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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임자 라떼 마시고 식혜 만들고 “우리는 할메니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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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전통 한옥 스타일로 꾸민 서울 종로구 익선동 카페. 배정원 기자

전통 한옥 스타일로 꾸민 서울 종로구 익선동 카페. 배정원 기자

가수 청하(25)는 팬들 사이에서 ‘청할매’로 통한다. 약밥·모나카·양갱같이 할머니들이 좋아할 만한 간식을 즐겨 먹는다는 뜻에서 팬들이 붙여준 애칭이다. 청하는 한 방송에서 “(제가) 나이를 속인 게 아닌지 매니저가 의심한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할매 입맛 열광 1980~2000년대생 #뉴트로와 또래 놀이 결합된 소비 #코로나로 건강 챙기기 더해져 #고령층 먹던 해초전복죽 뜻밖 인기

식품업계에 ‘뉴트로’(새로운 복고) 바람이 불고 있다. 할머니와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2000년대 초반 출생자)를 합친 ‘할메니얼’이란 신조어가 나올 정도다. 할메니얼로 불리는 소비자들에게 인기 메뉴는 쑥·흑임자 라떼다. 집에서 식혜나 수정과를 직접 만든 뒤 소셜미디어(SNS)에 올리기도 한다.

강원도 강릉에 있는 한 카페의 인기 메뉴인 흑임자 라떼.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강원도 강릉에 있는 한 카페의 인기 메뉴인 흑임자 라떼.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할메니얼을 사로잡기 위한 식품업계의 노력은 다양하다. 오리온은 지난해 말 초코파이에 두 가지 새로운 맛을 내놨다. 인절미·흑임자 스프레드가 들어간 찰초코파이 인절미와 흑임자다. 지금까지 약 76억원어치가 팔렸다. 오리온 관계자는 “유행에 민감하고 이색 조합에 반응하는 젊은 층 사이에서 입소문이 돌고 있다”고 말했다.

빙그레는 비비빅 흑임자에 이어 투게더 흑임자 맛도 내놨다. 비비빅 흑임자는 월평균 80만 개, 투게더 흑임자는 6만개씩 팔린다는 설명이다. 빙그레 관계자는 “젊은 층이 좋아하는 새로운 맛 출시로 판매량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유통업체도 가세했다. 편의점 CU는 롯데푸드와 손잡고 지난 5월 빵빠레 흑임자를 내놨다. 판매 개시와 함께 CU의 아이스크림 매출 10위에 들었다. 지난 2월 선보인 초당순두부 아이스크림은 출시 두 달 만에 100만개 넘게 팔렸다. 현재 CU에서 살 수 있는 흑임자 관련 상품은 20개가 넘는다고 한다.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 스낵식품팀의 이용구 MD(상품기획자)는 “제조업체들과 손잡고 ‘할매 입맛’ 관련 상품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령층을 겨냥해 출시한 제품이 뜻밖에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기도 한다. 현대그린푸드는 ‘그리팅’이란 건강 식단 브랜드를 선보였다. 그리팅에서 파는 죽 매출의 절반 이상은 20~30대라고 한다. 이들에겐 해초 전복죽, 유근피 녹두 삼계죽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현대그린푸드 관계자는 “고령 세대가 아플 때 식사대용으로 먹던 죽을 2030세대는 간편한 식사나 건강식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재택근무가 확산하면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매출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CJ제일제당이 지난달 출시한 흑임자죽 등 신상품. [사진 CJ제일제당]

CJ제일제당이 지난달 출시한 흑임자죽 등 신상품. [사진 CJ제일제당]

CJ제일제당은 지난달 비비고 흑임자죽을 내놨다. 그러면서 “젊은 세대가 ‘할매 입맛’ 식품에 열광하고 있어 관련 제품을 출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흑임자죽으로 아이스크림·라떼·셰이크를 만드는 레시피(조리법)도 공개했다.

서울 광진구 중곡동의 빈티지 숍에서 판매하는 복고풍 원피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서울 광진구 중곡동의 빈티지 숍에서 판매하는 복고풍 원피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레트로 열풍은 한국 만의 현상이 아니다”라며 “일본에서도 경기침체 시기에 과거 호황기에 대한 향수로 복고 트렌드가 인기를 끈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는 코로나19 확산으로 건강을 챙기려는 심리가 더해졌다”며 “쑥·흑임자·인절미 같은 식재료가 ‘단짠’(달고 짠) 식품을 제치고 인기를 끌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패션계에선 ‘할매 스타일’의 의류·잡화를 파는 점포가 곳곳에 생기고 있다. 지난해 돌체앤가바나·베트멍 등의 패션쇼에선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가 즐겨 입는 것과 비슷한 옷이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배정원 기자 bae.ju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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