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의 공포’ 유럽 '일단 멈춤'…라가르드는 환율 강조 택했다

중앙일보

입력 2020.09.11 17:20

이미 지난 5월말 0.1%를 찍었다. ECB가 10일 제시한 전망치는 0.3%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이미 지난 5월말 0.1%를 찍었다. ECB가 10일 제시한 전망치는 0.3%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유럽 경제에서 ‘D(디플레이션)의 공포’는 이미 현실이다. 여기에 달러 대비 유로화 강세가 이어지면서 환율 고민까지 겹쳤다. 바다 건너 영국은 “노딜(no deal)도 불사하겠다”며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두통까지 더해졌다. 유럽연합(EU)의 중앙은행 역할을 하는 유럽중앙은행(ECB)의 10일 통화정책회의가 주목받았던 배경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10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회의를 연 뒤 기자회견에서 ‘일단 멈춤’ 신호를 들었다. 기준금리는 0.00%, 예금금리도 -0.50%, 한계대출금리도 0.25%로 동결시키겠다고 발표했다. 더 적극적으로 비둘기(온건파)나 매(강경파)가 되는 대신 일단 상황을 지켜보면서 단속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미 ECB는 적극적 양적완화 정책을 펴왔고, 그 이상까지 무리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셈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 AFP=연합뉴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 AFP=연합뉴스

그의 미국 카운터파트인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 의장이 지난달 말 잭슨홀 미팅(중앙은행장 연찬회)에서 평균물가목표제(AIT)라는 ‘신무기’를 들고나오며 고용 보호 및 공격적인 인플레이션 목표를 설정한 것과는 대비된다. ECB는 이날 올해 인플레이션을 0.3%로 전망했으며 내년과 내후년은 각각 1.0%, 1.3%로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내년 전망치는 지난 6월 전망치보다는 높았지만 여전히 목표치엔 모자란다.

제롬 파월 Fed 의장

제롬 파월 Fed 의장

라가르드 총재가 이날 오히려 강조한 것은 환율이다. ECB 총재가 직접 나서서 환율을 언급하는 것은 이례적이라 주목을 받았다. 라가르드 총재는 “최근 유로 대 달러 환율이 (EU 경제에서) 인플레이션에 부담이 되고 있다”며 “특정 환율 목표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유로화가 (통화정책의) 주요 요소임엔 틀림없다”고 강조했다. D의 공포를 잡는 데 있어서 달러에 대한 유로화의 강세가 부담되고 있으며, 악화할 경우 조치를 취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표시한 것이다. 달러화를 관장하는 파월 의장에게도 보내는 메시지로도 해석된다. 라가르드 총재 발언 전에도 ECB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필립 레인은 “유로 대비 달러 환율은 매우 중요하다”고 운을 뗐다. ECB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환율에 대한 움직임을 시사하고 나선 것이다.

유로화 강세는 이달 초부터 심상치 않았다. 지난 1일 유럽의 외환 가늠자인 런던 외환시장에서 유로 대 달러 환율은 폭등했다. 1유로 당 1.2011 달러를 기록하면서다. 1.20 달러의 벽이 뚫린 건 2018년 5월 초 이후 최초였다. 유로당 1.20달러는 일종의 심리적 저지선이었다. 유로화 강세를 촉발한 건 대서양 건너 파월 의장이다. 그가 평균물가목표제를 언급한 후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기 시작해서다.
유로화 강세는 D의 공포가 현실화한 유로존(EU 경제권)엔 악재다. 수출은 불리해지고 수입 물가는 더 낮아지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잡히지 않는 상황도 겹쳐있다. 블룸버그통신은 10일 “유럽이 코로나19 재확산에다 디플레이션에 유로화 강세의 삼중고를 앓고 있다”고 전했다.

라가르드 총재의 발언 후, 유로화 강세는 다소 안정됐다. 한국 시간 11일 오후 4시 현재 유로 당 달러 환율은 1.18달러다. 심리적 안정권에는 다시 돌아왔다.

코로나19 이후 경제 전망에 대해 라가르드 총재는 신중함을 유지했다. 이날 유로존 경제성장률이 석 달 전의 -8.7%다는 높아진 -8.0%로 제시하면서도 그는 “최근 경제 지표가 반등을 암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불확실성이 더 크다”고 우려하며 “경제 회복은 향후 팬더믹 통제 정책의 성공에 의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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