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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노트] CBDC는 블록체인 업계에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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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셔터스톡]

[소냐's B노트] 중국 IT기업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의 최근 연설이 국내에 소개돼 화제가 됐습니다. 그는 "일부 사람들은 미국이 틱톡과 위챗을 규제하는 이유가 중국의 애플리케이션 능력을 두려워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지난 수년간 중국은 틱톡, 메이퇀(음식배달 앱), 핀둬둬(온라인 쇼핑몰) 등 애플리케이션 분야에서 혁신을 거듭해왔다. 하지만 근간이 되는 기초기술 분야에선 혁신을 이루지 못했다. 기초과학과 기술 없이 응용 분야만 파고든다면 결국엔 누군가의 지배를 받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중국몽에 빠져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일부 중국인에게 각성하라는 취지로 쓴소리를 한 겁니다.

#강국 간 패권 다툼, CBDC 경쟁으로 이어져

강국 간 패권 다툼은 어느 영역에서나 존재합니다. 최근 양상을 보면 무역, 환율, 기술 경쟁 등으로 범위를 점차 넓혀가고 있죠.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업계도 예외가 아닙니다. 최근에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경쟁으로 발현되고 있습니다. 처음 불을 댕긴 건 중국이었으나 지금은 미국과 일본, 유럽 등까지 CBDC 연구개발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각국의 이 같은 움직임은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이달 중국은 선전에서 훙바오(세뱃돈이나 보너스) 형식으로 디지털위안(DCEP)을 뿌리는 깜짝 이벤트를 추진했습니다. 선전에 본거지를 둔 사람 중에서 신청을 받은 뒤 이들 중 5만명을 추첨해 200위안씩 나눠줬습니다. 당첨자는 당국에서 발송한 URL을 통해 디지털지갑 앱을 내려받은 뒤 훙바오를 수령한 다음, 인근 지정된 상점에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중국 DCEP는 이미 시중은행, 제3자 결제 플랫폼 등과 연계해 선전을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인민은행은 "발행 시기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며 은밀하고도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는 있습니다만, 이따금씩 언론을 통해 DCEP 관련 정보를 내보내며 대내외 분위기를 살피고 있습니다.

일본은 중국을 뒤쫓는 데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9일 일본 중앙은행은 내년 CBDC 파일럿 테스트를 실시한다고 밝혔습니다. 발행 여부는 아직 미정이나 중국을 비롯한 대외 행보에 대응하기 위해 CBDC의 기본기능과 유통 등을 실험한다는 입장입니다. 일부 일본 국회의원은 중국을 의식한듯 CBDC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고 촉구했으며, 내년 실험도 너무 늦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사회로의 전환이 빨라지면서 유럽도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최근 유럽 중앙은행(ECB)은 디지털 유로 발행에 대한 사전 대외 의견 수렴과 테스트를 진행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테스트 기간은 약 6개월이 소요될 예정입니다. 앞서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한 통화정책 회의에서 "디지털 결제 혁신에 유럽이 뒤처져선 안 된다"며 디지털 유로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보여줬습니다. CBDC에 긍정적이었던 프랑스 등 일부 유럽 국가들이 ECB를 설득한 게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중국과 정면 대치 중인 미국도 CBDC 연구에 가세한 상황입니다. 9월 미 클리브랜드 연준의 로레타 메스터 총재는 "미 연준(Fed)과 다수 연방 은행이 공동으로 CBDC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지난 9일 미 연준과 영국ㆍ유럽ㆍ스위스ㆍ일본 등 7개국 중앙은행, 국제결제은행(BIS)은 CBDC 관련 성명을 내놓았습니다. 성명에는 "CBDC는 운용 비용이 적게 들고 탄력적인 성격을 띤다"며 "발행을 위해서는 당국의 명확한 기준과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연구개발에만 힘쓸 뿐 발행을 할 것인지 대해선 공식적으로 확정 짓지 않은 상태입니다. 당분간 다른 국가와 공조하며 중국의 상황을 예의주시할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중국이 DCEP를 전격 발표하면 미국은 지금보다 더 적극적인 태도로 전환할 가능성도 적지 않습니다.

이처럼 CBDC는 글로벌 사회에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요구가 돼가고 있습니다. 디지털 사회 진입과 코로나가 불러온 비대면 사회의 도래, 강국 간 첨예한 이권 다툼 등이 한 데 뭉쳐져 CBDC 발행을 부추깁니다. 특히, CBDC는 자국의 화폐 기능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국가 간 경쟁과 갈등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을 받습니다. 

