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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상연의 시시각각

지금까지 이런 정부는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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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최상연
최상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소설 쓰시네’로 염장을 지른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이젠 “저와 아들이 가장 큰 피해자”란 궤변으로 숫제 국민을 우롱하는 중이다. ‘검찰이 밝혀 달라’는데 어떤 수사 결과를 내놔도 액면대로 믿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싶다. 수사가 아니라 수사하는 척 법석 떠는 쇼라고 보는 눈이 많아서다. 수사를 마냥 뭉개던 인사들에게 다시 수사를 맡겼으니 당연한 일이다. 검찰만도 아니다. 당·정·청이 ‘추미애 안보’에 총력전이다. 특권층 비리와 특혜 자체보다 더 심각한 게 똘똘 뭉쳐 궤변과 억지로 싸고도는 정권의 불통과 오만이다. 이 정부의 가장 큰 특징이다.

특권층 비리·특혜보다 심각한 건 #안중근까지 꺼낸 정권 억지·궤변 #전 정부선 사과하고 책임 물었다

한국 사회에서 공정성은 병역·입시·취업이 1차적 판단 기준이다. 촛불시위도 정유라의 대입 특혜가 발화점이었다. 그런 분노의 에너지로 집권한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특권층에서 일어난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지 못하면 정의사회를 말할 수 없다”며 공소시효가 끝난 일까지 사실 여부를 가리라고 지시했다. 그래서 여러 과거사가 숱하게 수사 대상으로 불려 나왔다. 왕조시대 동학혁명도 재조사할 판이란 말까지 나왔다. 그런데 정작 내 편은 무조건 옳은 모양이다. 심지어 안중근 의사론까지 나왔다. 추 장관 아들은 3연속 휴가 간 공로로 위인전에 오를 판이다.

조국·윤미향·추미애 세 사람은 자칭 ‘공정 정부’의 간판 스타지만 모두 같은 함정에 빠졌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첫 번째 법무부 장관은 아빠 찬스가 어떻게 보통 청년의 대입 기회를 뺏는 불공정한 결과를 낳는지 보여줬다. 바통 터치한 후임자는 보통 사병이면 엄두조차 못 낼 특별 조치가 엄마 찬스 없이 어떻게 가능했겠느냐는 의문을 만들었다. 정의를 내세운 비즈니스도 있다. 정권은 놀랍도록 똑같은 뻗대기와 우기기로 국민 가슴을 내리친다. 개인 비리와 검찰 개혁이 도대체 무슨 상관인가. 수사 대상이 법무부 장관 자리에 앉아 수사를 방해하는 게 검찰 개혁인가.

문 대통령은  ‘특권층끼리 담합해 국민에게 좌절과 상처를 주는 특권과 반칙의 시대를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우리 정부 들어 국정원·검찰·경찰에서 과거처럼 크게 비난 받는 권력형 비리, 정경 유착 비리는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고도 했다. 전·현직 법무부 장관, 여당 의원이야말로 바로 그런 사례다. 엄마·아빠가 누구냐에 따라 대학 가는 길이 달라지고 군 생활이 달라지는 나라가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는 아니다. ‘반칙과 특권이 없는 나라, 어떤 불공정과 부조리도 용납되지 않는 사회’는 더욱 아니다.

공직 권한은 아들·딸 편의 봐주는 데 쓰라고 준 게 아니다. 흙수저 병사면 상상할 수 없는 군생활이 유독 추 장관 아들에게만 여러 차례 겹쳐 일어났다. ‘추미애’를 빼곤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이쯤에서 대통령의 진상 규명 지시와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 나와야 한다. 최소한 대국민 사과라도 해야 한다. 하지만 단 한마디 언급이 없다. 전 정권 문제들엔 ‘수사기관이 고의적 부실 수사를 하거나, 나아가 적극적으로 진실 규명을 가로막고 비호·은폐한 정황이 보인다’고 깨알같이 꾸짖었다. 같은 지침을 못 낼 까닭은 없다.

민주주의는 패자의 부활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우수한 정치 제도다. 과거 왕정이나 독재시대엔 권력을 잃는다는 게 죽음으로 귀결됐다. 그래서 권력을 잡으면 반대파를 척살하려고 기를 썼다. 하지만 민주주의 체제에선 권력을 잃어도 국민 지지만 있으면 다시 권력을 잡을 기회가 찾아온다. ‘성공만큼 성공적인 것이 없다’는 말과 함께 ‘실패만큼 성공적인 것이 없다’는 역설도 통한다. 중요한 건 실패했더라도 웃음거리는 되지 말아야 한다는 거다. 조국·추미애·윤미향 특권이 최순실·정유라 특혜와 전혀 다르다는 걸 설명할 수 있으면 된다. 아니면 이왕 터진 사건의 처리만큼은 훨씬 떳떳하고 당당하다고 말할 수 있어도 된다. 지금 과연 그런가.

최상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