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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에어비엔비, 3년만에 빛…'한걸음모델' 한걸음 더 나가야

중앙일보

입력

기존 민박업계와 갈등으로 좌초 위기에 몰렸던 한 숙박 스타트업이 사업 시작 3년 만에 빛을 본다. 정부가 신규 사업자와 기존업계를 중재하는 ‘한걸음모델’을 처음 적용해 제한적으로 이 사업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이런 조정이 혁신 업체에게 새 탈출구가 될 수 있지만,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제2 타다 막는다…‘한걸음모델’ 첫 사례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21일 열린 혁신성장전략회의에서 농·어촌 빈집 숙박 서비스 '다자요'를 '한걸음모델' 첫 사례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21일 열린 혁신성장전략회의에서 농·어촌 빈집 숙박 서비스 '다자요'를 '한걸음모델' 첫 사례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

정부는 21일 혁신성장전략회의에서 농·어촌 빈집 숙박 서비스 ‘다자요’를 한걸음모델 첫 사례로 선정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신기술·서비스 심의위원회(23일)에서 다자요를 규제 샌드박스 실증 특례로 지정하면, 2년간 조건부로 사업을 하게 된다.

다자요는 농·어촌 빈집을 10년간 무상임대해 리모델링한 후 숙박시설로 재활용하는 농·어촌 숙박서비스로 2017년 처음 시작했다. 지난해 기준 6만1317동으로 추산되는 농·어촌 빈집을 활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관광도 활성화 시킬 수 있어, 공유숙박 서비스인 에어비엔비의 한국판 모델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원래 있던 농·어촌 민박업체 이익을 침해하고 마을 경관을 해친다는 반발에 사업 초기부터 난항을 겪었다. 지난해 7월에는 농·어촌 민박 거주요건 위반으로 아예 사업을 중단했다. 하지만 이번 정부 결정으로 한시적이지만 3년 만에 공식 사업 허가를 받았다. 남성준 다자요 대표는 “이렇게라도 사업을 시작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매출액 일부 공유…조건부 사업 허용

기획재정부가 밝힌 농·어촌 빈집 숙박 합의에 적용된 세부 방안. 기획재정부

기획재정부가 밝힌 농·어촌 빈집 숙박 합의에 적용된 세부 방안. 기획재정부

사업 재개는 정부 중재에 힘입었다. 평행선을 그리던 다자요와 기존 업계가 한걸음모델을 통해 조건부지만 사업 진행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합의안에 따르면 다자요는 연면적 230㎡ 미만 비어있는 단독 주택만 숙박업소로 사용하되, 사업 범위는 5개 시·군에서 총 50채 이내로 제한했다. 사업 기간도 1년에 300일 기준 2년 한시로 허용한다.

또 기존 업체와 형평을 위해 농어촌 정비법에 따른 농어촌민박 서비스·안전 기준도 따라야 한다. 소화기, 휴대용 비상 조명등, 화재 감지기 등 안전시설을 갖추고 화재·책임보험도 가입하기로 했다. 사고 대응 전담 인력도 둬야 한다.

특히 매출액 일부는 기금으로 조성해 마을 주민과 이익을 나누기로 했다. 정부도 재정으로 기존 민박업계에 대한 안전 교육 및 컨설팅을 지원해 경쟁력을 높인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상생과 혁신 선순환을 확산하기 위해 앞으로도 이해관계자 간 갈등의 신속한 해소를 통한 신산업 활성화를 지원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정부 상생모델이 스타트업 또 다른 부담될 수도

우여곡절 끝에 한걸음모델의 첫 사례가 나왔지만, 진짜 혁신 산업을 지원하는 제도가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남은 과제가 더 많다는 평가다. 정부가 기존 업계와 신규 사업자의 갈등을 중재한 점은 긍정적이지만, 자칫 기존 업계 눈치 보기로 이어진다면 오히려 새로운 사업자에게는 또 다른 통과의례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다자요 합의처럼 신규사업자가 시장진입을 위해 기존업계와 이익을 공유하는 사례가 많아진다면, 자본력이 떨어지는 스타트업은 사업 시작 자체가 불가능할 수 있다. 앞서 ‘타다’도 정부가 택시업계와 갈등을 중재하며 기여금을 내고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를 마련했다. 하지만 정작 타다는 이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며 서비스를 중단했다. 구자현 한국개발연구원 지식경제연구부장은 “숙박이나 택시 쪽 스타트업은 자본 여유가 있는 분들이 아니기 때문에 기존 업계와 계속 상생하면서 사업 진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그런데도 기존 업계가 이익 침해에 집단으로 목소리를 내는데 이를 무시할 수도 없다는 것이 정부 고민”이라고 지적했다.

한걸음모델이 중재가 아닌 과잉 협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조산구 공유숙박업체 위홈 대표는 “기존 업계와 1년 협의 끝에 최근 규제샌드박스로 사업 승인을 받았다”며 “그런데 다시 한걸음모델이 생겨 추가 제도화를 협의하고 있는데 이게 규제 옥상옥처럼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어쨌든 막혔던 사업을 시작하게 했다는 점에서는 한걸음모델을 긍정적으로 본다”면서도 “2년 한시로 사업을 허용하고 끝낼 게 아니라 원래 제도를 바꾸고 더 많은 혁신 기업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해야 의미가 있다”고 조언했다.

세종=김남준 기자 kim.nam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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