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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권력에 올바른 말 할 수 있어야 국민의 군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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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민석
김민석 기자 중앙일보 전문기자

권력에 약한 군 수뇌부, 스스로 무너뜨린 군 기강

권력의 잘못된 지시에 ‘노(No)’라고 외친 장군들. 왼쪽부터 충무공 이순신 장군, 참군인 한신 전 합참의장, 조지 마셜 전 미 육군 원수(후에 국무부 장관), 제임스 매티스 전 미 국방부 장관.

권력의 잘못된 지시에 ‘노(No)’라고 외친 장군들. 왼쪽부터 충무공 이순신 장군, 참군인 한신 전 합참의장, 조지 마셜 전 미 육군 원수(후에 국무부 장관), 제임스 매티스 전 미 국방부 장관.

한국전쟁 당시 경북 안강·기계전투(1951년 7월)에서 북한군의 공세를 막아낸 한신 전 합참의장은 한국군 역사에서 최고의 참군인으로 친다. 그는 화천전투(1953년 6월)에서 중공군으로부터 화천댐을 사수했다. 한국전쟁의 마지막 전투로 불리는 화천전투에서 1개 연대 병력으로 중공군 3개 연대의 집중공세를 차단했다. 5사단 참모장 겸 부사단장이었던 한신 장군은 불리한 전세에서 직접 전차를 타고 진격해 중공군을 몰아냈다. 그가 장군이 된 뒤엔 먼저 전사한 전우들에 미안한 마음에 한동안 군용지프의 ‘별판’을 가리고 다녔다고 한다.

참군인 한신 장군, 군 부패 척결 #마셜은 루스벨트 대통령에 반대 #매티스 국방장관, 사임으로 항거 #이순신, 패전 막으려 선조에 항명

한신 장군은 한국전쟁 직후 군내 생계형 부패 고리를 끊어냈다. 헬기를 타고 가다가 아무 부대라도 내려앉아 부식 현황을 검열해 부족량이 확인되면 그 자리에서 지휘관을 체포해 압송했다. 육군 수뇌부도 떨었다. 부대 내의 장교클럽은 병사 휴게실 겸 매점(PX)으로 개조했다. 한신 장군의 지휘철학이 ‘장병을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잘 재운다’는 장병 제일주의였다. 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예비역 육군 소장)의 전언이다. 휴전 직후엔 흐트러진 교육훈련을 원칙대로 했다. 전투태세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군의 본분에 맞지 않으면 ‘노(No)’라고 했다. 지금도 한신 장군은 군인의 명예를 지킨 정직하고 강직한 군인의 표상이다.

대통령에 ‘노(No)’라고 하는 미군

마셜플랜으로 유명한 조지 마셜 전 미 국무장관은 군 출신이다. 마셜은 육군참모차장 때인 1938년 11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주관한 회의에 참석했다. 전투기 1만대 생산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회의에 참석한 누구도 대통령에 이의를 달지 못했다. 그러나 1만대의 전투기가 취약한 미군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군을 지원할 목적이라는 점을 파악한 마셜 장군은 “저는 절대 동의할 수 없습니다”고 반대했다. 순간 루스벨트 대통령의 얼굴은 벌게졌고, 회의는 종료됐다. 그날 ‘이제 군 생활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후 루스벨트 대통령은 마셜에게 “당신 말이 옳았소”라고 했다. 루스벨트는 이듬해 마셜을 육군참모총장으로 발탁했다. ‘예스맨’이 아닌 ‘노(No)’라고 할 수 있는 용기를 높이 샀다.(에드가 퍼이어 Jr. 『아메리칸 제너럴십』)

미 중부 사령관 출신에 해병대 수도승으로 알려진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도 마셜과 비슷하다. 군의 원칙을 지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1차 정상회담을 마친 뒤 한·미 연합훈련 ‘중단(stop)’을 발표했다. 그 결과 연례 한·미 연합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이 취소됐다. 그러나 매티스는 쪼개기 훈련으로 대처했다. 그는 “병력이 막사에 앉아 있게 두지 않겠다. 훈련받지 않는 군대는 쓸모없는 존재”라며 소규모 훈련을 계속해야 한다고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했다. (밥 우드워드 『격노(Rage)』) 매티스 장관은 같은 해 12월 트럼프 대통령의 시리아 철군도 정면 반대했다. 트럼프가 일방적으로 철군을 강행하자 매티스는 장관직 사임으로 항거했다. 미군에는 예스맨을 중용하지 않는 문화가 있다. 작전계획이나 전쟁 준비가 잘못됐을 때 ‘노’라고 하지 않으면 실전에서 수많은 장병이 희생되기 때문이다. 국가의 운명에도 영향을 준다.

우리 군은 ‘예스맨’ 일색

한 예비역 장성이 영창 간 현역 복무 아들의 사연을 적은 SNS 글.

한 예비역 장성이 영창 간 현역 복무 아들의 사연을 적은 SNS 글.

