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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김철호 기아차 창업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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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동현
이동현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이동현 산업1팀 차장

이동현 산업1팀 차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지난 14일 전 임직원에게 보낸 취임 메시지에서 뜻밖의 이름을 언급했다.

정 회장은 지금의 현대차그룹이 있기까지 임직원의 노력을 떠올리며 할아버지인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 아버지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과 함께 김철호 회장을 언급했다.

고(故) 김철호 회장은 기아자동차의 창업자다. 1944년 경성정공을 설립해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사명은 이후 기아산업으로 바꿨다. 굳이 따지자면 현대차(1967년 설립), 쌍용자동차(1955년 설립)보다 역사가 긴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자동차 회사다.

기아차는 1997년 외환위기로 어려움을 겪다가 현대차에 인수됐다. 이전까지 마쓰다·푸조·피아트 같은 해외 완성차를 조립 생산했고, 5공화국 정부의 ‘자동차 공업 합리화 조치’로 승용차를 생산하지 못하자 승합차의 대명사가 된 ‘봉고’를 개발해 대성공을 거뒀다.

현대차와 기아차가 합병해 현대자동차그룹이 됐지만 불과 수년 전만 해도 어디 출신인지, 어디 소속인지를 놓고 미묘한 분위기가 있었다.

현대차 출신, 그중에서도 정몽구 명예회장이 경영했던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 출신은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성골, 진골이니, 6두품이니 하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현대차그룹이 한국 완성차 업체의 대표 선수가 되면서 옛 기아차의 도전적인 기업문화를 그리워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한국 최초의 컨버터블 로드스터 ‘엘란’이나 세계 최초의 도심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스포티지처럼 비록 실패하더라도 끊임없이 도전했던 문화가 현대차와 합병 뒤 너무 안정 지향적으로 바뀌었다는 지적이다.

정의선 시대의 일성(一聲)이 기아차의 뿌리를 잊지 않겠다는 것이었단 사실은 의미가 있다. 전격전처럼 이뤄지는 이른바 ‘현대 속도’에, 실패를 두려워 않는 기아차의 도전정신이 있었기에 오늘날 세계 5위의 글로벌 자동차 기업이 된 것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정의선 시대의 화두는 ‘소통’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상명하복식 의사결정이 아니라 내부 구성원과 소통하고, 모든 걸 다 하려는 전속 계열화가 아니라 필요한 기술을 나눠 받는 외부와의 소통이 필요하단 의미다.

이동현 산업1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