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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속, 전시는 끝내 이루지 못할 꿈 같았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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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에이라운지 전시장에 자리를 함께한 배은아 큐레이터와 써니 킴 작가. [사진 에이라운지]

에이라운지 전시장에 자리를 함께한 배은아 큐레이터와 써니 킴 작가. [사진 에이라운지]

미국 뉴욕에서 활동 중인 써니 킴(Sunny Kim)의 개인전 ‘다른 날이 같은 날이었으면…’이 서울 부암동 에이라운지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각각 미국과 한국에서 지내던 킴 작가와 배은아 큐레이터가 원격 소통을 하며 만든 전시다. 두 사람은 “불가능할 것만 같은 전시를 가능하게 해보고 싶다는 바람 하나로 준비했다”며 “비록 작은 규모이지만 이렇게 전시를 열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에겐 큰 위로”라고 말했다. 전시장엔 킴 작가가 책  『마사오카 시키 수필선』을 낭독하는 목소리(녹음)가 들린다.

써니 킴 개인전 ‘다른 날이 같은 날…’ #미국서 한국의 큐레이터와 준비

왜 책을 낭독했나.
“책 낭독이 처음부터 작업의 일환은 아니었다. 미국에서 코로나19가 심각해지는 것을 보며 힘겨운 시간을 보냈는데, 그때  ‘읽는’ 행위가 위안이 되어서 한 것이다. 패닉에 빠져 일할 수가 없었다. 당시 나는 마사오카 시키(1867~1902)가 쓴 글을 읽으며 곱씹었고, 그때 책에서 받은 위로를 친하게 지내던 배 큐레이터에게 녹음해 전했다.”
어떤 책인가.
“마사오카 시키는 하이쿠 시인인데 29세부터 병상에서 지내다 35세에 삶을 마감했다. 그중 내가 낭독한 글은 그가 병상에서 쓴 수필 (‘병상육척’)과 동료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에게 쓴 편지글이다. 제한된 공간에서 지내며 쓴 글이다.”
어려움 상황에서 전시를 준비했다고.
“미국에서 겪은 코로나19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리던 그림도 계속 그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전시도 포기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배은아 큐레이터가 자신이 서울에 있으니 전시를 준비해 보겠다고 제안했다. 서로 화상 전화로 대화하며 준비했는데, 기적적으로(?) 제가 한국에 들어올 수 있는 상황이 됐다. 한국에 들어와 2주 격리 기간을 마치고 나니 전시 개막 이틀 전이었다.”
큰 꽃나무, 2019, 캔버스에 아크릴, 146x113㎝. [사진 에이라운지]

큰 꽃나무, 2019, 캔버스에 아크릴, 146x113㎝. [사진 에이라운지]

이번 전시는 회화 6점과 합판으로 이루어진 설치구조물, 영상작업, 작가가 친구인 배은아를 위해 낭독한 책 등으로 구성됐다. 배 큐레이터는 “작가의 작업을 다 알고 있기에 원격으로 이야기하면서 전시를 해보자고 제안했다”며 “가진 재료들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준비했다”고 말했다. 이어 “써니 킴은 교복 입은 소녀들을 소재로 여러 작업을 했는데, 배경의 요소였던 폭포나 꽃나무들이 이번 작품에선 전면으로 등장한다는 점이 흥미롭다”며 “‘큰 꽃나무’ ‘작은 꽃나무’ 등 작품은 그의 과거 작품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주한 써니 킴은 한국에서 보낸 짧은 유년시절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를 재구성해 작품을 만들었다. 2001년 교복 입은 소녀를 그린 작업을 시작으로 회화·영상·설치 등을 넘나들며 작업했고,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후보에 올라 주목받았다.

킴 작가는 향후 계획에 대한 질문에 “(코로나19로)정말이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것 같다. 한국에 언제까지 머물지, 다음 전시를 언제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며 “다만 현재와 같은 상황에선 내면을 깊숙이 더듬고 기억을 끄집어내는 쪽으로 작업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전시는 9월 2일까지.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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