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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표' 부동산의 역설…공급 늘었다지만 살 집은 줄었다

중앙일보

입력

지난 19일 서울 송파구 잠실새내역 인근 아파트 단지 내 공인중개업소의 모습. [뉴스1]

지난 19일 서울 송파구 잠실새내역 인근 아파트 단지 내 공인중개업소의 모습. [뉴스1]

“매년 17만호씩 공공 임대주택을 공급하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19대 대선을 앞둔 2017년 4월 ‘집 걱정, 전·월세 걱정, 이사 걱정 없는 대한민국!’ 공약을 발표하며 이렇게 말했다. 장기 공공임대주택 13만 가구와 공공지원 임대주택 4만 가구를 해마다 공급하겠다는 약속이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이 공약의 목표는 매년 초과 달성되고 있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집 걱정을 덜었다고 말하는 이들은 드물다.

◇정책과 현실의 괴리감

문 대통령 공약과 국민의 집 걱정 사이 간극은 이상(정부)과 현실(국민)의 괴리였다. 대선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정책공약집에서 주거문제 해소 공약으로 6가지를 제시했다. 그중 4가지는 임대 주택 관련 공약이고, 나머지는 노후주택 지원과 임차인 권리 보호 공약이었다. 초점은 주거복지였다.

반면 다수 국민의 목표는 ‘내 집 마련’이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도시대학 교수는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영원히 임대주택에 살고 싶은 사람은 없다”고 했다. 건설주택포럼이 올해 5~6월 수도권에 거주하는 성인 145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의 38.5%가 서울 중에서도 강남 3구가 있는 동남권에 거주하고 싶다고 응답했다. 시민은 임대주택보다는 자신의 집에서, 자가(自家) 중에서도 입지가 좋은 곳에 살고 싶어한다.

◇서울 시민의 '내 집 마련' 꿈 

현 정부에서 임대주택 공급은 크게 늘었다. 하지만 적어도 서울에선 시민의 ‘내 집 마련’ 꿈을 실현해줄 집은 부족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질문하려고 손을 든 기자를 지목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당시 "급격한 (부동산) 가격 상승이 있었던 일부 지역은 원상 회복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질문하려고 손을 든 기자를 지목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당시 "급격한 (부동산) 가격 상승이 있었던 일부 지역은 원상 회복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서울 전체 공동주택 분양 실적 중 임대주택과 조합원분 분양을 제외한, 일반분양 실적만 살피면 현 정부 들어 감소했다.

국토부 통계에 따르면, 2013~2017년 서울 공동주택 일반분양은 약 1만6000~1만9000가구 수준이었는데, 2018년 1만773가구, 2019년 1만5429가구다. 올해는 지난 6월까지 실적이 5221가구인데 최근 7년 중 최저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지난달 “서울의 주택공급 물량은 적지 않다”고 했다. 임대주택 등을 포함했을 때는 맞는 말이지만, 일반 시민의 ‘내 집 마련’을 위한 새집만 따졌을 땐 사실과 어긋났다.

 ◇분양보다 멸실이 많은 현실

게다가 노후화 등의 이유로 없어지는 주택은 늘고 있다.

서울 멸실 아파트는 2015년 1791가구였다가 2016년 1만573가구, 2017년 1만4738가구로 폭증했다. 2018년 멸실 공동주택(아파트·연립·다세대)은 1만4778가구였는데 이는 공동주택 일반분양 가구 수보다 많은 수치다. 새집이 많이 공급돼도 멸실 가구 수가 많으면 집이 부족한 상태는 계속된다.

또 서울기술연구원은 지난 6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서울 건축물 중 49.5%가 사용 연한 30년을 초과해 생활공간이 늙고 있다”고 분석했다. “향후 5년 이내에 사용 연한 30년을 초과하는 건축물 비율은 65.8%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서울 공동주택 일반 분양 승인 실적.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서울 공동주택 일반 분양 승인 실적.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서울 공동주택 멸실 현황.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서울 공동주택 멸실 현황.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요약하면 서울에서 일반 시민이 분양받을 수 있는 새 아파트는 줄었고, 낡아서 없어지는 주택은 크게 늘었으며, 있는 건축물도 절반이 30년을 넘을 정도로 낡아가고 있다.

홍춘욱 EAR리서치 대표는 “정부는 서울 주택이 충분하다고 말하지만, 서울 시민들이 살고 싶어하는 집이 충분했느냐는 다른 얘기다. 서울 집값이 오르는 건 서울 시민들이 살고 싶을 정도의 집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 정부 탓'만 할 수 있나

서울 주택 시장의 공급 측면의 문제를 현 정부의 전적인 책임으로 볼 순 없다. 현재 분양 실적은 3~4년 전 착공ㆍ인허가 실적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다만 공급 부족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현 정부가 출범 초기부터 과감한 공급 정책을 폈다면 집값 상승 폭은 작았을 것이라고 다수의 전문가들은 본다.

이명박 정부는 취임 첫해인 2008년 150만 가구의 공공주택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실제 그만큼 공급은 안 됐어도, 주택 시장에 ‘싼 아파트가 쏟아져 나온다’는 신호를 주면서 집값 하락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 정부는 첫 공급 대책을 출범 1년 반이 지난 2018년 9월 처음 내놨다.

◇'탐욕'이 된 내 집 마련의 꿈

부동산 정책의 무게 추가 수요 억제나 임대주택 확대로 기울어진 건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의 정치 철학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재묵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책과 제도의 설계는 인간의 욕망을 ‘거스르는’ 방식이 아닌 ‘다스리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 근데 현 정부는 내 집을 갖고 싶고 부자가 되려는 서민의 욕망을 나쁘다고 보다 보니 정책이 시장에서 작동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여권이 자주 언급하는 토지공개념도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방향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 아파트 가격과 대통령 발언.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서울 아파트 가격과 대통령 발언.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익명을 원한 부동산 전문가는 “임대주택을 충분히 공급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런데 공급ㆍ수요 정책이 함께 작동해야 시장이 안정된다. 정부가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의 꿈조차 탐욕시하다보니 수요 억제와 임대주택엔 정책 역량을 집중하면서도 공급확대엔 정책적 관심이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등 여권은 최근 서울 집값을 올리는 이들을 “투기 세력”이라고 지칭했다. 하지만 올 상반기 아파트 매입자의 절반 이상(50.3%)은 투기 세력이라기보다는 실수요자에 가까운 30·40세대였다. 홍춘욱 대표는 “정부가 정체불명의 용어 ‘서민’을 자주 사용하는데, 실제 많은 서민은 정부가 생각하는 것보다 서울 집을 살 정도의 여력은 있다”고 말했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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