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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님께 송구하지만…조선시대에도 역병 돌면 차례 건너뛰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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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안동 풍산 김두흠은 일기인 『일록』 1851년 3월 5일자에 ’천연두가 창궐하여 차례를 행하지 못하였다“고 했다. [사진 한국국학진흥원]

안동 풍산 김두흠은 일기인 『일록』 1851년 3월 5일자에 ’천연두가 창궐하여 차례를 행하지 못하였다“고 했다. [사진 한국국학진흥원]

조선시대에 홍역과 천연두는 무서운 전염병(이하 역병)이었다. 역병이 발생하면 모임 금지, 외지인 마을 출입 금지 등 사람이 모이거나 섞이는 걸 최대한 통제하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유일한 치료법이자 예방법이었다.

국학진흥원 공개한 조선 선비 일기 #외출·모임 자제로 전염병 확산 막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방역당국은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해 추석 ‘민족대이동’을 최대한 자제해 달라고 권고했다.

조선시대에도 역병이 돌 때는 명절 차례를 지내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한국국학진흥원은 17일 “1500년대~1700년대 선비들의 일기에서 역병으로 명절 차례를 지내지 않았다는 내용이 다수 확인됐다”고 밝혔다. 약 54만점의 민간 기록유산을 보유한 한국국학진흥원에는 780점의 조선시대 선비 일기를 소장 중이다.

이에 따르면 경북 예천군에 살았던 초간 권문해는 『초간일기』 1582년 2월 15일자에서 “역병이 번지기 시작하여 차례를 행하지 못하니 몹시 미안하였다”면서 “나라 전체에 전염병이 유행하는 탓에 차례를 지내지 못해 조상님들께 송구스럽다”고 적었다.

안동 하회마을의 류의목은 『하와일록』 1798년 8월 14일자에서 “마마(천연두)가 극성을 부려 마을에서 의논하여 추석에 제사를 지내지 않기로 정했다”고 기록했다. 안동 예안의 계암 김령 역시 『계암일록』 1609년 5월 5일자에서 “역병 때문에 차례(단오)를 중단했다”고 했다.

한국국학진흥원 측은 “코로나19는 조선시대 홍역과 천연두에 비할 수 없을 만큼 파괴력이 강한 전염병”이라며 “평화로운 일상을 하루속히 되찾기 위해 조선시대 선비들처럼 이번 추석에는 차례를 포기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고 전했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자체 웹진 ‘談담’ 4월호에서 역병이 돌던 조선 시대에도 ‘환자 격리’가 있었다는 내용을 공개하기도 했다. 당시 의료 업무를 담당하던 관청인 활인서(活人署)는 당시 출막(出幕)이라는 임시 시설을 만들었는데, 성 밖에 출막을 설치해 감염병 환자를 별도로 격리해 관리한 시설이다.

안동=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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