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그레이드 코리아] 잿빛도시 숨통트자 (上)

중앙일보

입력

안개가 자욱하게 낀 지난달 26일부터 3일까지의 서울. 공기가 흩어지지 않아 오염물질이 평소의 2~3배로 치솟았다. 시민들은 내내 잔기침을 하며 답답해 했다. 서울 하늘을 더럽히는 물질의 86%는 자동차에서 나온다.

이중 낡은 버스.트럭이 주범이다. 연구 결과 노후한 대형 차량은 일반 승용차의 1천배까지 매연을 내뿜는다.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는 절대로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없다. 매연 차량은 아예 대도시에 못 들어오게 하는 등의 강력한 대책이 당장 나와야 할 시점인 것이다.

대형 차의 배출가스를 정밀 검사해 합격하면 청정 스티커를 주되, 불합격하면 매연 여과장치를 달게 하자고 전문가들은 제시했다.

이 장치를 달고도 매연이 심한 차량은 톨게이트에서 도심 출입을 막자는 것이다. 매연 차의 조기 퇴출을 유도하기 위해 새 차 구입 때 등록세를 면제하는 등의 폐차 인센티브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실제로 최근 일본 도쿄(東京) 당국은 내년부터 매연을 내뿜는 경유차는 도심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고시했다. 그리스에서는 매연 차를 폐차하고 저공해차를 사면 세제혜택이나 정부 보조금을 주고 있다.

국내엔 자동차 매연 정책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1~2년마다 받는 정기검사는 안전사고 점검 위주로 짜여 있다. 아무리 심하게 오염물질을 배출해도 사실상 마음대로 운행할 수 있다.

정부는 버스.트럭의 매연 여과장치를 연구하는 회사.개인에게 주던 지원금마저 몇 년 전 끊었다. 이후 업계에서는 매연장치 개발을 외면하고 있다.

관련 정책이 겉도는 사이 대도시의 상공은 잿빛으로 변했다. 환경정의시민연대 서왕진 사무처장은 "이대로 방치하면 머지않아 서울이 멕시코시티 같은 회색도시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서울.부산 등 7대 도시의 오존 오염도는 지난 10년간 두 배로 늘었다. 서울은 자동차에서 주로 나오는 매연 오염도 역시 일본 도쿄의 두 배, 유럽 도시의 3~4배에 이른다.

이런 상태라면 오존주의보를 발령한 상태에서 월드컵이 치러질지 모를 정도로 우리의 대기오염은 심각하다. 연세대 신동천 교수는 최근 '미세먼지 오염으로 매년 2만명이 사망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대기오염 때문에 생긴 호흡기 질환 치료비 등의 사회적 비용이 매년 4조원에 이른다고 추정한다. 하지만 관련 예산은 6백억원에 불과하다.

한국기계연구원 정용일 박사는 "연간 2천억원의 대기오염 대책기금을 조성, 대도시의 공기를 맑게 하는 각종 사업에 투자하자"고 주장했다.

그는 "매년 환경개선부담금 명목으로 경유차 소유자에게서 거둬들이는 2천억원을 이에 활용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조성된 기금을 폐차 보조금이나 매연 여과장치 개발비, 천연가스버스로의 교체 지원금 등에 쓰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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