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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는 피로, 개는 위로” ‘집콕’ 육아 스트레스, 테라피 독이 씻어준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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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4호 16면

[견공, 직업의 세계] 치료견

휠체어에 앉은 환자가 테라피 독과 교감하며 동물매개치료를 받는 모습. [라이프앤도그]

휠체어에 앉은 환자가 테라피 독과 교감하며 동물매개치료를 받는 모습. [라이프앤도그]

31개월 된 여자아이를 키우는 서른한 살 전업주부 미진(가명)씨는 같은 동네에 사는 내 육아 동무다. 며칠 전, 집 근처 공원에서 유모차와 개를 동시에 끌고 산책 나온 그녀를 만났다. 결혼 전부터 키웠다는 회색 토이 푸들 ‘캐시’가 나를 먼저 알아보고 반가워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며 지역 어린이집 모두 긴급보육을 제외하고는 휴원 상태. 그래서인지 주말부부로 평일 육아를 도맡아야 하는 엄마의 피로도는 이미 한계치를 넘은 듯 보였다.

코로나 탓 우울증 걸린 주부 #반려견 덕에 심적 안정감 찾아 #신체 이완 반응에도 긍정 효과 #애견인들 혈압·지방 수치 낮아 #매개체 활용 땐 치료 효과 상승 #어린이 자폐증 개선되기도

“애만 데리고 나와도 힘들 텐데 캐시까지 같이 나왔네?” 대견하다는 의미를 담은 나의 질문에 건조한 대답이 돌아왔다. “아이는 피로, 개는 위로입니다.” 푸념 섞인 우스갯소리로 자조하는 그 심정을 워킹맘인 나도 충분히 이해했다. 몇 달간 맘 편히 외식도 못 하고 외출은 집 앞 공원이 고작인 그녀는 극심한 육아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감은 물론 간 수치가 정상인의 2배 이상 올라가 약까지 처방받았다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반려견만큼은 ‘위로’라고 표현하는 심리란 과연 어떤 것일까.

‘귀여움이 세상을 구원하리라.’ 반려견의 귀여움이 아픈 당신을 치료한다는 건 얼핏 들으면 허무맹랑한 소리 같아도 과학적 효과가 입증된 말이다. 실제로 사람을 잘 따르는 개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 우울감이나 좋지 않은 기분 상태가 바뀔 수 있다. 반려동물은 스트레스 감소, 정서 안정, 심리적 긴장 완화 등에 도움이 되는데, 특히 인체의 ‘이완 반응’까지 돕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호주의 한 연구에 따르면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의 혈압은 물론 콜레스테롤, 트라이글리세라이드 등의 지방 성분 수치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게 밝혀졌다. 이런 지방 성분은 심장병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니 흔히들 귀여운 강아지를 보고 ‘심쿵사’한다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다. 귀여운 강아지를 보는 당신의 심장은 나날이 튼튼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려견은 당신의 심장을 튼튼하게 만든다

개뿐만 아니라 고양이·토끼도 동물매개치료에 활용할 수 있다. [라이프앤도그]

개뿐만 아니라 고양이·토끼도 동물매개치료에 활용할 수 있다. [라이프앤도그]

긍정적인 효과는 육체적인 것을 뛰어넘는다. 베이징사범대학 심리학과에서는 베이징에 거주하는 700여 ‘홀몸노인 가정’을 무작위로 선정해 조사했는데, 결과는 모두가 예상하듯 반려동물을 키우는 독거노인의 신체와 정신건강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월등했다. 반려동물을 통해 안정감, 자아의 가치, 사랑 등을 느낄 뿐 아니라 사회적 교류의 기회가 많아지니 생활의 만족도와 행복감도 올라간 것이다. 우울 증상을 보이는 미진씨가 캐시에게서 받은 위로 또한 광범위한 치료에 해당할 것이다. 매일 반복되는 육아라는 쳇바퀴 속에서 고투를 벌이는 그녀에게 순종적인 반려견은 심적 안정감을 주고 안고 있는 동안 육체적 긴장도 풀어주는 존재다.

이런 다양한 이득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인간이 아니기에 탄생한 것이 바로 동물매개치료다. 동물매개치료란 사람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증진하는 치료 과정에서 동물이 중간 매개체가 되어 시너지를 일으키게 하는 것을 뜻한다. 장애인 도우미견처럼 개를 직접적인 도구로 쓰기도 하고, 개와 함께 신체 활동을 하면서 간접적인 재활과 심리 안정 효과를 누리기도 한다.

