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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바위 위 소나무 사진 찍기에 바친 인생2막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81)

영하 19도. 사진작가가 경북 청송 얼음골 계곡에서 측정한 한겨울 기온이다. 암벽을 타고내린 물은 그대로 봉긋봉긋 하얀 빙벽을 만들었다. 사진을 만나면 38도 폭염이 한순간 날아갈 것만 같다. 시선을 멈추게 하는 것은 다음이다. 그 빙벽을 뚫고 나와 하늘로 가지를 뻗은 작은 소나무다. 강인한 생명력에 저절로 숙연해진다.

청송 얼음골 빙벽송. [사진 김휘동 사진작가]

청송 얼음골 빙벽송. [사진 김휘동 사진작가]

사진작가 김휘동(76)의 ‘청송 얼음골 빙벽송’은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기교가 아닌 살을 에는 혹한 속 치열한 정신이다. 작가는 장엄함에 빨려들어 강바닥 얼음을 밟고 카메라 바인더에 눈을 고정한 채 1시간 반이 넘도록 몰입했다. 체감온도 영하 30도 칼바람은 잊은 채였다. 얼마 뒤 찰칵찰칵 셔터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손과 발이 얼어 더 이상 카메라 셔터를 누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노출된 손등은 고통을 동반하며 쓰라렸다. 동상을 입었다. 작가는 이듬해 다시 현장을 찾았고 서툴던 기술을 보완했다. 이 작품은 광주비엔날레 ‘2013 대한민국 아트 페스티벌’ 초대 작품으로 출품되는 영광을 안았다.

작가의 주제는 솔바위다. 이끼나 작은 풀이 아니고는 살기 어려운 바위에 터를 잡아 인고의 세월을 견디는 소나무의 생명력이다. 고난을 이기고 반만년을 꿋꿋이 이어 온 한민족의 상징에 다름 아니다.

김휘동은 작가 경력이 오래지도 않다. 2013년에서야 안동문화원 사진반을 수료했다. 그러나 사진의 주제를 정하는 안목이나 열정은 어느 작가에도 뒤지지 않는다. 2018년에는 사진작가로서 이례적으로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초대 개인전을 열었다.

최근 안동에 문을 연 솔바위 사진 상설 SB갤러리 내부 모습. [사진 송의호]

최근 안동에 문을 연 솔바위 사진 상설 SB갤러리 내부 모습. [사진 송의호]

고성(강원도) 부채바위송. [사진 김휘동 사진작가]

고성(강원도) 부채바위송. [사진 김휘동 사진작가]

작가는 전직이 공무원이다. 청와대와 내무부 등 중앙정부를 거쳐 경상북도청에서 30년을 근무하고 지방 1급 공무원으로 명예퇴직했다. 이후 고향에서 민선 안동시장을 두 차례 지냈다. 그는 대구에 있던 경북도청을 안동으로 옮긴 주역이다. 김 전 시장은 안동시장 재선 뒤 한 번 더 해야 한다는 여론을 뒤로 한 채 퇴계 이황의 가르침처럼 물러남의 미학을 실천했다.

그리고는 관청 쪽으로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사진을 배운 뒤 산을 찾아다녔다. 그것도 소일거리가 아닌 솔바위를 찾아 나선 치열한 제2의 구도(求道) 인생이었다. 솔바위와의 인연은 내무부 산악회장 시절 맺어졌다. 전국의 명산에서 바위 위 소나무를 만나면서 고고한 기운을 곁에 두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고 한다.

은퇴 후에 사진을 통해 그 간절함을 메운 것이다. 그가 숱한 시간을 기다려 찍은 ‘고성 부채바위송’ ‘장기 바다 솔바위’ ‘용봉산 마애솔바위’ ‘월출산 바람폭포 솔바위’ 등을 보노라면 신비감이 절로 전해진다. 그동안 출사만 350여 회에 이른다. 그가 최근 펴낸 사진집에는 솔바위를 찾아다니며 생사를 넘나든 체험이 기록되어 있다.

장기(포항) 바다 솔바위. [사진 김휘동 사진작가]

장기(포항) 바다 솔바위. [사진 김휘동 사진작가]

작가는 최근 서울의 집을 처분하고 고향 안동 송천에 아담한 사진전문 SB갤러리를 열었다. 인근에 안동향교‧안동대가 있는 솔바위 사진 상설 갤러리다. 작가는 안동 두메산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소나무와 함께 20여 년을 살았다. 이후 공무원이 돼 서울 변두리를 전전하며 송파(松坡)에서 20년을 살았다. 공직에서 물러난 뒤 고향으로 돌아와 송현(松峴)에서 20년을 보내고 마지막으로 송천에 정착한 것이다.

대구한의대 교수‧중앙일보 객원기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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