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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일 지침 개정, 대·소형 정찰위성 확보로 발전시켜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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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4차 한·미 미사일 지침 개정으로 우리를 옥죄던 족쇄가 풀렸다.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은 지난달 27일 우주발사체의 고체연료 사용 제한 규정을 해제한다고 밝혔다. 한국 기업과 연구소는 물론 개인도 다양한 연료를 활용한 우주발사체를 연구·개발·생산·보유할 수 있게 됐다.

정찰위성 확보 5기서 대폭 늘리고 #첨단 미사일 조기 개발에 매진해야

1979년 한·미 합의로 마련된 미사일 지침은 주로 한국의 탄도·순항미사일과 우주발사체에 대해 탄두 중량과 사거리, 연료 종류를 제약했다. 국력 신장과 안보 환경 변화로 2001·2012·2017년 등 3차례에 걸쳐 지침이 개정됐고, 이번 개정으로 한국의 미사일 주권은 거의 회복됐다.

우주발사체 연료 문제는 한국의 우주 개발에 큰 제약 요소였다. 액체연료는 제약이 없었지만, 고체연료는 100만 파운드·초의 추력으로 한정됐다. 이 정도로는 500㎏ 탄두를 가진 발사체를 300㎞ 정도밖에 운반하지 못한다. 우주발사체를 쏘려면 적어도 5000~6000만 파운드·초의 추력이 필요한데 지침의 제약으로 고체연료 사용은 꿈도 꾸지 못했다.

물론 중궤도나 고궤도에서 운용할 위성이라면 고체연료보다 추력이 좋은 액체연료가 적합하지만, 500~2000㎞ 정도의 저궤도에서 운용할 위성이라면 고체연료가 훨씬 효율적이다. 액체연료보다 구조가 간단하고 제작비도 10분의 1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고체연료를 탄도미사일에 사용한다면 연료 보관이 쉽고 발사 시간도 단축할 수 있다.

이번 개정으로 우리는 우주 인프라 건설의 제도적 토대를 마련할 수 있게 됐다.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미국의 민간 우주개발업체 스페이스X가 보여주듯 이제는 우주항공산업이 정부 기관으로부터 민간 벤처기업으로 넘어가고 있다. 세계 우주산업의 규모도 2040년에는 1조 달러로 전망된다. 이번 개정으로 한국도 민간용 우주 발사체 분야의 다양한 시장 창출과 함께 우주산업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게 됐다.

둘째, 독자적 군사 정보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전쟁 억제력 확보는 물론 전시작전권 전환을 촉진할 수 있게 됐다. 한국은 전술적 수준의 정보 획득 수단은 있으나 전략 정보를 획득할 수 있는 수단은 거의 없다. 미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보·감시·정찰 수단(ISR)의 핵심은 군사 위성이다. 한국이 대형 위성과 함께 소형 정찰위성 수십 기를 한반도 상공에서 운용한다면 북한의 움직임을 거의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전쟁 억제력을 높임은 물론 한·미 연합 방위를 주도할 수 있는 핵심 군사 능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는 전시작전권 전환을 촉진할 수 있다.

셋째,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보유가 가능해졌다. 인공위성과 탄도미사일의 기술은 근본적으로 같다. 우주로 나가느냐, 대기권으로 다시 들어오느냐의 차이만 있다. 따라서 인공위성 발사 능력이 곧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능력을 의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체연료를 활용한 인공위성 발사로 인해 파생되는 기술은 한국의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개발 역량을 강화해 줄 것이다. 800㎞라는 탄도미사일 사거리 제한 규정은 남아있지만, 미국의 대중국 견제 차원에서 보면 이것도 곧 개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개정이 남긴 숙제도 있다. 우선 정부는 우주산업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될 수 있도록 관련 법들을 정비하거나 제정해야 한다. 군은 5기의 정찰위성을 확보하는 425사업을 재검토해 수십 기의 대·소형 정찰 위성 확보로 확대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또 주요국들이 회피 기동할 수 있는 극초음속 비행체를 실전 배치하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해 첨단 미사일의 조기 개발에도 매진해야 할 것이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