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동료 10명 고발되자, 전공의 집단휴진 연장…정부 “깊은 유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대한전공의협의회가 무기한 파업을 지속하기로 결정한 30일 서울대학교병원 응급실 앞에서 병원 관계자와 119 구급대원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무기한 파업을 지속하기로 결정한 30일 서울대학교병원 응급실 앞에서 병원 관계자와 119 구급대원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정부의 강경 대응에도 불구하고 전공의들이 무기한 파업을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또다시 의료 공백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전공의협, 14시간 마라톤 회의 #재투표 끝 “집단행동 중단 반대” #정부 “수차례 양보에도 집단휴진” #업무개시명령·고발 이어갈 듯 #외래 10~20% 줄고 수술 50% 연기 #“전공의 없어 교수 혼자 수술할 판”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긴급비상대책위원회는 30일 “모든 전공의는 대전협 비대위 지침에 따라 단체행동을 지속한다”고 의결했다. 29일 오후 10시부터 30일 낮 12시까지 14시간에 이르는 마라톤 회의 끝에 지난 21일부터 순차적으로 시행한 집단휴진을 이어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현재로선 복귀 시점을 정하지 않은 ‘무기한’ 휴진이다.

정 총리 “환자 고통 외면한 결정”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이날 “정부가 수차례 양보하고 국회와 범의료계가 전공의협의회를 설득했음에도 불구하고, 집단휴진을 지속 강행하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정세균 국무총리도 “생사의 갈림길에서 고통받는 환자들을 외면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당초 파업 지속 여부를 묻는 1차 투표에선 의결권을 행사한 전공의 193명 중 96명이 파업을 계속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과반 정족수인 97명을 채우지 못했다. 파업 지속 안이 압도적 지지를 받지 못하며 재투표에 들어갔다.

전공의 파업 지속 여부 표결 결과

전공의 파업 지속 여부 표결 결과

대전협에 따르면 ‘비대위 회의에 따라 보건복지부 협의문을 채택하고 단체행동을 잠정 중단한다’는 안건을 두고 2차 투표가 진행됐다. 이번에는 집단행동 중단에 반대한다는 표가 134명 나왔다. 1차 투표와 달리, 파업 지속 쪽으로 상당수가 옮겨 갔다.

정부·국회와의 잠정 합의안으로는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지 못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힘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또 정부가 업무개시명령을 위반한 전공의 10명을 전격 형사 고발 조치한 데 반발해 강경한 목소리가 커진 것으로 알려졌다.

박지현 대전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은 이날 오후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통해 “첫 투표에선 파업 중단 여부가 부결됐고 두 번째 투표에서 파업의 최종 목표에 대해 충분히 논의가 진행된 후 단체행동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의료정책에서 전문가가 존중받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도 했다.

앞서 대전협은 지난 28~29일 한정애 국회 보건복지위원장뿐 아니라 국립대병원협의회 등 의료계 원로와 만나 집단휴진 중단 방안을 논의해 갈등 봉합에 대한 기대도 나왔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를 신뢰할 수 없다는 강경론이 우세하면서 투쟁을 이어가기로 결정됐다.

최대집

최대집

전공의가 파업을 지속하기로 결정하면서 주요 대형병원의 수술·입원 등 진료 공백이 이어지게 됐다. 병원들은 지난 21일부터 전공의들이 단계적으로 파업에 돌입한 데 따라 인력 부족으로 신규 환자를 받지 않는 등 외래진료를 조정해왔다.

서울대병원·서울아산병원·삼성서울병원·서울성모병원·신촌세브란스병원 등 ‘빅5’ 병원은 평소보다 외래를 10~20% 줄였고, 응급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수술 일정도 평소의 30~40%에서 많게는 절반까지 축소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외래진료는 20% 이상 줄었고, 정규 수술 일정을 이번주 월~수에 각 50% 이상 연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공의·전임의가 비운 자리를 교수들이 대신하는 상황도 한계에 봉착하는 분위기다. 교수들이 입원환자, 중환자 관리와 외래진료, 수술, 야간 당직 등을 모두 맡으면서 업무가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영향으로 서울대병원 내과에서는 31일부터 일주일간 외래진료를 축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수술 4일 앞두고 연기, 하늘이 무너졌다”  

의료계와 정부 간 협상에 별다른 진전이 없다면 강 대 강 대치 국면이 이어지면서 환자 피해도 늘어날 가능성이 커졌다. 의료계는 암 환자 진료에는 최대한 차질이 없도록 하겠단 방침이지만 수술 연기 통보를 받은 환자 보호자들은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한 식도암 환자 보호자는 소셜미디어(SNS)에 “수술을 4일 앞두고 파업으로 수술이 연기됐다는 전화를 받았다. 하늘이 무너졌다”고 적었다. 유방암 환자 A씨는 “암을 제거하고 재건 수술을 받으려면 통상 교수 한 명과 전공의 4명이 수술해야 한다는데 전공의가 없어 교수 한 명이 들어가야 한다고 연락이 왔다. 그렇게라도 24시간 마취를 하고 수술할 수 있겠냐고 물어와 분통이 터졌다”고 토로했다. A씨는 결국 수술을 미뤘다.

정부는 여러 차례 제시한 합의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대전협 결정에 유감을 표시했다. 복지부는 이날 “1차 투표에서 파업 지속 추진이 부결된 결과를 뒤집기까지 해 휴진을 강행하겠다는 전공의 단체 결정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냈다.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을 이행하지 않은 전공의에 대한 고발을 이어갈 방침이다. 31일부터 9월 1일까지 비수도권 10개 수련병원에 대해 3차 현장 조사에 나선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전략기획반장은 이날 중대본 브리핑에서 “생명과 직결되는 가장 긴급한 응급실과 중환자실부터 법적 절차를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백민정·황수연·권혜림 기자 ppangshu@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