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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임대주택, 강남·역세권에 번듯하게 지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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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현석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한국부동산분석학회 회장

이현석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한국부동산분석학회 회장

주택 문제 해법을 놓고 진보·보수가 한목소리를 내는 정책이 있다.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다. 보금자리주택·행복주택 등 정권마다 이름과 성격이 달랐지만,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 기조는 30여년간 흔들리지 않았다. 현 정부는 재건축 등 도심 주택 공급 확대를 천명하면서 수도권에 총 127만 호를 공급하겠다는 8·4대책을 발표했다. 과천청사·태릉골프장·용산정비창·강남 서울의료원 부지에 대규모 공공임대주택 건설을 약속했다.

혐오시설 안되게 역세권 등에 건립 #양적 공급에서 질적 관리로 바꿔야

이후 과천·마포·용산·노원 등 지역구민과 여권 지자체장, 지역 국회의원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겉으로는 교통·교육 등 주거 환경 악화, 공원화 요구, 4차 산업혁명 대비 첨단업무시설 건립 필요성 등을 이유로 든다. 그러나 속내는 내 지역에 공공임대주택은 안 된다는 님비(Not In My Back Yard, 유해 시설이 주변에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것) 의식이 깔렸다.

역대 정부가 일관되게 추진한 공공임대주택 확대가 혐오시설 양산으로 인식되는 건 큰 문제다. 올해 국가의 공공임대주택 보유 물량은 OECD 평균인 8%에 이른다. 2025년까지 주택 재고의 10%가 목표다. 국가 차원에서 확대하려 하는데 해당 지역에서는 싫어하는 임대주택이라면 성과가 반감된다.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양적 목표에 치중해 10평 내외 초소형으로 다닥다닥 붙여 분양주택과 분리해 지은 결과다. 건설과 관리 수준이 민간 아파트와는 현격히 차이가 난다. 유수지나 철로 위 등 외지거나 효용이 떨어지는 지역에 많이 짓다 보니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다. 재건축 등 민간 아파트 건립에 강제해 공급한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의도적 차별도 한 요인이다.

이번 기회에 양적 공급에서 질적 관리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정부는 2025년까지 공공임대주택 240만 호를 지어 임차 가구의 25%를 거주하게 할 계획이다. 목표 달성은 가능할지 모르나 관리의 질 저하와 빈집 증가 위험이 커진다. 공공임대주택의 부정적 인식을 해소하지 않으면 빛 좋은 개살구가 되기 쉽다.

감당 가능한 수준에서 원하는 지역에, 원하는 수준으로의 질적 개선이 급선무다. 120만 호 이상의 공공임대주택을 보유한 한국토지주택공사는 그로 인한 손실이 매년 1조 원에 달한다.

막대한 공급과 적절한 운용 관리를 하려면 투자 재원이 있어야 한다. 일정 주거 수준 이상의 공공임대주택 건립·관리를 위한 국민공모 리츠 도입을 검토할 때다. 용도 전환과 용적률 상향이라는 공공 권한을 활용해 전 국민이 공공임대주택 투자와 수익을 공유하는 방안이다. 시장에 풀린 유동성 자금의 회수 효과도 기대된다. 리츠를 운용하는 공공임대주택 관리회사 설립도 고려해야 한다. 상호 경쟁을 통한 질적 개선은 공공임대주택 인식 개선에 필요하다.

주거 품질과 건립 지역도 다양화해야 한다. 취약 계층에 대해서는 최저 주거 수준 만족이 목표다. 하지만 청년 계층과 신혼부부 등 입주 대상자들이 선호하는 지역에 품질·서비스가 향상된 임대주택 공급은 시대적 요구다. 인센티브를 통해 재건축 등 민간 참여를 유도하고 품질 개선에 대한 역할과 부담을 나누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기지인 첨단 업무와 산업단지의 성공은 첨단 인재 유입에 달려있다. 실리콘밸리로 대표되는 샌프란시스코나 런던 테크시티 같은 도시는 젊은 인재들이 놀고 먹고 즐기고 일하며 살 수 있는 곳에 모이면서 시작됐다.

필자가 일본에 출장 가 민간임대주택 리츠 관계자에게 “임대주택을 어디에 짓느냐”고 물었더니, “선호 지역이나 지하철역 3분 거리 이내”라는 답을 들었다.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없애려면 강남 등 선호 지역과 역세권에 번듯하게 짓고 잘 관리해야 한다.

이현석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한국부동산분석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