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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불행 중 다행으로 진흙 속에서 건져낸 전략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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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김민석
김민석 기자 중앙일보 전문기자

경항모·핵잠수함 추진하는 국방

해군이 제작해 공개한 경항공모함 모형. 3만t급 경항모에는 최신 수직이착륙 스텔스 전투기 F-35B 10여 대를 탑재한다. [사진 해군]

해군이 제작해 공개한 경항공모함 모형. 3만t급 경항모에는 최신 수직이착륙 스텔스 전투기 F-35B 10여 대를 탑재한다. [사진 해군]

최근 외교·안보 정책이 달라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정상적이다. 정부의 다른 분야에 비교된다. 코로나19 재확산, 빚 폭탄의 정부 재정, 막가파 검찰 인사와 편향된 수사, 의료계 파업, 친일 편가르기 등 정부의 잘못된 정책은 셀 수 없다. 외교·안보도 이 정부 들어 남북관계에 사실상 종속됐었다. 그런 외교·안보 정책의 풍향계가 최근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국방부의 전략무기 확보와 한·일 관계에서 신중 모드다. 변화 배경은 명확하지 않다. 북한과 관계 개선에 한계를 느꼈는지, 핵무장 북한이 부담인지, 미·중 신냉전 파장이 걱정인지, 아니면 복잡한 국내 정치로 청와대가 간섭할 여유가 없어서인지 등 정확한 사정 파악은 쉽지 않다.

경항모·핵잠수함은 북·중 대비용 #중국 해양 장악에 대응해 해양수호 #한?미동맹 관계 한 단계 격상 카드 #극초음속 미사일, 최소 전략억지력

그나마 제대로 가고 있는 국방과 외교 사안을 보자. 국방부는 지난달 국방중기계획에서 경항공모함 및 핵추진 잠수함 확보와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국방부는 또 백선엽 장군 ‘친일 파묘론’에 제동을 걸었다. 외교부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유예를 중단하는 날짜(8월24일)가 다가왔지만, 조용히 넘어갔다. 지소미아가 최소한 1년은 연장되고, 한·일 갈등은 소강 국면으로 들어가게 됐다.

경항모를 제주기지에 배치해 이어도 방어 

이 가운데 새로운 외교·안보 정책의 결정판은 국방부의 경항모·핵추진 잠수함·극초음속 미사일 등 전략무기 확보 의지다. 그동안 전문가들과 언론에서 전략무기의 필요성을 거론했지만, 실제 추진엔 리스크가 크다. 이 전략무기는 중국 과 북한이 싫어하는 것이어서다. 반미·친중·친북 성향으로 평가받는 현 정부로선 의외의 결정이다. 반대로 한국의 전략적 위상은 커지고, 한·미 동맹엔 도움이 된다. 그래서 전략무기는 ‘양날의 칼’이다.

왜 그런가. 국방부가 건조하려는 3만t급 경항모에는 최신형 수직이착륙 스텔스 전투기 F-35B가 실린다. F-35B는 스텔스에다 AI 전투 기능도 있다. 앞으로 무인 전투기와 유무인 복합작전을 구사할 수도 있다. 중국의 첫 국산 항모 산동함(5만5000t)에 실릴 젠-15 또는 스텔스기인 젠-20에 비해 전투력이 월등하다. 해상에서 한국군 경항모와 중국 산동함이 겨루면 덩치가 큰 산동함이 더 불리할 수도 있다. 퇴임을 앞둔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경항모를 제주 해군기지에 배치하면 이어도 남쪽의 해양 보호에 유리하다”고 말했다. 경항모를 제주기지에서 이어도 인근에 보낸 뒤, F-35B를 띄워 곧바로 작전이 가능하다. 현재는 대구 기지의 F-15K가 이어도를 맡고 있는데 제주기지보다 훨씬 멀다.

경항모는 북한 도발에도 강력한 억지력을 발휘한다. 정 장관에 따르면 F-35B를 실은 경항모를 동·서해에 전진 배치해 놓고 유사시 북한을 직접 타격할 수 있다고 한다. 경항모에서 발진한 F-35B는 해상에서 북한 내륙으로 쥐도 새도 모르게 진입할 수 있다. F-35B는 스텔스여서 북한 레이더로 포착하기 어렵다. 북한군으로선 속수무책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F-35B의 북한 상공 진입을 알 수 없다. 북한 핵·미사일 기지와 지휘부 벙커 등 전략시설을 순식간에 타격할 수 있다. 그래서 F-35B를 탑재한 경항모는 북한이 함부로 도발하지 못하게 억지할 수 있다. 경항모가 서산·청주·원주 등 지상 공군기지보다 작전에 훨씬 유리하다는 게 조종사 출신인 정 장관 얘기다.