활동 가능한 동물로는 개 이외에도 고양이, 말, 당나귀, 기니피그, 토끼, 미니어처 피그, 심지어 라마나 알파카까지 다양하지만, 국내 실정상 대부분은 개이며 때론 사회화가 잘된 고양이를 활용하기도 한다. 이들이 바로 ‘테라피 독’, 혹은 ‘테파리 캣’이다.

그래픽=전유리 기자 jeon.yuri1@joins.com

그래픽=전유리 기자 jeon.yuri1@joins.com

프로그램은 간식 주기, 쓰다듬기와 같은 친화 활동에서 걷기, 돌보기, 공놀이 등의 놀이활동과 퍼즐 완성하기 등의 임무 수행까지 치료 단계에 맞춰 다양하게 구성하고 있다.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힘듦과 반복의 연속인 질병 프로그램 과정 중에 귀여운 활동견 한 마리만 추가해도 많은 것이 달라진다고들 한다. 사랑스러운 동물이 함께하면 환자가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할 뿐더러 집중력도 강화된다는 것이다.

위즈동물병원 위혜진 수의사는 6살 자폐증 어린이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여러 치료 프로그램을 전전했으나 딱히 증세가 나아지지 않았던 아이가 동물매개활동견과 친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꾸준히 알려주자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개를 위해 배려하는 행동이 나날이 늘어났고, 활동이 끝날 때마다 부모에게 짝꿍이었던 강아지의 이야기를 재잘거리며 다음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기까지 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먼저 다가와 대화하는 법이 없었던 아이였기에 변화를 본 부모는 너무나 좋아하며 감사의 인사를 전해왔다고 한다.

코로나 블루 특효약은 반려견?

이렇듯 동물매개치료는 환자뿐 아니라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에게 고른 혜택을 준다. 동물매개활동이 적용된 의료기관에서는 보호자와 가족은 물론 담당 의료진 모두가 더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치료 활동을 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업무 스트레스까지 줄어드는 부수 효과는 덤이다.

동물매개치료사인 이웅종 교수가 치료견을 훈련 하는 모습. [라이프앤도그]

동물매개치료사인 이웅종 교수가 치료견을 훈련 하는 모습. [라이프앤도그]

유기견이 테라피 독으로 변신하는 케이스도 있다. 반려견 훈련 원조로 잘 알려진 이웅종 교수의 둥글개 봉사단에서는 유기견 출신 도우미견을 활용해 지역사회의 취약 노인들과 아동, 청소년을 중심으로 동물과 시간을 보내며 치유하도록 돕는 동물 매개활동을 시행 중이다. 사람에게 상처받고 버림받은 개들이 사람을 치유하고 돕는 선순환적 구조다.

일반인도 쉽게 동물매개치료를 간접 경험해볼 수 있는 공간 또한 문을 열었다. 고양시에 자리한 반려견 복합문화공간인 소노펫클럽&리조트에서는 유아를 대상으로 테라피 독과 함께하는 동물매개활동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관련 전문 자격을 취득한 전문가 지도로 산책은 물론 도우미견에게 줄 간식을 만들어보는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할 예정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길어지면서 일명 ‘코로나 블루’가 퍼지고 있는 요즘, 아마도 지금 당신의 곁을 지키는 반려견이 ‘테라피 독’의 치유 역할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팬데믹 기간이 길어지면서, 세계 각국에서 반려동물 입양이 증가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코로나19 유행 초기만 해도 반려동물이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다는 잘못된 정보로 억울하게 유기되는 개와 고양이가 사회 문제로 떠올랐는데, 펜데믹 기간이 길어질수록 오히려 외로움을 달랠 반려동물을 들이는 가정이 늘어났다. 하지만 사람들이 진짜 원하는 게 새로운 가족인지, 아니면 그저 심심함과 허한 마음을 달래 줄 존재인지 불분명해 보인다면 지나친 염려일까.

예루살렘 한 동물보호소에서는 “반려견은 장난감이 아니다”라며 락다운 기간 동안 찾아온 입양 희망자 중 다수를 그냥 돌려보낸 일도 있었다. 지난해 국내에 유기되어 안락사하거나 자연사한 동물은 통계에 잡힌 숫자만 6만7192마리. 테라피 독이 있어야 할 자리는 동물매개치료 현장이며, 반려견이 있어야 할 자리는 가족이 있는 따듯한 집이다. 그저 한때 쓰고 버려지는 강아지들로 인해 ‘코로나 도그’라는 신조어만큼은 생기지 않길 빌어본다.

이수진 ‘라이프앤도그’ 발행인
패션 에디터를 거쳐 매거진 회사 대표를 지내다가 반려견 ‘우연’이와 ‘봉구’를 만나며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 현재 반려동물 프리미엄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라이프앤도그’의 발행인이자 푸드 브랜드 ‘키친앤도그’ 대표로 개와 함께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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