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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창동 순두부, 美문화된 요리" 창업자 이희숙 추모한 NYT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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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이희숙 북창동순두부 대표. [중앙포토]

고(故) 이희숙 북창동순두부 대표. [중앙포토]

"매콤하고 붉은 소뼈 육수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순두부찌개. 레시피는 남편에게조차 비밀로 했다. 그는 어린 아들들이 잠자는 동안 부엌에서 양념 실험을 하며 긴 밤을 보냈다. 두부는 숟가락이 아니라 혀에 녹을 정도로 부드럽다. 고춧가루는 국물에 '감칠맛'을 더한다. 그의 식당은 체인(프랜차이즈)으로 성장했고, 그의 요리는 미국 문화의 일부가 됐다."

미국 뉴욕타임스(NYT) 27일(현지시간)자 지면에 실린 '북창동순두부'(BCD Tofu House) 창업자 고(故) 이희숙(본명 홍희숙, '이'는 남편의 성) 대표의 부고 기사다. NYT는 "그녀가 미 12개 도시, 13개 지점의 프랜차이즈 성공신화를 일궜다"며 "그는 배고픈 젊은이들을 위해 매장의 문을 24시간 열기도 했고, 젊은이들은 그의 비밀스런 순두부 요리나 한식을 갈망했다"고 이 대표의 삶을 재조명했다.

별세 한 달여 만에 부고기사 내

이 대표는 지난달 18일 난소암 투병 끝에 향년 61세로 미 로스앤젤레스(LA)의 한 병원에서 별세했다. 신문은 한 달여 만에 이 부고 기사를 통해 그를 추모한 것이다.

이 대표는 1959년 6월 서울에서 4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교사, 어머니는 주부였다. 그가 중학교 때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어머니는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거나 시장에서 물건을 팔며 가계를 꾸려간다. 이 대표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어려운 집안 살림에 보태기 위해 일을 시작한다. 어머니가 둘째 딸인 그에게 "너는 우리 집 아들이야"라고 할 정도였다. 1983년 법률가 출신 외식사업가 이태로씨와 결혼한 이 대표는 1989년 자녀교육을 위해 미 LA로 이주한다.

순두부 음식점을 열겠다고 생각한 것은 1990년대 중반, 교회 예배가 끝난 뒤 뱃속에서 '꼬르륵~'소리가 날 정도로 배고팠던 아들들이 길 건너 순두붓집에 가자고 조른 것이 계기였다. 친척의 두부 음식점이 있던 서울 북창동에서 착안해 '북창동순두부'란 간판을 내걸었다. 북창동순두부는 1996년 LA한인타운 버몬트와 7가에서 첫선을 보였다. 이 대표는 매일 새벽 도매시장에서 신선한 농산물을 직접 골랐다. 고인의 장남 에디리 서던캘리포니아대(USC) 의대 교수는 "어머니는 식탁에 올릴 것이라면 모든 것이 완벽해야 했다"며 "밥의 온도, 김치의 색, 두부 양념의 염도까지 모든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NYT는 미국 내 '북창동순두부'가 한국 단체관광객은 물론, 유명 스포츠 스타, 영화배우까지 줄 서서 먹는 명소가 됐다고 했다. 또 버스에서 내린 관광객들은 꼭 식당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겼으며, 24시간 영업했지만 항상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고 평가했다. 에디리 교수는 NYT에 "(순두부 맛의) 비밀은 양념에 있다"며 "그것이 내가 말할 수 있는 전부다. 그렇지 않으면 더이상 비밀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일시해고된 직원들에게 의료보험 혜택을 제공하거나, 잔업을 하던 직원들에게 추가 수당을 주는 등 직원 복지에도 신경 썼다고 NYT는 전했다.

유족은 남편 이태로씨와 슬하에 장남 에디리 교수 등 세 아들이 있다.

고석현 기자 ko.suk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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