핵추진 잠수함 핵연료는 미국 동의

경항모와 핵추진잠수함의 운영

경항모와 핵추진잠수함의 운영

핵추진 잠수함도 중요하다. 국방부는 4000t급 잠수함(장보고-Ⅲ)의 추진 엔진을 명확하게 공개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대부분 언론은 원자로를 장착한 핵추진이라고 보도했다. 만약 장보고-Ⅲ 잠수함이 핵추진이 아니었다면 국방부가 반박했거나 정정보도를 요청했을 것이다. 그러나 국방부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묵시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백브리핑에선 핵추진으로 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핵추진 잠수함을 한국 혼자서 만들 수 있느냐다. 잠수함의 원자로 연료는 고농축 우라늄이다. 우라늄 농축도(우라늄-235의 함유량)가 20∼80%다. 그런데 한국은 한·미 원자력협정에 따라 농축도 20% 이상 우라늄을 갖지 못하게 돼 있다. 따라서 미국의 양해가 있어야 핵추진 잠수함을 확보할 수 있다. 국방부의 핵추진 잠수함 계획엔 미국의 동의가 있었다는 얘기다. 핵추진 잠수함은 미사일로 전략적 타격 능력이 있고, 북한 SLBM(잠수함용 미사일)을 장착한 신형 잠수함 추적·대응에도 효과적이다.

극초음속 미사일은 요즘 가장 떠오르는 전략무기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이 개발 중이다. 극초음속 미사일은 속도가 마하 5(음속 5배) 이상이고, 사정거리는 최소 1500㎞다. 워낙 빠른 데다 회피기동까지 가능해 기존의 방어체계로는 요격하기 어렵다. 1500㎞면 북한 전역은 물론, 베이징과 도쿄까지 모두 사정권에 들어간다. 어디든 15분 이내 정밀 타격이 가능하다. 극초음속 미사일에는 재래식 탄두가 기본이지만, 핵탄두를 장착하면 전략적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한국이 극초음속 미사일을 개발해 기존의 탄도미사일과 함께 운영하면 북한과 주변국 위협에 최소한의 억지력을 갖출 수 있다.

경항모는 핵추진 잠수함, 이지스함 등과 전략기동부대를 구성한다. 1차 임무는 북한 도발 억지이지만, 2차 임무는 이어도에서 믈라카 해협(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사이 해협으로 인도양-태평양을 잇는 최단거리 해상 운송로)에 이르는 해상수송로 보호다. 하지만 경항모를 주축으로 하는 전략기동부대의 해양 수호 임무는 중국과 곧바로 충돌한다. 해상수송로는 우리의 대부분 물동량이 오가는 생명줄인데 중국이 힘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려 들기 때문이다. 경항모의 활동으로 정부가 참여 유보적인 쿼드(QUAD)에도 자연스럽게 협력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의 세력 확장에 대응하기 위해 신냉전에 들어간 미국으로선 환영할 일이다.

한국의 경항모와 핵추진 잠수함은 한·미 동맹의 전략적 관계를 한 단계 격상시킨다. 한국이 경항모를 활용해 중국 견제에 참여하는 대신, 미국으로부터 핵추진 잠수함에 쓰일 농축우라늄을 지원받을 수 있다. 국방부의 이번 결정으로 한국은 앞으로 벌어질 미·중 신냉전 국면에서 중국 편향이 아니라 미국 등의 자유민주 대열에 한 발 더 다가설 것으로 보인다. 정 장관은 이런 전략무기 확보가 당연하다고 했지만, 혼란스런 정책이 난무하는 요즘 불행 중 다행인 선택이다.

지금 북한은 극도로 위험한 지경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건강 외에도 북한은 대북제재와 코로나19 충격, 장마와 태풍 피해로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다. 달러는 거의 고갈됐고, 내년 식량은 태부족이다. 실낱같은 경제 회복의 희망은 꺼져가고 있다. 오로지 핵·미사일과 사이버 공격 능력만 키우고 있다. 그래서 북한이 올 연말부터 어떤 도발로 나올지 가늠할 수 없다. 미·중 충돌의 가능성도 점차 커지고 있다. 이런 위기에 올바른 외교·안보정책을 환영한다.

◆쿼드(QUAD)

중국의 강압적 해양 장악 기도에 대응하기 위한 미국·호주·일본·인도 등 4개국 협력체.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은 지난달 31일 QUAD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처럼 공식 기구화하겠다고 했다. 미국은 QUAD에 한국·뉴질랜드·베트남을 더한 ‘QUAD 플러스’를 희망하고 있다.

서욱 장관 후보, 북 도발엔 명확한 대응…전작권 전환엔 신중

서욱 육군총장의 국방장관 후보 지명도 지켜볼 일이다. 서 후보는 정부가 가급적 인사에서 배제하려는 육사 출신이다. 청와대는 그가 호남 출신인 데다 합참에서 작전 부장·본부장을 모두 거친 작전통이고, 연합사 근무경력 등을 고려했다고 한다. 청와대는 서 후보가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을 조기에 환수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한다.

서 후보는 뼛속까지 군인이다. 헌법에 규정된 군 본연의 임무를 지킬 것이다. 북한 도발에 대한 강한 대응은 물론, 준비가 덜 된 무리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도 신중하리라 기대된다. 뜨거운 쇠붙이를 알고도 무턱대고 잡지는 않으리라. 고려 때 거란으로부터 강동 6주를 받아낸 서희 장군의 후손인 그가 육사 생도 시절 배운 군인 정신을 망각하지 않을 것이다.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 선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