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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9·19 군사합의 2년, 북한에 끌려다니는 국가안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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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류제승 전 국방부 정책실장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부원장

류제승 전 국방부 정책실장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부원장

2018년 9월 19일 남북은 ‘평양 선언’의 부속 문서로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에 서명했다. 벌써 2년이 지났지만, 당시 합의의 의미와 존폐를 둘러싸고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고질적인 확증편향이 도사리고 있어 그 실상과 허상의 경계가 모호한 까닭이다.

우발충돌 방지 위해 합의했지만 #북한의 합의 위반 탓 위협만 키워

군사 합의의 목적은 중무장한 남북 군대가 대치하는 지상·해상·공역에 지리적·심리적 완충지대를 설정해 우발적 충돌을 예방하자는 것이었다. 문제는 “군사 합의는 사실상 종전선언이며 북한 비핵화를 촉진한다”며 문재인 정부가 처음부터 오지도 않은 평화가 왔다는 허상을 강조해온 데 있다.

본래 군사적 안정성은 적군의 위협 감소와 아군 능력의 증대로 성취하는 법인데, 한반도 안보 실상은 거꾸로다. 북한의 위협은 더 심해졌고 한국의 불안은 더 커졌다.

새로운 합의로 완충지대가 확장되는 바람에 한국의 전방지역 감시·정찰과 해·공군 전력의 작전 활동이 현저히 위축됐다. 국내 유일의 포천 공지(空地) 전투훈련장에서 근접 항공 폭격 소리가 멈춘 지 오래다. 해병은 서해 5도 작전 현장에서 K-9 자주포 사격 훈련을 못 하고, 육군의 방어거점 전투사격 훈련도 중단됐다. 그해 4월 국방부는 판문점 선언을 앞두고 심리전 확성기 방송 시설을 철거했다. 북한의 ‘최고 존엄’이 대북 풍선 날리기보다 더 과민하게 반응했던 우리의 전략 수단이었다.

돌이켜 보면 2018년 한국은 북한을 움직일 위력적 군사 태세를 줄줄이 자진 헌납한 셈이다. 그 와중에 국군 통수권자가 국군의 날 축사에서 ‘힘을 통한 평화’를 외친들 누가 공감하겠나.

존 미어샤이머는 『거대한 망상(The Great Delusion)』에서 “외교와 전쟁은 2인용 자전거처럼 나란히 작용한다”고 묘사했다. 그는 “외교력은 군사력의 위협으로 뒷받침돼야 더 효과적이며 ‘강압 외교’의 목표는 전쟁 방지 또는 종결”이라고 설파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문 정부는 북한이 위협적으로 인식하는 한국군의 우월한 군사 요소를 대화의 뒷배로 활용하지 못한 실책을 범했다. 그러니 교활한 북한군 최고사령관이 “한국군은 북한군의 상대가 안 된다”며 더 얕보는 것이다.

애초부터 북한의 노림수는 한국군의 준비 태세와 한·미 동맹의 동요였다. 북한은 군사 합의서 제1조 1항(무력충돌 방지)을 근거로 군사공동위원회에서 협의하자더니 F-35A 증강, 한·미 연합연습 등에 대해 약속 위반이라 생떼를 쓴다.

한국이 공동경비구역(JSA) 초소 교차 운용, 감시초소(GP) 본격 철수, 한강 하구 공동 어로 등을 추가 요구해도 북한은 관심이 없다. 2018년 말까지의 행보로 결정적 이익을 챙긴 북한은 그 이후 남북 교류가 초래할 체제 불안정 차단에 더 부심한다.

한국의 성실한 합의 이행을 조롱하듯 북한은 핵 능력을 고도화하면서 하루가 멀다고 신형 전술유도탄으로 난장을 친다. 명백한 적대행위이고 남북 합의 위반이다.

핵·미사일은 완충지대를 뛰어넘는 무기다. 결정적 한 방을 가진 북한은 두 다리 쭉 뻗고 자는데 한국은 두 눈 뜬 채 북한의 ‘핵 인질’ 신세가 됐다.

그런데도 국민의 안보 의식은 느슨해졌다. 장병들은 북한 정권과 군대를 적이 아닌 위협 정도로만 여기고, 전방 부대는 무인정찰기를 운용하지 못해 도발 징후 감지가 어려워졌다. 10월 10일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을 전후해 도발의 악순환이 벌어지면 큰 피해가 우려된다.

밥 우드워드는 신간 『격노(Rage)』에서 2017년 여름 미국 정부가 북한 정권 교체를 위한 작전계획을 검토했다고 폭로했다. 이 사실만으로도  대북 ‘강압 외교’ 효과는 엄청나다. 최고 지도자는 평화로운 방법만으로는 평화를 실현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류제승 전 국방부 정책실장·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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