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더오래]변심한 옛 애인과 은밀한 관계인 유부남의 비극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한형철의 운동화 신고 오페라 산책(35)

최근에는 군대에서도 평일에 외출·외박이 가능하고, 일과 후에는 휴대폰도 사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허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병사는 전화를 사용하기 어려웠지요. 휴가가 1년에 한 번뿐인 병영 생활이기에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연인 사이라 하더라도 남자가 군대 복무하는 사이에 여자가 변심하는 일이 다반사였답니다. ‘고무신 거꾸로 신는다’는 말이 바로 그것이지요.

마스카니가 1890년 초연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촌스러운 기사’란 뜻이랍니다. 군대 간 사이 고무신을 거꾸로 신어버린 옛 애인과 은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남자가 죽기 전에 새로운 여자를 기사 노릇 하듯이 보호하려 하는 내용의 단막 오페라입니다.

이 작품은 서민의 거친 삶을 격정적으로 표현한 사실주의(베리스모) 오페라의 대표 작품이에요. 그 이후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 푸치니의 ‘외투’ 등 베리스모 오페라가 유행하였습니다.

부활절을 배경으로 한 이 오페라는 종교적 엄숙함을 담은 고요한 선율이 흐르다가도 치열한 남녀 간의 긴장감과 처절한 분노, 그리고 애잔한 연민의 정을 들려주고는 번개 치듯 순식간에 음악이 끝납니다. 피날레에 일반적으로 있기 마련인 아리아나 중창·합창 등 어떤 노래도 없이 날카로운 칼날이 번쩍이는듯한 여인의 절규로 마무리되지요.

따라서 극단적인 스토리와 음악적 대비로 인해 관객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손에 땀을 쥐며 사실적인 오페라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답니다.

시칠리아의 주도 팔레르모 시내의 오렌지나무. [사진 한형철]

시칠리아의 주도 팔레르모 시내의 오렌지나무. [사진 한형철]

우아한 하프 선율이 깔리며 목가적인 전주곡이 점차 고조되면서 막이 오릅니다. 시칠리아의 평범하지만 평화로운 아침, 시골 마을에 교회 종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마침 부활절이랍니다. 마을 사람들이 교회에 가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를 합창하는데, 부드러운 계절과 아름다운 사랑을 찬미하며 신께 감사하는 감동적인 노래랍니다.

콘트라베이스의 어두운 선율이 바닥에 울렁대며 산투차의 마음을 드러내 줍니다. 산투차는 선술집의 시어미에게 투리두가 어디 있는지를 묻습니다. 그녀는 아들이 술 사러 멀리 갔다고 하지만 산투차는 어젯밤에 마을에서 그를 본 사람이 있다며 추궁하지요. 시어미는 당황하고 산투차는 버림받은 여자라고 자책합니다.

이때 힘찬 말소리와 함께 마부 알피오가 등장합니다. 그가 술을 주문하자 시어미는 술이 떨어져서 아들이 술을 사러 멀리 갔다고 하는데, 마부는 새벽에 투리두를 마을에서 보았다고 하지요. 시어미가 의아해하며 대꾸하려는 것을 산투차가 급히 말을 가로막습니다.

마부가 사라지자 시어미가 산투차에게 왜 말을 못 하게 했는지 묻지요. 산투차가 답하길, 투리두는 원래 롤라와 사랑하는 사이였답니다. 그런데 군 입대 후 롤라가 고무신을 거꾸로 신고 마부와 결혼해버렸지요. 제대 후에 롤라에게 상처 입은 투리두는 산투차를 사귀었고요. 그런데 투리두가 요즘 옛 애인 롤라 몰래 다시 만나기 시작한 것을 산투차가 눈치채 버린 상황이랍니다. 이 절망적인 상황에 산투차는 시어미가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호소하지요.

투리두가 등장하자 산투차는 간밤에 어디 갔었는지를 캐묻고, 롤라와의 관계를 의심하며 그를 다그칩니다. 그녀의 질투를 구속으로 받아들이며 그녀를 거부하는 투리두. 그들의 분위기는 점점 불안해집니다. 이때 롤라가 나타나자, 그녀와 산투차가 신경전을 벌이기도 하고요.

투리두는 롤라에 대한 산투차의 행동을 비난하며 롤라를 따라 갑니다. 눈물로 애원하는 산투차를 모질게 밀치면서 말이에요. 비탄에 빠진 산투차는 바닥에 쓰러져 그에게 저주를 퍼붓는데, 아뿔싸! 마침 마부 알피오가 나타났네요. 질투에 눈이 먼 그녀는 두 사람의 불륜을 털어놓아 버립니다. 알피오가 복수를 외치자 산투차는 자신의 경솔함을 깨닫고 두려워하지만, 이제 비극을 막을 수 없게 되어 버렸네요.

이런 흥분을 가라앉히려는 듯이 두 개의 하프연주에 목가적이고 서정적인 현악기가 연주되는, 오페라 중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할만한 간주곡이 흐릅니다. ‘대부3’ 등 많은 영화와 드라마 또는 CF에 사용된, 경건하면서 가슴 시리도록 슬프기도 한 음악이지요. 명곡 중의 명곡이랍니다.

부활절 미사가 끝나고 모두 술을 마시며 축배의 노래를 흥겹게 부르는데, 아내의 불륜을 알게 된 마부가 침울한 표정으로 나타납니다. 그에게 투리두가 술을 권하지만, 마부는 잔을 내치지요.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결국 시칠리아 관습대로 투리두가 그의 오른쪽 귀를 깨물어 결투를 신청합니다.

스스로 죽음을 예감한 투리두는 어머니에게 산투차를 잘 돌봐달라고 부탁합니다. 마치 전장터에 나가는 기사처럼, 산투차에 대한 연민을 베풀지요. 어머니에게 키스해 달라고 한 뒤 투리두가 나가자 비장한 음악이 흐르고, 잠시 뒤 여자의 비명소리가 하늘을 찌르며 막이 내려집니다. “투리두가 죽었다!”

투리두가 죽었다! [사진 Flickr]

투리두가 죽었다! [사진 Flickr]

이 작품은 분명 이전의 오페라답지 않답니다. 빈부 격차와 인간적 갈등 그리고 비극도 아름답게 표현함으로써 미화하곤 했던 당시의 오페라에 비해, 이 오페라는 시적인 표현 없이 직설적이고 꾸밈없지요. 촌구석에서 ‘막사는’ 사람의 거친 말투 그대로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불편한 진실 그리고 격정과 애욕까지도 날 것 그대로 드러낸 ‘사실 그대로’의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입니다.

오페라 해설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