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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다음날 김정은도 위로전문···트럼프 확진에 '3각 친서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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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계기로 남ㆍ북ㆍ미 정상의 친서를 활용한 삼각 외교 채널이 주목받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악수하고 있다.조선중앙통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악수하고 있다.조선중앙통신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일 트럼프 대통령 부부의 코로나 확진 판정 직후 “우리 내외는 대한민국 국민과 함께 대통령님과 여사님의 조속한 쾌유를 기원드리며, 가족들과 미국 국민들에게도 각별한 위로와 격려의 말씀 전합니다”라는 위로전문을 발송했다.

하루 뒤인 3일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위로전문을 보낸 사실이 공개됐다. 김 위원장은 위로전문에서 “미합중국 대통령 도날드 제이 트럼프 각하, 나는 당신과 영부인이 코로나 비루스(바이러스)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았다는 뜻밖의 소식에 접했다”며 “나는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게 위문을 표한다. 당신과 영부인이 하루빨리 완쾌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적었다. “당신은 반드시 이겨낼 것”이라고도 했다.

김 위원장은 앞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후안오를란드 에르난데스 온두라스 대통령, 알레한드로 잠마테이 과테말라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등이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지만 특별한 조처를 하지 않았다.

일각에선 북한이 즉각 위로전문을 발송하고, 내용까지 공개하는 등 이례적 행보를 취한 배경이 11월 미국 대선과 연관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부가 2일(현지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 결과 양성 판정을 받았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를 통해 밝혔다. 트럼프 트위터 캡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부가 2일(현지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 결과 양성 판정을 받았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를 통해 밝혔다. 트럼프 트위터 캡처.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이미 세 차례 만났다.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이뤄진 1차 북ㆍ미 정상회담에서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과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노력 등 4개 항의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그러나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 회담은 ‘노딜’로 끝났다. 지난해 6월에는 두 사람은 문 대통령과 함께 판문점에서 다시 만났지만 진전된 결과는 없었다. 그해 10월 스웨덴 북ㆍ미 실무협상의 결렬 이후 북ㆍ미를 비롯해 남북 관계까지 장기 경색 국면을 지나고 있다.

이후 논의는 진전되지 않고 있지만 북한으로서는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승리할 경우 기존 북ㆍ미간 대화와 합의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부담을 안게 될 가능성이 크다. 또 김 위원장이 선호하는 '톱다운' 방식의 대화가 지속될 수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게 된다.

이와 관련 여권의 핵심 관계자는 3일 “지난달 12일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 내용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가 강조한 대목은 “끔찍한 올해의 이 시간들이 속히 흘러가고 좋은 일들이 차례로 기다릴 그런 날들이 하루빨리 다가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겠다”는 내용이다.

이 인사는 “김 위원장이 ‘끔찍한 올해의 시간’을 언급하며 ‘좋은 일들이 차례로 기다릴 그런 날을 기다린다’고 한 것은 여전히 대화에 대한 적극적인 열린 자세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공을 들여왔다. 2018년 12월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는 “각하처럼 강력하고 뛰어난 정치인과 좋은 관계를 맺은 것이 기쁘다”고 했고 다른 편지에서는 “우리의 깊고 특별한 우정이 양국 관계의 장애물을 없애는 마법의 힘으로 작용할 것으로 믿는다”고 썼다. 2통의 편지에서만 ‘각하’라는 표현이 16차례나 나온다. 3일 공개한 위로전문에서도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을 ‘각하’로 칭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9년 6월 30일 오후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배웅을 받으며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으로 돌아가다 뒤돌아보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9년 6월 30일 오후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배웅을 받으며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으로 돌아가다 뒤돌아보고 있다. 연합뉴스

밥 우드워드가 트럼프 대통령과 18차례에 걸쳐 진행한 인터뷰와 백악관 취재 내용을 종합해 출간한 책 『격노(Rage)』에는 두 정상이 27통에 걸친 친서를 주고받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 중 25통은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았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 사이에서도 공개된 친서만 11통에 달한다. 공개되지 않은 친서 왕래는 이보다 많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청와대는 지난달 서해에서 벌어진 북한군의 남측 민간인 사살 사건으로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남북 정상이 주고받은 친서를 공개했다. 처음으로 친서의 전문까지 공개했다. 문 대통령이 그간 “특사가 직접 가지고 가서 전달하는 경우 외에는 친서를 보내고 받은 사실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고, 내용은 공개하지 않는 것이 관례”라고 해왔던 점과 비교하면 극히 이례적이다.

서훈 국가안보실장은 지난달 25일 “친서 교환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커짐에 따라 문재인 대통령께서는 최근 주고받은 친서 내용도 있는 그대로 모두 국민들에게 알려드리도록 지시했다”며 이례적 결정이 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이뤄졌음을 밝히기도 했다.

지난 2019년 6월 30일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_이 경기 파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자유의 집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2019년 6월 30일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_이 경기 파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자유의 집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그러나 북한이 적극적으로 미국 대선에 개입한다는 인상을 줄 가능성은 낮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여권의 핵심 인사는 “김 위원장은 여러 차례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원하고 있다는 뜻을 밝혀왔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북한으로서도 미국 대선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하지만 특정 후보를 공개 지지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바라고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결과를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굳이 바이든 후보 측의 반감을 살 이유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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