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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이 남긴 화약고…100년 묵은 종교·민족갈등 또 폭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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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6호 09면

[최익재의 글로벌 이슈 되짚기] 아제르바이잔 vs 아르메니아 분쟁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분쟁이 격화되고 있다. 지난 6일(현지시간) 한 여인이 포탄이 떨어져 폐허가 된 집을 바라보고 있다. [EPA=연합뉴스]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분쟁이 격화되고 있다. 지난 6일(현지시간) 한 여인이 포탄이 떨어져 폐허가 된 집을 바라보고 있다. [EPA=연합뉴스]

스탈린이 남긴 화약고에 다시 불이 붙었다. 러시아 남부 카프카스 지역에서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의 영토 분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지난달 27일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서 시작된 양측의 교전이 2주째 이어지고 있다.

아제르 영토지만 아르메인이 80% #‘나고르노-카라바흐’ 소유권 다툼 #2주째 교전, 1992년엔 3만 명 희생 #소련 분할통치 전략이 만든 참사 #터키 등 주변국 얽혀 해결 어려워

AP통신 등은 9일 “피해 규모가 정확히 파악되고 있진 않지만 이번 분쟁으로 현재까지 민간인을 포함해 수백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특히 지난 4일에는 영토 분쟁 지역이 아닌 아제르바이잔 제2의 도시인 간자에도 미사일이 떨어지면서 자칫 양국 간 전면전으로 확대될 조짐까지 보이고 있어 국제사회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번 영토 분쟁의 불씨는 100년 전 러시아 스탈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2년 스탈린은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를 병합한 뒤 이듬해엔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을 아제르바이잔 내 자치 지역으로 지정했다. 당시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 인구의 80%를 아르메니아인들이 차지하고 있었지만 이를 무시한 채 아제르바이잔 영토임을 인정한 것이다. 이는 스탈린의 분할 통치(Divide and Rule) 전략의 일환이었다. 서로 다른 민족 간의 갈등을 부추겨 이 문제에 집중하게 함으로써 소련에 대항할 의지를 갖지 못하게 한 것이다.

이후 나고르노-카라바흐 문제가 다시 불거진 것은 소련의 통치력이 약해진 1980년대 들어서다. 1987년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의 아르메니아인들은 독립 또는 아르메니아로의 병합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91년 소련이 붕괴되자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는 각각 독립했고, 92년엔 나고르노-카라바흐 의회도 독립공화국을 선포한 뒤 아르메니아와 통합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로 인해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는 전쟁을 벌였고 약 3만 명이 숨졌다. 러시아 등의 중재로 겨우 휴전했지만 이후에도 갈등은 해결되지 않은 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국제법상으로 이 지역은 아제르바이잔의 영토다.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의 독립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주자의 대다수인 아르메니아인들이 실효 지배하고 있다 보니 불안정한 상태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이 지난 100년간 해결되지 못한 것은 이 문제가 단순히 영토 다툼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종교와 민족 갈등, 그리고 주변국들 간의 복잡한 역학 관계가 작용하고 있다.

첫째는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대결이다. 아제르바이잔은 이슬람 국가인데 반해 아르메니아는 기독교계 국가다. 애당초 더불어 살긴 힘든 구조였던 셈이다. 아르메니아인들이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을 차지하게 된 것도 이곳을 지배한 러시아의 이주 정책 때문이었다. 1828년 러시아는 터키와 이란 등 이슬람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이 지역에 아르메니아인들을 이주시키는 정책을 폈다. 아르메니아인들을 통해 종교적 완충지대를 만들겠다는 의도였다. 이 지역이 종교적 대립의 경계가 된 계기다.

둘째, 민족 간 대결이다.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는 이웃이지만 언어와 문화적으로 매우 이질적인 민족이다. 아제르바이잔은 오히려 터키와 형제국이다. 같은 투르크계일 뿐 아니라 언어적으로도 소통이 가능하다. 게다가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제국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자국 내 소수민족이던 아르메니아인을 100만 명 이상 학살했다. 독립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인종 청소’를 자행한 것이다. 이런 터키의 동생 국가 격인 아제르바이잔에 대한 아르메니아인들의 감정이 좋을 리가 없다.

셋째, 주변국들의 복잡한 이해관계도 이번 분쟁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휴전은 오직 아르메니아가 불법 점령지에서 철수할 경우에만 가능하다. 우리는 억압받는 사람들을 지원할 것”이라며 “미국과 러시아·프랑스는 이 문제를 30년 가까이 무시해 왔던 만큼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강대국들의 개입에 반대하고 아제르바이잔을 지원하겠다는 얘기다.

반면 아르메니아엔 러시아가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분쟁 당사국들이 조속히 휴전해야 한다”고 촉구하면서도 사태가 악화될 경우 아르메니아를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분쟁이 격화되자 국제사회의 움직임도 빨라졌지만 아직 해결의 실마리는 찾지 못하고 있다. 나고르노-카라바흐 문제 해결을 위해 1992년 결성된 ‘민스크 그룹’의 공동 의장국인 미국과 프랑스 등이 휴전 촉구 성명을 냈지만 별 소용이 없다.

그런 만큼 이번 분쟁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도 점점 커지고 있다. 영토 분쟁이 자칫 강대국들의 대리전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다. 유럽과 중동의 대결, 기독교와 이슬람교 갈등의 뿌리 깊은 역사가 얽혀 있는 이번 나고르노-카라바흐 사태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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