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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정밀함에 매료” 세종 소설로 쓴 ‘스타트렉’ 작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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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소설을 쓴 이유? 세종대왕 그 자체다. 문자는 수 세기에 걸쳐 진화해왔는데, 이런 것을 창조했다고 말할 수 있는 ‘한 사람’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조 메노스키 e메일 인터뷰 #‘엽기적인 그녀’ 보고 한국에 관심 #5년 전 서울서 배운 한글에 빠져 #싱크탱크 아닌 1인 창작물로 생각 #책 장르는 국제액션 사극 스릴러

『킹세종 더 그레이트』 영문판. [사진 핏북]

『킹세종 더 그레이트』 영문판. [사진 핏북]

할리우드 장수 SF 시리즈 ‘스타트렉’ 작가인 조 메노스키가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기를 역사 판타지 소설로 썼다. 지난 9일 한글날에 맞춰 한글판·영문판으로 출간된 『킹 세종 더 그레이트』(핏북). 그를 e메일로 만났다.

“처음엔 세종대왕을 미국 사람들에게도 알리고 싶어서 미니시리즈 제작을 목표로 세종대왕과 한글에 관한 4시간짜리 대본을 썼다. 협업 중인 한국 에이전시가 출판사에 그 대본을 보여주면서 소설이 먼저 나오게 됐다.”

소설 『킹 세종』을 쓴 작가 조 메노스키. [사진 사람엔터테인먼트]

소설 『킹 세종』을 쓴 작가 조 메노스키. [사진 사람엔터테인먼트]

메노스키는 30여 년 전부터 ‘스타트렉’ 시리즈의 에피소드 60여 편, 스티븐 킹 원작 공포물 ‘데드존’, 미·소 냉전 시대 우주 개척 전쟁이 지속한 경우를 상상한 드라마 ‘포 올 맨카인드’ 등의 작가 겸 프로듀서로 일했다.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건 20년 전 한국계 미국인 프로듀서 로이 리의 소개로 영화 ‘엽기적인 그녀’를 본 이후다. 한국 영화·드라마에 푹 빠진 그는 5년 전 처음 서울에 왔을 때 배운 한글의 “정밀함과 기능적인 우월함”에 또 매료됐다. 메노스키는 “이 모든 것을 천재적인 왕이 창제했다는 스토리는 충격적이었다”고 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피렌체의 통치자인 경우일까? 아이작 뉴턴이 영국의 왕인 경우일까?” 책 머리에 그가 적은 글이다.

조 메노스키가 중앙일보에 보낸 자필 한국말 인사. [사진 사람엔터테인먼트]

조 메노스키가 중앙일보에 보낸 자필 한국말 인사. [사진 사람엔터테인먼트]

소설은 한글 창제·반포를 아우르는 실제 역사에 상상을 보탰다. 명나라, 몽골족, 일본 해적이 뒤엉키는 전란의 기운도 새겼다. 그는 자신이 외국인 작가란 사실보다 SF 판타지 장르 작가란 것이 가장 큰 차별점이라면서 “그 결과 이 책은 국제 액션 사극 스릴러가 됐다”고 했다.

자료 조사는 어떻게 했나.
“몇 년간 영문 출판물로 연구하면서 한글 유래의 두 해석에 주목했다. 첫째 세종대왕이 스티브 잡스가 애플 기술팀을 지휘하듯 창제 과정을 이끌었다는 것. 둘째는 세종대왕이 주로 혼자 문자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나는 한글이 세종대왕이 운영한 조선의 ‘싱크탱크(집현전)’ 결과물이 아니라 예술가 같았던 세종대왕 1인이 창조한 집념의 산물로 그리고 싶었다. 개리 레드야드(미국 컬럼비아대 한국학 석좌 명예교수)의 저술 『1446년 한국어 개혁(THE KOREAN LANGUAGE REFORM OF 1446)』(신구문화사, 1998)이 많이 도움 됐다.”

역사적 고증과 관련, 메노스키는 “제가 새로 창작한 ‘역사 판타지’란 점을 받아들여 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책엔 세종대왕이 네스토리우스교(아시아에 전파된 기독교 한 종파) 사제를 만나 그들의 경전을 읽어보는 장면도 나온다.

경기도 여주 세종대왕역사문화관에 전시된 세종대왕 어진(운보문화재단소장). [연합뉴스]

경기도 여주 세종대왕역사문화관에 전시된 세종대왕 어진(운보문화재단소장). [연합뉴스]

세종대왕이 해외에서 수집한 문자 중 숫자 7과 흡사한 모양에 관심 갖는다는 묘사가 반복된다. 한자 문화였던 조선에서 아라비아 숫자가 통용된 것처럼 착각을 일으킬 수 있다.
“7은 비한국인 독자에게 알기 쉽게 설명하려는 의도였을 뿐 실제 숫자를 의미하려던 건 아니다.”
일본인 소년이 한글을 통해 처음 세상과 소통하는 허구의 일화도 나오는데.
“한글이 일본어를 포함한 어떤 언어나 소리라도 표기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킹세종 더 그레이트』 한글판. [사진 핏북]

『킹세종 더 그레이트』 한글판. [사진 핏북]

한국어 실력을 묻자 그는 “아직 매우 서툴다”면서도“산들바람이나, 스프에 모두 쓸 수 있는 ‘시원하다’란 말을 좋아한다”고 했다. 처음 배운 한국말은 “아마도 ‘배고파요’ 였을 것”이라고 했다.

좋아하는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줄줄이 꼽으며 ‘한류’ 덕후의 면모를 보인 그는 이 소설을 영상화할 목표도 품고 있다고 밝혔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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