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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공 날아와 아기 사망…범인 못잡자 117가구 벌금 '황당법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길을 가는데 아파트 건물에서 떨어진 쇠공이 영아의 머리를 강타해 아기가 숨졌다. 4년 동안 범인 찾기에 나섰지만, 진전이 없었다. 그러자 아파트 내 모든 가구에 벌금을 매기는 판결이 중국에서 나와 논란을 빚고 있다.

2016년 11월 중국 쓰촨성 쑤이닝시 거리 #12개월 영아, 아파트서 떨어진 쇠공에 숨져 #4년 경찰 조사에도 범인 색출 실패하자 #법원, 아파트 121가구에 3000위안씩 벌금 #“진범 잡기 포기한 것이냐”며 논란 이어져

2016년 11월 11일 중국 쓰촨성 쑤이닝시의 아기 옌옌은 첫 돌을 불과 일주일 앞두고 아파트 단지에서 떨어진 쇠공을 머리에 맞아 숨지고 말았다. 4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범인을 잡지 못했다. [중국 훙싱망 캡처]

2016년 11월 11일 중국 쓰촨성 쑤이닝시의 아기 옌옌은 첫 돌을 불과 일주일 앞두고 아파트 단지에서 떨어진 쇠공을 머리에 맞아 숨지고 말았다. 4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범인을 잡지 못했다. [중국 훙싱망 캡처]

사건이 발생한 건 지난 2016년 11월 11일 오전 11시가 조금 지난 때였다. 중국 쓰촨(四川)성 쑤이닝(遂寧)시에 거주하는 리(李)씨는 불과 일주일 후면 돌을 맞는 딸 옌옌(言言)을 유모차에 태워 산책하러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중국 언론 훙싱(紅星)의 보도에 따르면 리씨가 요우팡(油坊) 거리의 인도를 지나던 중 갑자기 하늘에서 무언가 툭 떨어지며 유모차를 덮쳤다. 놀란 리씨가 유모차 안을 들여다보니 옌옌은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채 울음소리도 없이 혼수상태에 빠진 모습이었다.

2016년 11월 중국 쑤이닝시에 살던 12개월 아기 옌옌의 목숨을 앗아간 쇠공. 아파트 단지에서 누군가 떨어뜨린 게 옌옌의 머리를 강타하고 말았다. 4년 동안 범인을 못 잡자 중국 법원은 아파트 121가구에 각 3000위안씩의 벌금을 물렸다. [중국 훙싱망 캡처]

2016년 11월 중국 쑤이닝시에 살던 12개월 아기 옌옌의 목숨을 앗아간 쇠공. 아파트 단지에서 누군가 떨어뜨린 게 옌옌의 머리를 강타하고 말았다. 4년 동안 범인을 못 잡자 중국 법원은 아파트 121가구에 각 3000위안씩의 벌금을 물렸다. [중국 훙싱망 캡처]

유모차 안에는 아이 주먹만 한 크기의 쇠공이 떨어져 있었다. 황급히 수이닝시 중심의원으로 달려갔지만 옌옌은 그날 밤 8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당시 리씨는 41세, 남편 저우(周)씨는 44세로 2004년 결혼한 이후 처음으로 얻은 아기였다.

옌옌은 태어나 첫 번째 맞는 생일을 불과 7일 앞두고 부모 곁을 떠났다. 이에 쑤이닝시 공안국이 수사에 착수했다. 사고 현장 부근의 CCTV도 살피고 사고 지점에 이웃한 8층짜리 아파트 거주자를 대상으로 문제의 쇠공이 누구 것인지를 조사했다.

지난 5월 9일 중국 광시좡족자치구 난닝의 한 거리에 떨어진 식칼이 두 동강이 난 모습. [중국 남국조보망 캡처]

지난 5월 9일 중국 광시좡족자치구 난닝의 한 거리에 떨어진 식칼이 두 동강이 난 모습. [중국 남국조보망 캡처]

쇠공은 중국의 노인들이 건강 유지를 위해 손에 쥐고 굴리는 것이다. 뭉친 근육을 풀어주고 신경을 안정시키며 혈액 순환에도 좋아 잠이 잘 오고 혈압도 낮춰준다는 속설이 있다.

한데 중국 경찰의 오랜 수사에도 누가 범인인지를 특정할 수 없었다. 이에 저우씨는 중국 법원에 아파트 거주자 121가구의 세대주 모두를 고소했다. 아울러 79만 위안(약 1억 3700만원)의 피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중국 광시좡족자치구 난닝의 싱후 아파트 단지에선 고공에서 떨어지는 물건이 많아지며 주민 피해가 잇따르자 고층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해 단속에 나서고 있다. [중국 남국조보망 캡처]

중국 광시좡족자치구 난닝의 싱후 아파트 단지에선 고공에서 떨어지는 물건이 많아지며 주민 피해가 잇따르자 고층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해 단속에 나서고 있다. [중국 남국조보망 캡처]

이에 따라 재판이 진행됐는데 이달 초 중국 수이닝시 촨산(船山)구 인민법원은 사고 당시 아파트에 거주하던 모든 가구는 저우씨에게 각 3000위안씩의 보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당시 사람이 살지 않던 집으로 확인된 네 가구엔 책임을 물리지 않았다. 법원은 아파트 주민이 자신이 쇠공을 던지지 않았다는 걸 스스로 증명하지 않는 한 모든 거주 세대에 책임을 물리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중국에선 길을 걸을 때 발 밑의 장애물만 봐서는 안 된다. 하늘에서 뭐가 떨어지지 않는지도 조심해야 한다. 중국의 각종 추락물 주의를 알리는 안내판. [중국 텐센트 캡처]

중국에선 길을 걸을 때 발 밑의 장애물만 봐서는 안 된다. 하늘에서 뭐가 떨어지지 않는지도 조심해야 한다. 중국의 각종 추락물 주의를 알리는 안내판. [중국 텐센트 캡처]

그러자 이 같은 판결에 적지 않은 중국 네티즌의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지난 12일 전했다. “법원이 쉬운 방법을 찾으려 한다. 살인범을 잡지도 않고 이렇게 쉽게 놓아줘서야 되겠나” 등의 글이 올라온다는 것이다.

“결국 경찰이 범인 색출에 실패한 게 아니냐”, “중국에는 해결되지 않은 많은 살인 사건이 있는데 벌써 살인범 잡기를 포기한 것 아닌가”, “경찰은 계속해서 진범을 찾는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등과 같은 경찰의 끈질긴 수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특히 크다.

중국의 한 건물 창문 밖에 위태롭게 방치해 놓은 물건. 중국에선 아파트 건물에서 떨어지는 물체로 인해 다치거나 심지어 목숨까지 잃는 사고가 종종 발생해 커다란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중국 CCTV 캡처]

중국의 한 건물 창문 밖에 위태롭게 방치해 놓은 물건. 중국에선 아파트 건물에서 떨어지는 물체로 인해 다치거나 심지어 목숨까지 잃는 사고가 종종 발생해 커다란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중국 CCTV 캡처]

또 “만일 진범이 나중에라도 잡히면 3000위안은 돌려주는 것인가”,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나 고양이가 쇠공을 건드려 떨어뜨렸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등과 같은 말도 나온다. 판결이 ‘2류’라는 지적도 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판결이 인간적인 측면에서 원만한 해결을 꾀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한다. 범인을 색출하지 못하는 경찰의 수사력은 적당히 덮고 부부에겐 보상금으로 위로하는 방식이란 것이다. 한편 부부는 사고 이듬해인 2017년 8월 아들을 얻었다고 한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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