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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억 쏟고도 흙탕물 천지···'내린천 비극' 해법 찾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5일 쏟아진 집중호우로 강원 인제 인북천이 시뻘건 흙탕물로 돌변해 교량을 위협하는 모습. [사진 인제군]

지난 5일 쏟아진 집중호우로 강원 인제 인북천이 시뻘건 흙탕물로 돌변해 교량을 위협하는 모습. [사진 인제군]

 지난 5일 오후 소양강 상류인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서화리 인북천. 집중호우에 불어난 하천물이 높이 3m의 제방을 넘어 주변 논과 밭을 덮쳤다. 폭 70~100m의 하천이 범람하면서 제방 수백m도 유실됐다.

계단식 밭 토양 부유물질 80%가량 적어 #고랭지 밭 불법개간·경작 15곳도 적발해

 주민들은 이날 인북천이 범람한 원인 중 하나로 상류 쪽에 수년에 걸쳐 조성된 고랭지 밭에서 쓸려내려 온 토사를 꼽고 있다. 인북천 상류의 고랭지 밭 등에서 쓸려내려 온 토사가 유속이 느려지는 서화리 인근 인북천에 오랜 기간 쌓여 하상(河床·하천바닥)이 높아진 상황에서 집중호우까지 쏟아지면서 하천이 넘쳤다는 주장이다.

 실제 인북천 상류인 양구 해안면 만대지구에선 무·배추 등 고랭지 채소와 인삼·감자 농사를 짓기 위해 만든 경작지가 3000곳(1680㏊)에 이른다. 비만 오면 흙과 자갈이 지속해서 하류에 쌓여 물길을 바꾸는 상황이다. 강원도와 한국수환경관리연구소가 공개한 ‘2018 소양호 상류 오염원 관리대책 시행계획’을 보면 양구군 해안면 인삼 경작지의 토사유실 가능 추정치는 29만7480t, 감자는 23만8307t 에 달한다.

 박광주(50) 인북천시민모임 사무국장은 “오랜 기간 양구 해안면에서 흘러드는 토사로 하천 곳곳에 있던 웅덩이 같은 소(沼)가 사라지고, 하상도 상당히 높아진 상황”이라며 “상류 고랭지 밭에서 흙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하는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작물 수확 끝나는 9월 말쯤 추가 실험 

강원 인제군 내린천이 흙탕물로 변한 모습. 인제군은 하천 상류 고랭지 밭의 경작 규모가 커지며 토사가 인북천과 내린천으로 유출돼 물줄기가 흙탕물로 변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연합뉴스]

강원 인제군 내린천이 흙탕물로 변한 모습. 인제군은 하천 상류 고랭지 밭의 경작 규모가 커지며 토사가 인북천과 내린천으로 유출돼 물줄기가 흙탕물로 변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연합뉴스]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고랭지 밭에서 쓸려내려 오는 토사를 막기 위해 투입된 예산은 1400억원. 그런데 20년 가까이 해법을 찾지 못했던 인제군 인북천과 내린천의 비극을 끝낼 수 있는 실험 결과가 나와 주목된다.

 환경부 원주지방환경청이 고랭지 밭 흙탕물 발생 저감을 위해 설립한 ‘강원지역 비점오염관리 연구·지원센터(이하 전문센터)’는 “고랭지 밭 흙탕물 저감을 위해 계단식 밭을 시범 조성해 실험한 결과 토양 부유물질이 80%가량 감소했다”고 27일 밝혔다.

 전문센터는 지난 5월 홍천군 내면 창촌리 일원 6500㎡와 내면 광원리 일원 3000㎡ 경사진 밭을 계단식으로 조성했다. 앞서 지난 1월 평창군 대관령면 차항리 일원 6700㎡ 경사진 밭도 돌망태를 이용해 3단으로 만들었다. 실험은 집중호우가 내린 이달 초 홍천군 창촌리에 조성한 계단식 밭에서 진행됐다. 기존 경사진 밭과 계단식 밭에서 집중호우에 흘러나온 흙탕물을 채취해 분석한 결과 토양 부유물질이 80%가량 감소했다는 결과를 얻었다.

 김동진 수질총량관리과장은 “수해 피해가 컸던 이번 집중호우에도 새로 조성한 계단식 밭에선 토양 유실이 없었다”며 “밭에 있는 작물 수확이 끝나는 9월 말쯤 흙만 남은 상태에서 비슷한 실험을 한 차례 더 진행해 보다 명확하게 효과가 있는지를 입증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고랭지 밭 토사 유출 하천 범람에도 영향

지난 5월 강원 홍천군 내면에 조성된 계단식 경장지 모습. [사진 원주지방환경청]

지난 5월 강원 홍천군 내면에 조성된 계단식 경장지 모습. [사진 원주지방환경청]

 원주지방환경청은 또 고랭 밭 토사 유출을 줄이기 위해 지난 6월 말부터 8월까지 고랭지 밭 불법개간·경작 단속에 나서 15곳을 적발했다. 개인소유 또는 임대한 경작지와 인접한 국·공유지(임야)의 나무를 잘라내는 등 무단으로 확장한 불법개간이 9곳, 밭뙈기 안의 국·공유지를 인·허가 절차 없이 불법경작한 6곳 등이었다. 15곳의 불법개간·경작지 중 10곳은 인제 인북천과 내린천 상류에 있는 양구 만대지구(7곳)와 인제 가아지구(2곳), 홍천 자운지구(1곳)다.

 원주지방환경청은 불법행위가 적발된 필지는 경작자에게 변상금을 부과하고 원상복구 명령 등 후속 조치를 진행하기로 했다. 홍정섭 원주지방환경청장은 “이번 점검을 통해 고랭지 밭 불법행위를 근절하고 휴경권고 및 식생벨트 조성 등 다양한 고랭지 밭 관리정책을 추진할 계획”이라며 “경작자들이 계단식 밭 조성 확대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등 흙탕물 발생을 최소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강원도 내 비점오염원 관리지역은 인제·강릉·삼척·평창·정선·양구·홍천 등 총 7개 시·군이다. 관리면적은 인북천 유역 만대지구 64.14㎢, 내린천 유역 자운지구 133.18㎢ 등 총 면적만 891.59㎢에 달한다. 그동안 흙탕물 저감에 들어간 예산은 양구·인제 683억원, 평창 338억원, 홍천 269억원, 강릉·삼척·정선 170억원 등 1460억원에 달한다.

인제·홍천=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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