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겁내는 '비브리오'

중앙일보

입력

이맘때쯤이면 가슴 졸이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회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어민들이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어패류를 먹다가 비브리오에 감염된 사람이 해마다 수십명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중 일부는 생명을 잃기도 해 비브리오 유행시기엔 회를 찾는 손님의 발길이 뚝 끊겨 어민들은 출어를 포기하고 횟집은 문을 닫기 일쑤다.

팔과 다리가 괴사에 빠져 시커멓게 썩어 들어가는 비브리오 감염자의 모습이 TV 화면을 통해 보도되면서 우리 국민에게 비브리오는 생명을 위협하는 공포의 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유행 시기엔 비브리오에 대해 주의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비브리오에 대한 공포는 다소 과대 포장된 감이 없잖아 있다. 비브리오는 이질이나 장티푸스처럼 감염된 사람이면 누구나 괴롭히는 세균이 아니기 때문이다.

면역력을 제대로 갖춘 건강한 사람이라면 대부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가 되는 사람은 다음 다섯가지 경우다. 첫째 간염과 간경변 등 만성 간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 둘째 신부전증 등 콩팥에 문제가 있는 사람, 셋째 당뇨를 오래 앓은 사람, 넷째 장기이식 수술 후 거부반응을 방지하기 위해 면역 억제제를 사용하는 사람, 다섯째 과음으로 알콜중독에 빠진 사람이다.

이들은 비브리오 유행 시기에 어패류를 날 것으로 먹거나 맨발로 바닷가를 거니는 일을 삼가야한다.바닷물 속에 있는 비브리오 세균이 입이나 피부 상처를 통해 침투할 경우 면역력이 떨어져 있는 이들에겐 치명적인 패혈증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건강한 보통 사람이 단지 한 두 건 감염자가 발생했다는 이유만으로 좋아하는 회를 먹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과거 우리는 광우병 파동으로 축산 농가가 막대한 타격을 받고 동시에 소비자는 가장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자 맛있는 쇠고기를 즐길 권리를 빼앗긴 경험이 있다.

'만의 하나' 에 대비하는 자세는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과학적 합리성에 기초를 둔 것이라야 할 것이다. 당신의 건강에 문제가 없다면 비브리오 때문에 회를 먹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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