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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간 대한민국을 찍다, 3대째 사진작가 가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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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서울 청담동 라이카 스토어에서 만난 사진작가 임정의(오른쪽)씨와 아들 준영씨. 선친 임인식과 큰 아버지 임석제 등 3대 네 명의 사진작가는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기록했다. 우상조 기자

서울 청담동 라이카 스토어에서 만난 사진작가 임정의(오른쪽)씨와 아들 준영씨. 선친 임인식과 큰 아버지 임석제 등 3대 네 명의 사진작가는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기록했다. 우상조 기자

오는 10월 4일까지 서울 라이카 스토어 청담점에서 사진전 ‘Life goes on(삶은 계속된다)’이 열린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임인식(1920~98)씨가 기록한 1950년대 서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자리다. 기와집들이 레고블록처럼 기하학적인 풍경을 이루는 항공사진들은 당시 임인식 작가가 직접 경비행기를 타고 촬영한 사진들이다.

조부 임인식 6·25 종군 사진대장 #부친 임정의 한국 1호 건축사진가 #아들 임준영도 기록사진 대 이어 #“고단한 길” 아버지들은 다 말려

1920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난 임 작가는 20대부터 카메라와 사진에 관심이 많았다. 1944년 서울로 이주해 용산 삼각지 부근에 카메라점 한미사진기를 차렸다. 덕분에 1945년 해방과 더불어 용산역에서 일본인들이 철수하는 장면,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행사 등 시대 풍경을 고스란히 담을 수 있었다. 육군사관학교 8기 특별반에 입교한 그는 1950년 국방부 종군 사진대장으로 ‘밀러터리 포토’ 명패를 단 지프를 타고 전쟁의 최일선을 누볐다. 정전협정의 순간에도 그가 있었다. 이후 대한사진통신사를 운영하며 역사의 현장 사진을 AP통신 등 해외 매체에 제공했다.

그의 가족사도 유명하다. 형님 임석제(1918~96)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아들 임정의(1944~)는 대한민국 1호 건축 사진전문가다. 손자 임준영(1976~) 역시 예술 및 기록사진작가.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대를 이어 카메라에 담은 셈이다. 일례로 임인식, 임정의, 임준영 3대가 촬영한 서울 동대문운동장은 그  변천 과정의 소중한 기록이다. 2016년엔 임준영씨가 네 사람의 사진을 함께 담은 ‘The Big Flow(대를 잇다)’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전시장에서 만난 임정의·준영 부자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기록한 집안’이라는 수식어에 자부심이 크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도와 암실 작업을 많이 했죠. 사진과 친해질 수밖에 없었는데, 아버지는 제가 사진가가 되는 걸 반대하셨어요. 돈 못 버는 직업이라는 거죠. 하하”(임정의)

3대가 촬영한 서울 동대문운동장. 1954년 임인식씨가 렌즈에 담은 기록이다.

3대가 촬영한 서울 동대문운동장. 1954년 임인식씨가 렌즈에 담은 기록이다.

임정의씨는 1973년 코리아헤럴드 사진부 기자로 2년 일한 뒤 그만두고 건축 전문사진가의 길을 걸었다. 건축가 김수근을 만난 게 계기였다. 그는 ‘86 아시안게임’ ‘88 올림픽’을 전후해 변화하는 서울의 모습, 화려한 불빛과 그늘을 카메라에 담았다. 최근엔 지방의 ‘아침 풍경’에 몰두하고 있다.

“저 역시 아들이 사진을 하겠다고 했을 때 ‘안 된다’고 했죠. 정말 고단한 길이란 걸 아는데 어떻게 아들에게 하라고 하겠어요.”(임정의)

3대가 촬영한 서울 동대문운동장. 1997년 임정의씨가 렌즈에 담은 기록이다.

3대가 촬영한 서울 동대문운동장. 1997년 임정의씨가 렌즈에 담은 기록이다.

이 아들도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았다. 미국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에서 유학한 준영씨는 순수예술 사진 작업을 주로 한다. 퇴근 무렵 빌딩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을 통해 도시 사람들의 에너지를 표현한 ‘Like Water(흐르는 물처럼)’ 시리즈가 대표작이다.

“식당도 3대에 걸쳐 하다 보면 손자 대에선 변화하죠. 시대 흐름에 따라 새로운 시스템과 입맛을 도입해야 하니까요. 앞서 세 분이 하신 일을 저 역시 따라가고는 있지만 저만의 현대 방식으로 풀어보려고 노력 중입니다.”(임준영)

3대가 촬영한 서울 동대문운동장. 2014년 임준영씨가 렌즈에 담은 기록이다.(위 사진부터)

3대가 촬영한 서울 동대문운동장. 2014년 임준영씨가 렌즈에 담은 기록이다.(위 사진부터)

두 사람의 걱정은 3대가 80년 넘는 세월 동안 남긴 방대한 사진들을 기록·보관하는 아카이브 작업이다. 준영씨가 할아버지 임인식 작가의 호를 딴 ‘청암 아카이브’ 출판사를 차려 정리 중이지만 쉽지가 않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새것을 쌓아 올리기에만 급급했지 옛것을 보관할 줄은 몰랐어요. 하지만 과거는 현재와 미래를 잇는 소중한 자산이잖아요. 사진으로나마 후대에 물려주고 싶은데 개인 힘으론 어렵네요. 협업하자는 제안은 들어오지만 제대로 된 작업을 하자는 단체나 기업은 없어 안타깝습니다.”(임정의)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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