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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예일리’…분산투자로 20년간 연 11.4% 수익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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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1호 26면

[월스트리트 리더십] 예일대 기금 CIO 데이비드 스웬슨 

투자 기법과 그 기법을 대표하는 투자가라고 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조합이 있을 것이다. ‘가치투자’와 ‘워런 버핏’, ‘퀀트투자’와 ‘제임스 사이먼스’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영리(for-profit) 영역의 인물이다. 버핏의 투자 성과는 보험사 버크셔해서웨이 주주들의 몫이고, 사이먼스의 성적표에 헤지펀드 르네상스테크놀로지 투자자들의 수익이 달려 있다. 이들과 달리 비영리(non-profit) 영역에서 이에 버금가는 조합이 ‘예일모델’과 ‘데이비드 스웬슨’이다. 예일대 기금 최고투자책임자(CIO) 스웬슨이 집대성한 예일모델은 오롯이 예일대만을 위한 수익 창출 엔진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마라” #예일모델 주창한 토빈의 제자 #도제식 교육, 철저한 아웃소싱 #투자전문가 성품까지 따져 위탁 #예일 기금운용팀 출신 승승장구 #국내 연기금도 강력한 리더 절실

예일대 기금은 지난 20년 동안 연평균 11.4%의 수익률을 기록해, 같은 기간 미국 주식시장(S&P500 6.4%)과 대학 기금 평균(6.5%) 수익률을 크게 상회했다(2019년 6월 기준). 뛰어난 성과 덕에 규모도 급증해 이제 303억 달러의 자산을 굴리는 거대 기관 투자자의 반열에 올라 있다. 이렇다 보니 전 세계 연기금이 앞다퉈 예일모델을 벤치마킹한다. 자산배분 계획을 세우고 이에 맞춰 국내외 주식·채권 그리고 특히 대체투자자산(사모펀드·벤처캐피털·헤지펀드·부동산 등)에 장기간 분산 투자하며 스웬슨이 거둔 투자 성과를 기대한다.

모교에 각별한 애정, 동문 네트워크 활용

데이비드 스웬슨은 예일대에 대한 사명감에 더해 예일대 동문 네트워크를 활용해 예일모델의 성공을 이끌었다. 배경 사진은 뉴욕증권거래소. [중앙포토, AP=연합뉴스]

데이비드 스웬슨은 예일대에 대한 사명감에 더해 예일대 동문 네트워크를 활용해 예일모델의 성공을 이끌었다. 배경 사진은 뉴욕증권거래소. [중앙포토, AP=연합뉴스]

그런데 이들이 간과하는 중요한 지점이 있다. 스웬슨의 예일모델이 갖는 경쟁력의 실체가 그것이다. 주식시장을 지향하는 투자, 장기 분산투자 등 겉으로 드러나는 특징만을 바라본 결과, 예일모델에 깊숙이 내재해 있어 객관화가 쉽지 않은 것을 놓치고 있다. 이 때문에 누구든 예일모델을 모방해 볼 순 있어도 완벽하게 구현해 내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경쟁력의 실체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스웬슨의 ‘예일대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고, 둘째는 ‘예일리(Yalie)’라고 부르는 예일대 동문이다. 스웬슨은 예일대에 대한 투철한 사명감에다 예일대 동문 네트워크를 주춧돌 삼아 예일모델의 성공을 이끌고 있다.

예일모델의 출발점은 스웬슨의 스승 제임스 토빈 전 예일대 교수의 연구 업적인 ‘포트폴리오 이론’이다. 토빈 교수는 이 연구로 198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고, 스웬슨은 토빈 교수의 지도로 1980년 예일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노벨상 수상 후 복잡한 이론을 쉽게 설명해달라는 기자들의 요구에 토빈 교수가 내놓은 명쾌한 대답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마라”는 그 후 예일모델의 핵심 원칙이 됐다. 1985년, 월가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에서 트레이더로 일하던 스웬슨을 예일대 기금 CIO로 불러 앉힌 이도 토빈 교수였으니 예일대가 맺어준 사제 관계가 예일모델의 탄생에 결정적 역할을 한 셈이다.

스웬슨은 철저한 ‘아웃소싱’을 추구하기로 유명하다. 기금운용팀에서 자산배분 계획을 세운 후 외부 투자전문가를 선정해 자산군별 투자를 위탁한다. 이렇게 외부 투자전문가의 역할이 중요한 만큼 그들에 대한 심사와 관리도 매우 까다롭다. 이런 경우 보통 과거 투자 실적이 평가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끼치게 마련이다. 하지만 스웬슨이 가장 역점을 두는 기준은 투자전문가의 ‘성품(character)’이다. 대학 기금과 같은 비영리 영역에서 투자의 성패를 좌우하는 건 한두 해 성적표가 아닌 책임감 있는 투자라는 데 방점을 찍은 결과다. 이에 투자전문가의 신상 조사에도 많은 공을 들인다. 심층 면접은 물론이고 심사 대상자의 고교 시절 은사와 친구까지 수소문해 의견을 구할 정도다.

아웃소싱 관련 리스크를 줄이는 차원에서 스웬슨은 동문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모교에 대한 애정이 깊은 월가 동문에게 투자를 위탁하는 것은 이른바 ‘대리인 비용’으로 대표되는 ‘거래비용’을 줄일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이라서다.

