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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경제학상 美 윌슨·밀그럼…'주파수 경매'로 납세자 이익 키웠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노벨위원회가 12일(현지시간) 발표한 경제학상 수상자. 폴 밀그럼, 로버트 윌슨 스탠퍼드대 교수다.

노벨위원회가 12일(현지시간) 발표한 경제학상 수상자. 폴 밀그럼, 로버트 윌슨 스탠퍼드대 교수다.

2020년 노벨경제학상의 영예는 미국 스탠포드대 로버트 윌슨(83) 교수와 폴 밀그럼(72) 교수에게 돌아갔다. 일명 ‘주파수 경매’로 유명한 경제학자들로, 공공재에 대한 경매 이론을 발전시켰다. ‘경매 이론’의 학문적 성과를 넘어서 주파수·가스·전기 등 공공 경매에 활용되는 실용적 업적을 남긴 수상자라는 점도 특징이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12일 “수상자들은 경매이론을 발전시키고 새 경매 형태를 고안해냈다”며 “그 결과 매수자와 매도자, 전세계의 납세자에게 혜택이 돌아갔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위원회는 또 “경매는 모든 곳에서 행해지며 일상 생활에 영향을 준다”며 경매이론이 갖는 영향력을 강조했다.

‘주파수 경매’라는 명칭은 1994년 미국에서 주파수 사업권을 경매에 부치는 과정에서 나왔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도입한 ‘동시 다중 라운드(Simultaneous Multiple Round)’ 경매는 한 번에 최고가를 제시한 입찰자에게 낙찰되는 방식 대신, 여러 단계의 입찰 과정을 거치며 경쟁자들이 상대방의 입찰가에 대한 정보를 가늠해볼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너무 높은 가격을 써내 낙찰자가 ‘승자의 저주’에 빠지거나, 너무 낮은 가격에 낙찰돼 정부나 국민이 손해를 입는 것을 방지했다.

실제로 1980년대 미국 FCC는 주파수 사업권을 복권식 추첨제로 입찰했다가 치과의사들이 사업권을 따냈던 해프닝을 낳기도 했다. 이 치과의사들은 통신회사에서 웃돈을 받고 사업권을 4100만 달러에 되팔았다.

동시 다중 라운드 방식의 경매는 두 교수가 실증해 낸 연구 결과(▶'승자의 저주'를 의식해 응찰자가 가격을 낮게 적어내는 경향 ▶서로 써 낸 가격을 알 때 판매자의 이익이 오히려 극대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를 ‘경매 경제학(auctionomics)라고도 부른다.

2020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밀그럼 교수의 저서 『경매 이론의 현장 적용』표지.

2020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밀그럼 교수의 저서 『경매 이론의 현장 적용』표지.

윌슨 교수는 밀그럼 교수의 박사논문 지도교수였으며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윌슨 교수는 경매에서 합리적 응찰자들이 왜 추정보다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지를 실증해냈다. 밀그럼 교수는 보험 계리사 출신이다. 이들이 고안한 경매 제도는 10만건 이상의 후속 연구에서 인용됐다. 주파수 경매는 미국의 성공을 토대로 영국ㆍ캐나다ㆍ호주ㆍ독일도 도입했고, 한국도 2011년 시작했다. 5세대(5G) 이동통신 사업자 역시 이같은 방식으로 선정됐다.

주파수뿐 아니라 천연가스 채권, 전기 사업 등 전세계에서 수천억 달러 규모에 달하는 공공재 경매 사업에도 활용됐다. 공공재뿐 아니라 공모주 청약에서도 도입됐는데, 구글이 기업공개(IPO) 과정에서 경매제를 도입한 것도 이에 해당한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밀그럼 교수의 제자로 2007년 미국 컬럼비아대 경제학과에 재직 중이었던 최연구 교수는 당시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마켓 디자인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만들어냈다”고 평가했다. 마켓 디자인이란 경제학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 분야에서 시장 원리를 설계해내는 것을 일컫는다. 정대영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는 “경제학상 수상자들은 마켓 디자인과 관련해 이론적으로 새로운 틀을 제시한 동시에 이를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방식을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검색엔진의 주요 수익 창출원인 키워드 검색 광고 등에도 경매이론이 적용되고 있는 데 이들의 연구를 통해 이러한 것이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결과적으로 밀그럼 교수와 윌슨 교수는 시장이 작동하지 않던 분야에서 시장원리가 작동할 수 있는 방법을 디자인했고, 약 25년이 지난 뒤 노벨경제학상 수상으로 그 성과를 인정받게 됐다. 노벨경제학상은 경우 한 이론이 수년간에 걸쳐 다양하게 응용되고 실증될 경우에만 수여되기에 수상자들의 연령대가 타 분야보다 높다.

로버트 윌슨 교수. [윌슨 교수 홈페이지]

폴 밀그럼 교수. [밀그럼 교수 홈페이지]

노벨경제학상의 공식으로 회자되는 ‘미국·백인·남성’ 학자는 이번에도 들어맞았다. AFP통신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4분의 3이 '55세가 넘은 미국 남성'이었으며 수상자들 평균 나이는 65세였다.  다만, 다른 노벨상 분야는 올해 11명의 수상자 중 4명이 여성이어서 예년보다는 수상자가 다양해졌다. 그러나 1901년 제정 후 지난해까지 여성 수상자는 2%, 흑인 수상자는 6%에 그쳤다.

2020 노벨 과학상의 우먼 파워. 왼쪽부터 샤르팡티에 및 다우드나 교수(화학상), 게즈 교수(물리학상). [EPA, 로이터=연합뉴스]

2020 노벨 과학상의 우먼 파워. 왼쪽부터 샤르팡티에 및 다우드나 교수(화학상), 게즈 교수(물리학상). [EPA, 로이터=연합뉴스]

올해 노벨상 발표 일정은 경제학상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한국인뿐 아니라 아시아계 수상자는 없었다. 5일 발표된 생리의학상은 C형 간염 퇴치 공로로 하비 알터 미국 국립보건원(NIH) 부소장, 마이클 호튼 캐나다 앨버타대 교수, 찰스 라이스 미국 록펠러대 교수가 받았다. 6일 발표된 물리학상은 블랙홀 존재를 실측으로 증명해낸 로저 펜로즈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 라인하르트 겐첼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 앤드리아 게즈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 교수가 공동 수상했다. 7일 발표된 화학상은 유전자 가위를 발견한 여성 과학자들인 프랑스 에마뉘엘 샤르팡티에와 미국의 제니퍼 두드나에게 돌아갔다. 8일 발표된 문학상은 미국 시인 루이즈 글릭, 9일 발표된 평화상은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이 받았다. 상금은 각 분야 당 1000만 스웨덴 크로네(약 10억9200만원)이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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