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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늑대의 시간, 순우리말은 ‘이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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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우리말 찾기 여행 ⑧ 날씨

자연은 늘 아름답다. 다만 덜 아름다울 때가 있고, 더 아름다울 때가 있다. 그림 같은 풍경이라고 해서 찾아갔다가 실망하는 경우는 대개 더 아름다울 때를 맞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행의 묘미가 여기에 있다. 애써 찾아간 공간이, 가장 아름다운 시간과 맞아떨어질 때 여행은 평생 잊기 힘든 추억을 남긴다. 자연의 찰나에도 이름이 있다. 그것도 어여쁜 우리말 이름이 있다.

◆이내=일몰 사진을 찍을 때 주의사항이 있다. 해가 넘어갔다고 바로 철수하면 안 된다. 해가 진 직후 하늘에서 가장 예쁜 순간이 열린다. 해는 없지만, 하늘에 푸르스름한 기운이 남아 있는 시간. 길어야 20분이 안 넘는, 낮과 밤이 교대하는 시간의 하늘을 ‘이내’라 한다. 오로지 이 순간을 가리키는 순우리말이다. 한자어로는 ‘남기(嵐氣)’라 한다. ‘남’ 자가 어렵다. 산에 서리는 아지랑이 같은 기운을 말한다.

이내

이내

‘개와 늑대의 시간(l’heure entre chien et loup)’이라는 프랑스어 표현이 있다. 개와 늑대를 구분할 수 없는 시간이라는 뜻으로, 낮도 밤도 아닌 애매모호한 경계의 시간을 이른다. 도시의 은은한 야경도 이내와 잘 어울린다(위 사진). 이내가 가시면 하늘은 비로소 검은색이 된다. 프랑스풍으로 늑대의 시간이 열린다.

윤슬

윤슬

◆윤슬=물비늘이라고도 한다.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을 이른다(아래 사진). 화창한 한낮에도 볼 수 있고, 휘영청 달 뜬 밤에도 볼 수 있고, 해가 뜨거나 지는 어스름에도 만날 수 있다. 바다든, 호수든 물결이 잔잔해야 윤슬이 더 잘 든다. 한낮에 윤슬이 들 때 물은 은빛을 띤다. 어스름에 윤슬이 들면 물은 금빛으로 번쩍인다. 하늘색이 한가지가 아닌 것처럼 물색도 하나가 아니다.

◆볕뉘=이름에 뜻이 매겨져 있다. 볕이 누워 볕뉘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작은 틈을 통하여 잠시 비치는 햇볕’을 말한다. 나무 울창한 숲에서 종종 볕뉘를 만났다. 해가 옆에서 비칠 때, 그러니까 오전이나 오후에 볕뉘가 자주 나타난다. 어쩌면 사진은 햇볕과의 숨바꼭질이다.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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