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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나는 ‘대깨민’이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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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1호 31면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대학평가원장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대학평가원장

‘우리는 지금 진짜 민주주의 사회로 가기 위해 한번은 경험해야 하는 시기를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진보독재보다 더 우려해야 할 일은 #중우정치로 타락한 우리 정치 현실 #사생팬에 휘둘리는 정치 현상에서 #민주주의 가치 수호가 시민 과제

요즘은 플라톤의 『국가론』을 다시 뒤적인다. “플라톤은 민주주의를 우매한 군중이 준동하는 ‘중우(衆愚)정치’로 타락할 수밖에 없는 정치체로 경멸했다.” 대학에서 처음 들었던 교양 과정에서 인상적으로 남은 내용 중 하나가 이거였다. 당시엔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과 열망이 강했던 터라 공감하진 못했다. 그래서 이제껏 이는 암기된 지식일 뿐 경험적 지식은 아니었다. 우리의 민주화 과정에서 시민의 역할은 결코 ‘중우’가 아니었다는 긍지 때문이었을 거다. 그러다 이제야 그 의미를 진심으로 깨닫게 됐다.

요즘 미래통합당이나 보수 진영에선 툭하면 ‘독재’를 운운한다. 8·15 광화문집회에 다녀온 사람들에게 코로나 검사를 받으라고 하자, 보통 시민들도 ‘반정부 인사들의 신원파악을 위한 것’이라는 음모론을 제기한다. 이런 증상은 군부독재 트라우마의 뒤끝이라고 이해는 한다. 허나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권력자의 독재는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우리 시민도 독재를 당하고 있을 수준은 아니어서다. 우리는 왕정, 식민지, 독재를 거쳐 시민 손으로 민주화를 이뤘기 때문에 독재에 대한 면역력이 있다. 쉽게 당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은 그래서 나온다.

역사는 아마도 문재인 정부를 ‘진보독재’ 가 아니라 이 땅에 ‘중우정치’를 도입한 정권으로 평가할 거다. 지금 우리가 심각하게 우려해야 하는 건 흘러간 독재가 아니라 중우정치다. 그 형태는 요샛말로 하자면 ‘팬덤정치’ 혹은 ‘사생팬정치’의 공포라고 할 수 있을 거다.  ‘문빠’ 혹은 ‘대깨문’으로 불리는 문 대통령의 극렬한 팬덤이 진앙지다. 이들은 정권이 하는 일에 조금이라도 비판을 하거나 잘못을 지적하면,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든다. 그들이 무서워 개그맨들도 ‘정치풍자 코미디’를 못 한단다. 신상이 털리고, 욕을 퍼붓는 팬덤은 피하는 게 상책이어서란다.

이런 무지막지한 팬덤이 주는 중압감은 ‘독재시절’의 압박감을 넘어서고, 표현의 자유는 저절로 침해 당한다. 지배의 방식은 다르나 현상은 독재 시절과 별로 다르지 않다. 그래서 요즘 부쩍 ‘독재’라는 용어가 떠오른 것인지도 모른다. 한때 문재인 캠프에 있었던 신평 변호사가 ‘대깨문’을 야비하고 혹독하다고 비판한 것도 그래서일 거다. 그는 “아무리 위대한 달님(문 대통령)을 향한 충성심을 일편단심으로 나타내건말건 ‘대깨문’은 민주주의 부적격자”라고도 했다. 실제로 그들이 장악한 댓글판은 무례함과 심성의 삭막함을 넘어 ‘우리 한글이 이렇게 저질스럽고 혐오스러울 수 있구나’하는 서글픔을 느끼게 한다.

선데이 칼럼 8/29

선데이 칼럼 8/29

진짜 위험한 건 이들에 부화뇌동하고 아부하는, 한 술 더 떠 활용하는 정치인들이다. 한 예만 들어보자. 청와대 국민청원 ‘8·15 광화문 시위를 허가한 판사의 해임 청원’이 하루만에 20만 명을 돌파했다. 그러자 여당 국회의원이 이 결정을 한 재판장을 비판하며 ‘박형순 금지법’을 발의했다. 국민의 안전과 생존권을 위해서란다. 그런데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격상은 이 집회 이후인 16일 시행됐다. 법원은 2016년 ‘촛불집회’도 매번 허용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렸나? 코로나 확산 방지는 행정부의 일이고, 시민정신으로 극복해야 할 문제다. 법은 우리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법을 흔들어 대중에 아부해선 안 된다.

이 판국에 이르고서야 비로소 플라톤의 ‘배의 비유’를 이해하게 됐다. 이 비유에서 ‘민주주의’라는 배의 선주는 국민이다. 그런데 선주는 배에 탄 사람들 중 가장 우월하지만 귀도 약간 멀고 눈도 근시인 데다 항해에 관해서는 아는 것도 별로 없다. 그래서 선원들(민중선동가, 현실정치인)은 점잖은 선주를 최면제나 술로 적당히 취하게 하고는 자신의 신분과 기술을 활용해 배를 제멋대로 움직인다. 항해에서 결정적으로 위험한 존재들은 바로 이들 선원, 즉 선동가와 정치인들이다. 실력은 없으나 욕망만 가득한 그들에게 선주는 ‘팬덤’이라는 최면제에 취해 배를 내줘버린 것이다.

플라톤은 아테네 몰락의 이유를 대중적 인기에 몰입해 그 요구에 무조건 부응하는 사회적 병리현상, 개인의 능력이나 기여도 등은 무시하는 그릇된 평등관, 절제와 시민적 덕목을 경시하고 무절제와 방종으로 치닫는 우매한 민중, 이들에게 휘둘리는 중우정치로 변질된 민주정으로 꼽았다. 중우정치로 치달은 아테네는 소크라테스를 사형대로 보냈고, 몰락의 길을 걸었다.

그렇다고 플라톤의 ‘철인정치’를 해결책으로 생각하진 않는다. 플라톤이 꿈꾸는 이상적 철인은 드물게 한번씩 역사에 다녀간다. 그런 이를 기다릴 시간이 없다. 오히려 “적은 양의 물은 쉽게 썩지만, 많은 양의 물은 쉽게 썩지 않는다”는 아리스토텔레스 식의 민주주의가 현실적이다. 나는 ‘머리가 깨져도 민주주의’(대깨민)다. 이를 위해 이젠 합리적 시민 스스로가 시민정신을 각성하고, 공부하는 시민이 돼야 한다. 무례하고 무지막지한 팬덤이 우리의 언로를 막지 못하도록, 과거 군부독재에 저항했던 시민의 저력을 다시 깨워야 할 시간이 된 것 같다.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대학평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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