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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판타지 속 판타지를 찾아서 32화. 견우와 직녀

중앙일보

입력

까치·까마귀가 만든 오작교처럼, 우리를 이어주는 것은

고구려인들이 묘사한 견우와 직녀의 전설. 덕흥리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소를 몰고 가는 견우와 이를 애타게 지켜보는 직녀의 모습이 보인다.

고구려인들이 묘사한 견우와 직녀의 전설. 덕흥리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소를 몰고 가는 견우와 이를 애타게 지켜보는 직녀의 모습이 보인다.

옛날 옛적에 은하수 옆에 하늘 신(천제)이 살고 있었습니다. 신에게는 직녀라는 이름의 딸이 있었는데, 직녀는 천을 잘 짜서 신들의 옷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죠. 딸에게 짝을 소개해주기 위해 세상을 둘러보던 신은 은하수 기슭에서 하늘의 소를 기르는 견우라는 젊은이를 발견했습니다. 성실하기 이를 데 없던 그가 마음에 든 신은 직녀에게 견우를 소개해주었고, 두 사람은 첫눈에 반해 결혼하게 됐죠.

하지만 문제가 생겼습니다. 직녀와 견우가 신혼 생활에 빠진 나머지 일을 하지 않게 된 것이죠. “직녀가 일하지 않으니 모두 옷이 낡아 너덜너덜합니다. 새 옷이 필요합니다.” “견우가 게으름을 피워서 가축들이 병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신들의 불평에 화가 난 하늘 신은 둘을 은하수 동쪽과 서쪽으로 보내 헤어져 살게 했습니다. 그리고 해마다 하루 음력 7월 7일(칠월칠석)에만 둘이 만나도록 허락했죠. 칠석이 되어 두 사람은 서로를 만나고자 은하수로 향했지만, 은하수에는 다리가 없었습니다. 둘이 슬퍼하자 어디선가 까치와 까마귀들이 몰려들었죠. 그리고 은하수에 다리를 만들어 둘을 만나게 해주었습니다. 까마귀와 까치로 이루어진 다리. 오작교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로부터 매년 칠석이면 오작교를 통해 견우와 직녀가 만나 서로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매년 한 번밖에 만나지 못하는 연인들의 이야기. 칠석의 전설은 일찍이 중국에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한나라 때 편찬된 시가집에 처음 소개되었는데, 적어도 춘추전국시대부터 존재했다고 하죠. 우리나라와 일본, 베트남 등에도 전해져 동아시아 전역에서 기념하는 전설이 되었습니다. 일찍이 고구려 시대에 만들어진 덕흥리 고분에서 견우와 직녀의 전설이 그려진 벽화가 발견된 만큼, 우리나라에서도 오래전부터 칠석을 기념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 각지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칠석을 보냅니다. 특히 여성들에게 소중한 날로 기억되고 있죠, 여성들은 직녀를 기리며 손재주가 능숙해지기를 기원했으며, 중국에서는 칠석을 기념하는 장식을 만들기도 했다고 합니다.

한국에선 칠석에 밀전병·밀국수·호박전 등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서당에선 학생들에게 견우·직녀를 주제로 시를 짓게 하고, 옷과 책을 햇볕에 말리는 풍속이 있었다고 하죠. 여름 장마로 습기 찬 옷과 책이 상하지 않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칠석날 새벽 여성들이 오이·참외 같은 먹거리를 상에 올리고 바느질 솜씨가 늘기를 빌었다고 해요. 중국 일부에서는 한 그릇의 물 위에 바늘을 살짝 띄워두고 달빛 아래 바늘 주변에 생겨난 파문을 비교하여, 그중 가장 복잡한 파문이 생겨나는 바늘이 가장 자수가 잘된다며 아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칠석을 맞이하기 위해 6월부터 준비를 시작하는 곳도 있었다고 합니다.

중국·타이완·베트남 등지에선 칠석을 ‘애정의 날’이나 ‘정인의 날’이라 부르며, 밸런타인데이 같은 느낌으로 지내기도 합니다. 과거의 풍습엔 존재하지 않았지만, ‘일 년에 한 번 연인이 만나는 날’이라는 전설에 흥미를 품은 누군가가 시작한 게 정착되었다고 합니다. 상인들은 밸런타인과 함께 대박을 기대할 수 있는 날로 기대한다고 하죠. 연애에 너무 빠져서 일도 안 하던 두 사람을 기리는 날인만큼, 연애 이야기엔 제격이겠죠. 일부 전설에 따르면, 직녀는 하늘의 공주고 견우는 땅의 목동이라 합니다. 사랑에 빠진 둘이 허락을 받지 않은 결혼을 하자, 하늘 신이 화가 나서 둘을 갈라놓았다고 하죠. 하지만 너무 슬퍼하던 둘을 위해 까치와 까마귀가 다리를 놓아주었다는 거죠. 어느 쪽의 전설이 진실이건, 오작교에는 ‘서로를 기리는 마음을 이어준다’라는 배려가 담겼습니다.

견우와 직녀의 이야기는 하늘의 별에서 왔다고 합니다. 장마가 지나고 맑은 하늘에서 은하수와 함께 가장 밝게 빛나는 두 별, 직녀성(거문고자리의 베가), 견우성(독수리자리의 알타이르)을 연결해서 만든 이야기라는 거죠. 어쩌면 견우와 직녀처럼 연인과 만날 수 없었던 누군가가 만든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서로를 부르듯 빛을 발하면서도 하늘의 강으로 떨어진 두 별에 자신을 빗대어 말이죠. 언제 어느 때건 누군가를 만나지 못하는 사람은 존재하는 법. 그들이 자신들을 이어줄 누군가를 바랬으리라고 쉽게 상상할 수 있죠. 과학적으로 볼 때 두 별은 10광년 이상 떨어졌기에 광속으로 날아가도 쉽게 만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요?

코로나 19로 많은 이들이 떨어져 살아가고 있습니다. 친구나 동료와 서로 보지 못한 지 반년 이상 지난 이들도 적지 않죠. 하지만 과거에 비해 외로움은 덜합니다. 직접 만나진 못해도, 전화로 인터넷으로 서로를 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까요. 과거에는 불가능한 일이었죠. 견우성과 직녀성의 외계인들도 뭔가의 기술로 만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어쩌면 오작교일지도 모른다고 상상하는 건 이상할까요?

글= 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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