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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난했던 이낙연의 신고식...추미애ㆍ이상직ㆍ김홍걸 ‘줄 악재’ 뚫고 협치 길 낼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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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뉴스1]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뉴스1]

“원칙은 지키면서도 야당에 양보할 것은 양보하는 ‘원칙있는 협치’에 나서겠습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8ㆍ29 전당대회에서 낙승한 직후 낸 수락 연설에서 한 말이다. “대화로 풀지 못할 문제는 없다”(7일 교섭단체 대표연설)던 이 대표는 9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청와대 회동에선 “여야 대표 회동 또는 일대일 회담이어도 좋다”며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의 영수회담 다리를 놓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지난 10일 박병석 국회의장이 주선한 여야 대표 회담에서 만난 이 대표와 김 위원장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김 위원장은 “협치할 수 있는 여건을 사전에 만들어달라”며 법제사법위원장을 비롯한 상임위원장 자리 재배분 문제를 꺼내들었지만 이 대표는 “우여곡절을 9월 국회에서 되풀이하는 것이 현명한 것인가”라며 선을 그었다.

여야 공통정책추진과 4차 추가경정예산안(추경) 신속처리를 합의해 민주당은 “사실상 협치국회의 시작”(최인호 수석대변인)이라고 자평했지만 협치의 전망은 밝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아들 군복무 특혜), 민주당 이상직 의원(이스타항공 편법증여·임금체불)과 김홍걸 의원(재산신고 누락·부동산 투기)을 둘러싼 의혹들이 여야 관계의 뇌관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이 대표 입장에선 어느 하나 쉽게 처리 방향을 잡기 어려운 문제들이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박병석 국회의장 주최 교섭단체 정당대표 오찬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박병석 국회의장 주최 교섭단체 정당대표 오찬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뇌관1= 추미애

국민의힘은 추 장관 아들 서모 씨의 병역 특혜 의혹을 특임검사의 수사와 국정조사 대상으로 몰아가고 있다. 신원식·김도읍 의원 등이 연일 추가 의혹을 제기하면서 기선을 잡아가자 지난 9일을 전후로 민주당은 추미애 사수를 위한 총력전에 나섰다. “9월 정기국회 국방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는 전쟁터가 될 것”(민주당 당직자)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당 안팎에서 추 장관 사태로 인해 “20대와 30~40대 중도층의 추가 이탈이 발생할 것”(수도권 재선 의원)이라는 우려가 나오지만 이 대표가 친문 주류와 다른 길을 택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당내 중론이다. 이 대표가 침묵하는 사이 친문 그룹이 이미 최전선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지난 전당대회를 치르는 과정에서 친문 그룹의 집중지원을 받았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 7월 21일 오전 국회 본회의에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 앞서 박병석 국회의장이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과 국민의당이 국회에 추미애 법무부 장관 탄핵소추안을 접수했다"고 알리자 미소짓고 있다. [연합뉴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 7월 21일 오전 국회 본회의에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 앞서 박병석 국회의장이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과 국민의당이 국회에 추미애 법무부 장관 탄핵소추안을 접수했다"고 알리자 미소짓고 있다. [연합뉴스]

당내 대표적 친문 인사인 김종민 최고위원, 설훈·황희 의원은 11일 민주당 유튜브채널 ‘씀TV’에 출연해 추 장관을 집중 엄호했다. 김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이 폭로한 게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 어처구니없는지 짚겠다”고 했다. 황 의원은 서씨 휴가 특혜의혹에 “규정을 어긴 것도 아니고 당연히 규정을 어기지 않았기 때문에 청탁할 일도 없고 특혜가 될 일도 없다”고 주장했다. 설 의원은 “추 장관 입장에서는 터무니없이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이렇게 몰아가니까 참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라고 했다. 이들의 움직임은 민주당 당원 게시판과 각종 온라인 채널에서 친문 지지층이 ‘우리가 추미애다’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 핵심의원은 “야당이 국정조사 등을 국회 일정 협의의 조건으로 내건다면 협치 구상 자체가 물 건너 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뇌관2= 이상직

경영난으로 대규모 정리해고 등이 계속되고 있는 이스타 항공의 전 소유주인 이상직 의원 문제도 이 대표에게 까다로운 숙제다. 지난 7월 ‘이상직-이스타 비리의혹 진상규명 특위’를 설치해 자체 조사를 벌여온 국민의힘은 지난 10일 이 의원을 횡령·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지난 총선 때까지 이스타 항공 관련 의혹에 눈을 감았던 여권에선 최근 태세 전환 조짐이 읽히고 있다. 신동근 최고위원은 11일 “우리당 국회의원이 이스타 창업주였던 만큼 더 책임 있는 자세로 이 사태에 대처할 필요가 있다”며 이 의원을 겨냥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같은 날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나와 “이스타항공이 가진 지배구조 문제라든가 M&A(인수합병)를 결정하고 난 이후 처신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상직 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25일 오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질의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이상직 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25일 오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질의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하지만 이같은 여권의 움직임이 실질적인 문제해결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는 전망도 나온다. 곽상도 국민의힘 의원은 이 의원과 이스타 항공 관련 각종 의혹이 풀리지 않는 이유가 “권력의 강력한 뒷받침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친문 그룹 내에서 이 의원이 갖는 존재감은 작지 않다. 2017년 치러진 19대 대선에선 친문 진영의 전북 조직 총괄책임자였다. 김정숙 여사가 전북을 찾았을 때 밀착 수행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 그 뒤로 여권에선 이 의원에 대해 “김 여사가 챙기는 사람”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지도부는 이 의원이 결자해지에 나서기를 바라는 모습”이라며 “과감하게 문제해결을 주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뇌관3=김홍걸

최근 21대 국회의원 재산공개 이후 불거진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 3남 김홍걸 의원의 재산 축적 문제는 이 대표에겐 ‘복병’이다. 김 의원은 총선 전 재산신고에서 분양권 전매대금 10억원을 고의 누락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게다가 다주택을 해소하겠다고 한 뒤 강남 아파트 1채를 아들에게 증여한 사실이 드러나며 부동산 대책을 두고 불붙은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붓기도 했다. 지도부에 속하는 한 의원은 “추 장관보다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김홍걸 더불어민주당 의원. 뉴스1

김홍걸 더불어민주당 의원. 뉴스1

이미 친문 지지층은 김 의원에게 등을 돌린 상황이지만 이 대표는 쉽게 입장을 정하기 어려운 처지다. 동아일보 기자였던 그를 정계로 이끈 김 전 대통령과의 인연 때문이다. 호남에 기반을 둔 이 대표는 김 의원을 다른 초선 의원과 동일 선상에 놓고 보기 어렵다. 한 친문 의원은 “이 대표 입장에선 쉽게 결정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지만 호남에 지역구를 둔 의원은 “잘못이 명백한데도 감싸면 소탐대실할 수 있다”고 했다.

김효성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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