#초국경 거래의 효율성 높인다

그렇다면 CBDC는 패권 경쟁을 부추기기만 하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초국경 거래를 저렴하고 효율적이게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2020년 2월 한국은행이 발표한 '주요국의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대응 현황'에 따르면 CBDC는 용도에 따라 거액결제용과 소액결제용을 나뉘는데,  거액결제용은 분산원장기술을 활용해 금융기관간 결제를 보다 효율화하는 게 특징입니다. 소액결제용은 주로 금융포용을 확대하거나 현금수요 감소에 대응할 필요성이 큰 국가들이 추진하며, 자국 내 활용에 초점을 맞춥니다.

이중에서 거액결제용 CBDC를 좀더 자세히 뜯어보면, 목표는 금융기관간 결제 효율성과 복원력을 높이고 운영 리스크를 줄이는 등 결제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입니다. 캐나다, 싱가포르, EU와 일본 등은 2016년부터 거액결제용 CBDC 시범사업을 진행해 왔습니다. 이 가운데 일본은행과 유럽중앙은행은 2016년부터 공동파일럿 프로젝트(스텔라)를 통해 ^국내은행간 결제(1단계), ^증권대금동시결제(2단계), ^외환동시결제(3단계)에 대한 테스트를 실시해 왔는데요. 3단계에서 보듯이 국가 간 화폐 교류에도 CBDC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결국 CBDC는 자국 화폐 시스템을 넘어서 화폐의 국제화, 국제 교류를 효율적으로 하는 데에도 쓰일 거란 얘기입니다. CBDC를 긍정하는 쪽에선 이 부분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리플이 드러낸 야심 “여러 CBDC 잇겠다”

CBDC 분야에 관심을 보이는 블록체인 기업이 있습니다. 바로 리플입니다. 리플도 이 지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리플은 개별 CBDC를 연결하기 위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리플은 ‘CBDC의 승패를 가르는 건 상호운용성’이라는 제목의 블로그 게시글을 통해 CBDC의 네트워크 필요성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중국의 경우 당장은 자국 내 사용에 초점을 맞추겠으나 글로벌화 추세에 따라 종국엔 CBDC가 서로 연계될 것이라고 리플은 내다봤습니다. 특히, 중립 자산을 이용하면 자국의 유동성을 건드리지 않고도 CBDC 간 교환이 원활할 수 있다는 대안도 제시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중립 자산이란 바로 XRP를 가리키죠. 다소 무모해 보이긴 하나, 리플은 국가들이 선뜻 꺼내기 어려운 부분을 짚어줬다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CBDC가 상용화하면 초국경 거래에 쓰일 게 분명한데도 이 부분에 대한 범세계적 합의는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CBDC는 블록체인 업계에 기회다

하지만 리플이 지나치게 앞서간 부분도 있습니다. 현재 각국의 CBDC 연구는 걸음마 단계로, 기반 기술에 대한 연구를 마무리 짓지 못한 상태입니다. 상당수의 중앙은행들은 CBDC 모델의 타당성을 검토하기 위해 IT 시스템 개발 중입니다. 한은이 5월 발표한 ‘해외 중앙은행의 CBDC 추진 현황’ 보고서를 보면 CBDC 구현 기술을 공개한 사례는 6건에 불과합니다. 이들은 모두 여러 가지 분산원장기술을 도입하고 있으며, 구체적으로는 하이퍼레저 패브릭(23.1%)ㆍ코다(38.5%)ㆍ쿼럼(15.4%)ㆍ이더리움(15.4%)ㆍ기타(7.6%) 등이 있습니다. 

아직 기술적으로 준비가 덜 되다 보니, 중앙은행들도 업계에 도움을 청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중앙은행은 실제 CBDC를 사용할 기관들에게 필요한 IT 시스템 개발 분야에 대한 제안을 요청했고, 한은도 국내외 기술 업체와 정보를 교환하거나 향후 외부 기술자문단 구성 등을 통해 전문 견해를 청취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초국경, 더 나아가 전세계 CBDC 연계를 운운하는 건 지나치게 이른 감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리플의 야심이 반갑기도 합니다. CBDC는 블록체인 업계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시장은 2017년 말에서 2018년 초 정점을 찍은 뒤 줄곧 하향세를 그리고 있습니다. 올 들어 디파이가 새로운 운영방식으로 시장을 뒤흔들고 있긴 하나 디파이는 디앱, 즉 응용기술입니다. 디앱을 떠받쳐 줄 만한 기반 기술은 제대로 구현되지 못한 상태입니다. 기반 기술에 대한 연구개발은 시장 수요에 못 미칠 정도로 더디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응용보단 기반기술에 힘쓰라는 마윈의 발언은 블록체인 업계에도 필요한 메시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권선아 기자 kwon.seon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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