스웬슨이 외부 투자전문가를 관리하는 노하우도 특별하다. 예일대는 매년 한 차례 주말 동안 외부 투자전문가 전원을 캠퍼스로 초청한다. 여기서 참석자들은 총장·교무처장·스웬슨을 비롯해 예일대 스포츠 대표팀의 코치 및 선수들과 어울려 골프와 테니스 시합을 펼치며 친선을 도모한다. 저녁엔 총장이 주최하는 만찬에서 술잔을 기울인다. 그리고 일정을 마치면 예일대를 상징하는 기념품이 가득한 가방을 선물로 받는다.

이틀간 꼬박 캠퍼스에 머물며 예일대에 흠뻑 빠져드는 이 연례행사의 목적은 단 하나다. 예일대 동문이든 아니든 모든 외부 투자전문가들의 예일대에 대한 연대감과 책임감을 북돋우려는 것이다. 궁극적으론 ‘예일대를 위한 수익 창출’이라는 미션을 그들의 가슴 깊이 새기는 데 있다. 이렇게 해서 쌓인 돈독한 상호 신뢰의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 외부 투자전문가들과 맺은 관계의 기간이다. 예일대 기금은 현재 100명이 넘는 전문가들과 평균 13년이라는 오랜 계약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스웬슨은 기금운용팀의 운영에서도 예일대라는 연결고리를 중요하게 여긴다. 우선 30여 명의 기금운용팀 직원 가운데 절대다수가 예일대 출신이다. 기금운용팀은 예일대를 갓 졸업한 학생들을 신입 직원으로 채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대부분 기금운용팀의 인턴 출신이기도 하다. 스웬슨은 잠재력이 풍부한 인턴을 직접 발굴하기도 한다. 매 학기 직접 투자 과목을 강의하는 스웬슨이 수강생 중 뛰어난 학생을 인턴으로 영입하는 것이다. 스웬슨은 직원들에 대한 교육에도 열정을 쏟는다. 자신의 투자철학과 모델을 직원들에게 도제식으로 가르치는 마치 ‘학교 같은 분위기’로 기금운용팀을 운영한다.

외부 투자자 전원 매년 캠퍼스 초청도

이렇게 스웬슨으로부터 교육받은 직원들은 다른 기금이나 금융회사로 이직하거나 직접 운용사를 창업해 독립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은 주요 대형 기금을 운용하는 CIO 중 상당수가 예일대 기금운용팀 출신이라는 사실이다. MIT·스탠퍼드대·펜실베이니아대·록펠러 재단 등 예일대 기금운용팀 출신이 운용하는 기금의 전체 규모는 1000억 달러에 이른다. 이들은 예일대를 떠나서도 스웬슨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투자 대상을 발굴하고, 투자 수수료를 협상하고, 투자를 집행하는 데 스웬슨의 리더십 아래에서 일사불란하게 함께 움직이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예일대학교 기금 (Yale University Endowment)

기금 규모 303억 달러(2019년 6월 기준)
투자수익률 10년 11.1%, 20년 11.4%
(연 평균) (2019년 6월 기준)

예일대 기금의 성공 비결은 ‘예일대라는 공통분모를 지닌 엘리트 네트워크’에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뼛속까지 예일리인 스웬슨의 리더십이 자리 잡고 있다. 결국 조직의 성과는 조직의 미션을 수행하려는 구성원들의 강한 의지에 달려있고, 이를 불러일으킬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인력난을 호소하는 우리나라 연기금도 곱씹어봐야 할 내용이다. 많은 국민의 노후생활을 책임진다는 미션을 중심으로 직원과 외부 투자 네트워크를 움직일 역량이 있는 리더를 갖추는 것이 최우선이다.

데이비드 스웬슨(David Swensen)

예일대학교 기금 최고투자책임자(CIO) /
전 리먼브라더스 수석부장 /
전 살로몬브라더스 어소시에이트
출생연도 1954년(66세)
최종 학력 예일대 경제학 박사(1980년 졸업)

힐하우스캐피털 투자로 15년간 20억 달러 대박

스웬슨은 예일대 기금운용팀 출신이 독립해서 세운 신생 운용사에 투자를 위탁하기도 한다. 한 팀에서 일하며 자신의 투자철학과 노하우를 전수 받은 이들에 대한 강한 신뢰의 결과다.

사모펀드 운용사인 ‘힐하우스캐피털’의 레이 장에 대한 스웬슨의 투자가 좋은 예다. 스웬슨은 예일대를 졸업하고 기금운용팀에서 함께 일한 장이 2005년 설립한 운용사에 2000만 달러를 투자하며 초기 투자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이 투자는 상당한 굴곡을 겪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2008년 한 해 동안 무려 44% 손실을 기록한 것이다.

하지만 스웬슨은 흔들리지 않았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힐하우스캐피털의 포트폴리오에 담긴 스타트업들은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었고 장의 투자철학에 대한 신뢰도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스웬슨은 투자 회수가 아닌 추가 투자로 응수하며 저가 매수의 기회로 삼았다.

당시 힐하우스캐피털이 투자했던 스타트업이 ‘텐센트’ ‘JD.Com’ 등이었으니 그 후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는 상상이 가능하다. 스웬슨의 힐하우스캐피털 투자는 2005년 이후 지금까지 예일대 기금에 20억 달러의 수익을 안겨준 것으로 알려졌다.

최정혁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jung-hyuck.choy@sejong.ac.kr
골드만삭스은행 서울 대표, 유비에스, 크레디트 스위스, 씨티그룹 FICC(Fixed Income, Currencies and Commodities, 채권·외환·상품) 트레이더로 일했다. 세종대 경영학부에서 국제금융과 금융리스크를 강의하며 금융서비스산업의 국제화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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