는 새로운 NFT 프로젝트를 홍보하기 시작했는데, 당시 대다수는 이 프로젝트가 무엇을 하는지 구체적인 정보를 알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블루 커비가 전면에 나섰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돈을 넣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이 프로젝트가 진행한 한 차례의 에어드랍에서 YFI 연계 계정을 사용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이는 등 사람들에게 와이언과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인상을 남겨 신뢰를 얻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오프블루는 수일 만에 2000ETH 상당의 NFT를 판매했습니다. 업계는 대부분의 수익금이 블루 커비의 호주머니에 들어갔다고 보고 있습니다. 당연히 오프블루는 스캠 의혹을 받았고, 비판이 거세지자 블루 커비는 구매자에게 환불을 약속한 뒤 사업을 접게 됩니다.

블루 커비의 행보에 환멸을 느낀 사람들은 그가 누구인지 파고들기 시작했고, 정체가 탄로날까 두려워진 그는 트위터 계정을 삭제하고 자취를 감췄습니다. 사라지기 전 그가 챙긴 이득은 100만달러 남짓으로 추정됩니다.

#익명성은 과연 좋기만 할까

이번 사태는 익명성에 대한 강한 의구심을 남겼습니다. 익명성을 앞세워 프로젝트를 키운 뒤 이득을 챙겨 사라진 프로젝트는 한둘이 아닙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디파이 프로토콜 스시스왑입니다. 스시스왑의 설립자 셰프 노미는 익명의 인물로 초반엔 SNS 활동을 적극적으로 했다가 사업이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추자 3만8000개 이더리움을 임의로 현금화해 업계 내 뭇매를 맞았습니다. 그후 셰프 노미가 프로젝트 제어권을 내려놓고 자금을 반환해 사건이 일단락됐지만, 익명의 인물이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데 대한 위험성을 우리에게 경고한 사건이었습니다.

셰프 노미나 블루 커비처럼 문제가 되는 건 극소수이고, 익명성 자체는 긍정적이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암호화폐 거래소 쉐이프 시프트 설립자인 에릭 보헤스는 코인데스크와의 인터뷰에서 "암호화폐 자체는 익명성이나 가명을 통해서만 가능했다"며 "사토시 나카모토의 정체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암호화폐 업계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익명성보다는, 반짝 인기로 스타가 된 사람의 말을 무작정 믿고 돈을 맡긴 게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익명성이 대중과 소통하는 데 더 도움이 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하수(Hasu)'라는 익명의 활동가는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익명성의 불이익은 거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은 당신이 익명인지 실명인지보다는 언사나 행동으로 평가한다"며 "성공을 거둔 대다수 익명의 활동가들은 사람들이 보다 쉽고 편하게 받아들인다"고 부연했습니다.

반론도 거셉니다. 리더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그에 상응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커뮤니티 구성원이 뒤따르기 어렵다는 주장입니다. 리더가 책임감을 보이지 않는다면 구성원이 커뮤니티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는 겁니다. 디파이처럼 탈중앙화된 플랫폼도 예외가 아닙니다. 모종우 그로우파이 공동창업자는 "디파이는 기술적 투표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기술을 잘 모르는 일반인은 지도자의 의견을 믿고 뒤따르는 게 많다"며 "다오(DAOㆍ탈중앙화 자율조직) 역시 핵심 리더 중심으로 합의를 이끌어내는 게 장기적 성장 관점에서 봤을 때 안정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가면을 쓴 대가는 결코 작지 않다

사실 암호화폐 업계에는 본인의 이름을 걸고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이더리움의 비탈릭 부테린과 디파이 선봉에 있는 안드레 크로녜 와이언 창업자, 헤이든 아담스 유니스왑 창업자 등입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명성과 인지도에 베팅을 합니다. 이름은 그들에게 어떠한 문제가 터졌을 때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끌고 갈 유인을 제공합니다. 익명의 인물도 그럴 수는 있겠지만 위기 시 가면 뒤로 숨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익명을 선택할 것인가는 각자의 자유이지만, 그만큼 짊어져야 할 책임의 강도가 크다는 점은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권선아 기자 kwon.seon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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