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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게 좋아'…김정은 스타일의 첫 심야 열병식 개최

중앙일보

입력

북한이 10일 오후 7시 노동당 창건 75주년을 맞아 10일 자정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열병식(대규모 군사 퍼레이드) 실황을 조선중앙TV를 통해 녹화 방송했다. 자정을 알리는 평양종 소리로 열병식이 시작돼 북한은 이날 열병식이 10일 0시에 시작됐음을 알렸다. 중앙TV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육성 연설과 이병철 당 군사위 부위원장과 박정천 총참모장이 지휘한 열병식 내용을 전했다.

0시 금수산태양궁전 참배 김 위원장, 이번엔 열병식 #화려한 조명 동원한 새로운 방식으로 효과 극대화

북한이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을 맞아 열병식을 열었다. 당 창건 기념일인 10월 10일과 75주년을 상징하는 모양으로 북한군이 광장에 사열해 있다. [연합뉴스]

북한이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을 맞아 열병식을 열었다. 당 창건 기념일인 10월 10일과 75주년을 상징하는 모양으로 북한군이 광장에 사열해 있다. [연합뉴스]

북한은 당 창건 기념일 또는 정부 수립기념일(9월 9일), 군 창설일(2월 8일) 등 주요 기념일을 기해 열병식을 진행해 왔다. 통상 열병식은 오전이나 오후 밝은 시간대에 진행해 왔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자정에 열병식을 진행하는 건 처음으로 안다”고 말했다.

북한이 노동당 창건 75주년을 맞아 열병식을 진행했다고 조선중앙TV가 10일 보도했다. 열병식장인 김일성 광장 인근에 기갑차량들이 도열해 있다. [연합뉴스]

북한이 노동당 창건 75주년을 맞아 열병식을 진행했다고 조선중앙TV가 10일 보도했다. 열병식장인 김일성 광장 인근에 기갑차량들이 도열해 있다. [연합뉴스]

북한의 심야 열병식 개최는 당 창건 75주년을 맞아 새로운 방식의 열병식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 집권 후 북한은 열병식 때 항공기를 동원하거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동원하는 등 매번 새로운 방식의 열병식을 추진해 왔다.

특히 북한은 지난해 말 전원회의를 열고 올해 당 창건 기념일을 대대적으로 준비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수해와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 등으로 어려움을 겪은 뒤 내세울 게 없자 새로운 방식의 행사가 필요했다는 지적이다.

전현준 국민대 겸임교수는 “김 위원장은 집권 후 뭔가 새로움을 늘 추구해 왔다”며 “코로나 19 등으로 다른 행사를 준비하는 데 어려움이 있자 열병식을 10일을 시작하는 심야에 시작함으로써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기 위한 차원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북한은 이날 열병식 동안 주석단 양옆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했고, 각종 조명을 동원한 화려함을 극대화했다. 김 위원장은 집권 이후 단번 도약과 과학기술을 강조하고, 평양 재건 사업을 통해 '화려함'을 추구했다. 이날 북한이 열병식에서 보여준 조명들은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쉽지 않은 장면들이다.

북한이 노동당 창건 75주년을 맞아 열병식을 진행했다고 조선중앙TV가 10일 보도했다. 김일성광장의 야경을 배경으로 북한군이 사열해 있다. 광장 앞쪽에서는 대형 스크린이 행사 장면을 비추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이 노동당 창건 75주년을 맞아 열병식을 진행했다고 조선중앙TV가 10일 보도했다. 김일성광장의 야경을 배경으로 북한군이 사열해 있다. 광장 앞쪽에서는 대형 스크린이 행사 장면을 비추고 있다. [연합뉴스]

김 위원장은 통상 기념일에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는데 주로 자정을 택했다. 최용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은 전날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지만 김 위원장은 보이지 않았다. 김 위원장이 별도로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을 수도 있지만, 북한 매체들은 이를 전하지 않았다.

결국 김 위원장이 새벽에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고, 대낮에 열병식을 참석했던 것과 달리 열병식을 선택한 셈이다. 기념일이 시작되는 시간, 즉 12시를 중시하는 김 위원장이 이번에는 열병식에 맞춰진 것으로 보인다.

심야 열병식은 대외 노출을 최소화하기 위한 목적일 수도 있다. 지난 7월부터 북한의 열병식 준비 동향이 수시로 국내외 언론에 나오자 새로운 방식이 필요했을 수 있다. 인공위성으로 사전에 준비 상황을 서방 국가들이 파악하는 걸 막기 위한 차원일 수 있다.

그런데 대낮에 열병식을 할 경우 감춰 왔던 무기들은 열병식 전에 정보 당국에 공개될 가능성이 크다. 어둠을 틈타 열병식 장소로 병력이나 무기가 이동할 경우 사전 노출 가능성이 대낮에 비해 다소 떨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북한은 미국 시간으로 낮 11시(한국 시간 10일 자정)에 열병식을 하고, 오전 6시(한국 시간 10일 오후 7시) 이를 방영했다. 미국을 겨냥한 심야 열병식 개최라고 볼 수도 있는 대목이다. 김 위원장은 이날 연설에서 미국을 직접 겨냥하거나 핵위협을 언급하지 않았다. 열병식을 하면서도 대미 위협 대신 수위 조절에 나선 게 아니냐는 분석이 가능한 부분이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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