요즘 우리 군은 정 반대다. 예스맨 일색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서씨의 ‘황제 복무 논란’이 대표적이다. 최근 퇴임한 정경두 전 국방부 장관은 서씨의 특혜 의혹에 관한 답변에서 오락가락했다. 그는 장관 퇴임 직전인 지난 15일 국회 국방위에서 서씨의 휴가 연장이 ‘규정 위반’이라는 취지로 답변했다가 ‘문제가 없다’며 번복했다. 서씨의 병가 신청에 대해선 “그때 지휘관이 조금 더 세심하게 배려했어야 할 부분”이라며 해당 지휘관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발언도 했다. 그래서 “국방부 장관이 맞나” “군대를 믿고 맡길 수 있을까”라는 말까지 나돈다. 청와대 눈치 보고, 정치권에 영합한 느낌이어서다. 하지만 예스맨 장군들이 진급하는 게 현실이다.

지난 18일 취임한 서욱 신임 국방부 장관은 어떤가. 서 장관은 추 장관의 아들 의혹과 관련해 “국민께 심려를 끼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16일 인사청문회)고 사과했다. 여기까진 좋았다. 그러면서 “지휘관 판단이라 평가하기 어렵다”며 정치적 부담은 피했다. 장관 취임 후엔 추 장관 ‘심기 경호’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군인의 양심과 권력에의 부담이 교차한 듯하다. 이러니 국방부도 따라갔다. 국방부는 서씨와 관련된 자료가 없다고 발뺌했다. 서씨를 위한 해명성 문건을 검찰에 제공하기도 했다.

정경두 장관 시절 국방부 조찬간담회는 ‘예스맨’ 분위기였다고 한다. 회의에 참석했던 예비역 장성(당시 현역 중장) A씨의 말이다. 그런 영향인지 청와대나 정치에 민감한 현안에 국방부는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 이 간담회는 국방부 장·차관과 실장, 합참 의장과 본부장 등이 참석한다. 전군은 이 간담회를 주목한다. 하지만 과거엔 예민한 사안도 활발하게 토의했다. 청와대도 군 영역을 인정해주는 분위기였다. 대통령의 잘못된 판단에 수정을 받아내기도 했다.

군 수뇌부의 무소신에 예비역과 현역들은 우려를 감추지 않는다.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소장)을 지낸 예비역 장성 B씨는 “장관과 군 고위 장성들이 군기를 스스로 허물고 있다”며 비판했다. 추 장관에 대해서는 “법적 논란보다 인간의 이중성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예비역 장성 C씨도 “군 수뇌부가 원칙 없이 행동하니 그 아래도 따라간다”며 “전시작전통제권 조기 전환, 9·19 군사합의 등에 문제가 없다는 군의 해명도 청와대 눈치 보기”라고 꼬집었다. 전작권 전환의 핵심 조건은 북한 핵에 대한 초기 대응능력인데 크게 부족하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 전작권 전환을 서두른다. 에이브럼스 한·미 연합사령관까지 “솔직히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지난 10일 미 CSIS 화상 회의) 그런데도 군 내에선 ‘노’라며 손을 드는 군인이 한 명도 없다. “사유하지 않는 천박함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는 독일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말이 새롭다.

장군의 아들도 말없이 영창 가

이런 상황이 되자 예비역 장성 D씨의 글이 최근 예비역들의 SNS에 회자했다. ‘군대는 정직하고 깨끗해져야 한다’는 제목이다. 아들의 현역 복무 얘기다. 그의 아들은 만기 전역해 현재 대학에서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다고 한다.

“나의 아들은 육군에서 병역의무를 마치고 작년 가을에 전역했다. 군 생활을 34년 넘게 한 나 자신이지만,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군에 가니 어쩔 수 없는 유약한 부모에 불과했다. 그러나 한 번도 부대 지휘관에게 전화한 적이 없다. 한 차례 면회가 전부다. 상병 때 부대에서 전화를 걸어 왔다. ‘저 영창 가게 됐어요.’ 허락 없이 핸드폰을 사용했는데 양심에 찔려 자수했다고 한다. 규정을 어겼냐고 물었더니 아들은 주저 없이 ‘맞다’고 했다. 그래서 ‘그럼 처벌을 달게 받아라’‘영창 들어가면 힘들 게다. 그러나 자신을 돌아볼 귀한 시간으로 삼기 바란다. 잘 다녀와라’고 했다. 의외로 아들은 ‘알겠습니다’며 씩씩하게 답했다. 아들이 영창에 들어간 동안 솔직히 참 힘들었다. 우리 부부가 그때처럼 간절히 기도했던 적이 없었다. 닷새  후 아들의 전화를 받았다. ‘많은 반성과 함께 삶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추 장관은 아들 군 복무 특혜 의혹에 대해 ‘엄마로서 미안하다’는 진심이 담긴 사과를 초기에 했다면 진정시킬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오만함에 국민은 분노했다. 그러자 다른 의혹이 고구마 줄기 마냥 터져 나왔다. 여기에 영합하는 군 수뇌부는 더 문제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얄밉다’는 옛말과 다르지 않다. 물은 아래로 흐른다. 수뇌부가 흔들리니 군대의 기율이자 생명인 군기가 무너지고 있다. ‘명예’ ‘진정한 용기’ ‘임전무퇴의 기상’인 군인정신(군인복무규율 제4조 3항)은 온데간데없다. 임진왜란 때 선조의 부산포 공격명령에 이순신은 왜 항명했을까. 선조의 지시대로 전투하면 패전이 예상돼서였다. 충무공 이순신은 죽음을 무릅쓰고 ‘노’라고 한 것이다. 곤장을 맞고 출정한 후임인 원균은 칠전량에서 전멸했다. 권력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노’라고 할 수 있는 군이 되어야 한다.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 선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