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30년된 살구나무 157그루 '싹둑'···"지못미" 반발한 주민들 왜

중앙일보

입력

‘하천정비’ 살구나무 157그루 ‘싹둑’

충북지역 환경단체가 가경천에 공사장 살구나무 자리에 근조 전단을 붙여놨다. 최종권 기자

충북지역 환경단체가 가경천에 공사장 살구나무 자리에 근조 전단을 붙여놨다. 최종권 기자

충북 청주 가경동 살구나무 거리에 있는 나무 157그루가 하천정비사업 과정에서 베어져 주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1994년 조성' 청주 대표 산책길 훼손에 비난 #충북도 “통수량 늘리기 위해선 어쩔 수 없어” #

 8일 충북도에 따르면 2025년까지 진행하는 가경천 가경지구 지방하천 정비사업 7.8㎞ 구간 공사과정에서 지난달 24일 수령 30년가량의 살구나무 157그루가 베어졌다. 주민들은 “멋진 경관이 일품인 살구나무 거리가 훼손됐다”며 반발하고 있다.

 가경천 살구나무 거리는 1994년 서청주새마을금고가 가경동 동부아파트~하복대 두진백로아파트까지 약 7㎞ 제방에 3000여 그루의 살구나무를 심으면서 조성됐다. 매년 봄이면 무심천 벚꽃길과 함께 청주 시민이 찾는 대표적인 산책길이다. 주민 이종상(65)씨는 “아침, 저녁으로 살구나무 길을 걸으며 운동을 했었는데 하루아침에 그늘도 없는 벌거숭이 길로 만들어놨다”며 “홍수 예방을 위한 하천 정비를 반대하지 않지만, 멀쩡한 나무를 충분한 상의 없이 없앤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충북도는 2017년 청주에 큰 수해가 나자 가경천과 석남천을 취약지구로 선정, 도비 350억원을 들여 지난해 10월부터 하천정비 공사를 하고 있다. 통수 단면을 넓히기 위한 하천 준설작업과 제방 정비, 돌망태 설치 등 작업이 이뤄진다. 이번에 베어낸 살구나무는 발산교~죽천교 500m 구간이다. 주민 김모(67)씨는 “공사 차량 진입로 일부만 베어내고 나머지 나무는 살리는 방법을 택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25일 충북 청주시 흥덕구 가경천에서 하천 정비사업 공사장에 베어낸 살구나무가 쌓여있다. [사진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

지난달 25일 충북 청주시 흥덕구 가경천에서 하천 정비사업 공사장에 베어낸 살구나무가 쌓여있다. [사진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

주민들 "설명도 없이 나무 없앴다"

 환경단체는 가경천을 찾아 베어낸 살구나무 자리에 근조(謹弔) 전단을 붙이고 7일 충북도청에서 항의 집회를 했다. 이성우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 처장은 “공사설계 내역을 보니 살구나무가 있는 자리에 폭 80㎝짜리 홍수방어벽을 설치하도록 계획했다”며 “나무를 베어낸다는 계획을 주민에게 적극적으로 알리고, 생태를 최대한 보존하는 방법으로 공사를 진행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 처장은 “도심 하천에 발생하는 홍수는 통수량의 문제가 아니라, 하천으로 갑자기 유입되는 빗물이 많아서 발생하는 것”이라며 “향후 하천정비사업은 저류시설 확보와 배수로 정비 등에 집중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충북도는 공법상의 이유로 나무를 베어냈다는 입장이다. 이종기 충북도 하천계획팀장은 “가경천 밑에는 광역상수도관과 하수도관이 깔려있어서 준설을 깊게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통수 단면을 넓히기 위해서는 살구나무를 베어낸 뒤 제방 경사도를 가파르게 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착공 전에 주민설명회를 4차례나 했으나, 참석 인원이 워낙 적다 보니 나무를 베어낸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충북도는 가경1교에서 대농교 구간 살구나무 627그루를 추가로 베어낼 계획이었으나, 주민 반발이 거세지자 공사를 잠정 보류했다.

청주=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