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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조가 있는 아침

(40) 독작(獨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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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유자효 시인

유자효 시인

독작(獨酌)
박시교 (1945∼)

상처 없는 영혼이
세상 어디 있으랴

사람이
그리운 날
아, 미치게
그리운 날

네 생각
더 짙어지라고
혼자서
술 마신다

- 독작(2004. 작가)

“남루할지라도 비루하지 않으리라.”

혼자서 술을 마신다. 미치도록 사람이 그리운 날은 네 생각이 더 짙어지라고 마신다.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요즘 상황을 그린듯한 시조다. 코로나19 방역으로 우리는 고향 가기도 망설여지는 추석을 보내야 했다. 민주화의 상징인 광화문광장엔 거대한 경찰차벽이 서고 대부분의 시위가 금지됐다. 결혼식장이나 상가도 마음 놓고 갈 수가 없다. 마스크로 얼굴은 가려야 하고, 어딜 가나 나의 행적은 드러내 놓아야 한다. 이 기막힌 세상에서 사람이 더욱 그립다.

박시교는 초기에 쓴 자유시 수십 편을 스스로 폐기하고 시조만 써온 시인이다. 50년 문단 생활에 시조집 5권이니 그 엄격한 절제 의식을 알겠다. 박시교의 초기시는 허무주의와 전통적 한의 정조였다. 그것이 근래에 와서 휴머니즘과 시대정신으로 대치되었다. 지난해 제18회 유심작품상 수상 때 “남루할지라도 비루하지 않으리라”는 인상적인 소감을 밝혔다.

유자효(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