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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대 曰] 그 여름바다 ‘침묵의 소리’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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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9호 30면

배영대 근현대사연구소장

배영대 근현대사연구소장

인기 최정상을 달리던 지난여름의 바닷가를 다시 찾아와 추억에 잠긴 톱스타들, 혼성 그룹 싹쓰리가 가요 차트를 휩쓸고 있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유두래곤(유재석), 린다G(이효리). 비룡(비) 이 세 명의 초특급 멀티 엔터테이너는 신곡 ‘다시 여기 바닷가’에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네가 있었기에 내가 빛나” 싹쓰리 노래 #남 탓만 하는 정치권 성찰 계기 됐으면

“이제는 말하고 싶어 / 네가 있었기에 내가 더욱 빛나 / 별이 되었다고.” 90년대 댄스 음악의 흥겨운 복고 리듬에 맞춰 뜨거웠던 여름 바닷가의 추억이 새록새록 돋아나며 춤을 춘다. 그때는 왜 이런 말을 하지 못했을까, 정상에 올라갈 땐 땅 밑의 풀은 잘 보이지 않는다.

내가 지금 혼자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는 것은 일종의 자각이다. 함께 사는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것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다가오는 일종의 성숙함이기도 하다. 하늘의 별이 혼자 빛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런 경험을 톱스타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삶의 뜨거운 시절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 나에게 그 여름 바닷가는 어디였던가. 화려함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두움도 있고 쓸쓸함도 있다. 온통 나밖에 모르고, 나만 잘난 줄 알고 우쭐대던 부끄러운 자화상이 떠오른다.

이번 주 여론조사에서 집권 여당의 지지율이 많이 떨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영원한 권력은 없다. 오르막이 있었기에 내리막도 있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소위 ‘조국 백서’라는 책이 며칠 전에 출간됐다. 지난해 이맘때부터 온 나라를 둘로 쪼개며 시끄럽게 했던 이른바 ‘조국 사태’를 되돌아본 책인데, ‘조국 수호’ 진영의 입장이 담겨 있다.

책 속에는 ‘남 탓’이 많이 보인다. 내 잘못은 없고, 잘못된 것은 대부분 네 탓이거나 사회적 구조 탓으로 돌렸다. 온갖 변명 뒤에는 적개심과 증오의 칼날이 번득인다. 나라를 이끌어가는 집권 세력의 일원이란 느낌이 들지 않는다. 책을 보다가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이 승용차 뒤에 붙이고 다니기까지 했던 ‘내 탓이오’가 새삼 떠올랐다. 김 추기경이 진짜 바보라서 모든 게 내 탓이라고 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집권 여당과 조국 수호파의 지난여름 바닷가는 어디였을까. 이 책을 출간하기 전에 그 바닷가를 한번 가보는 게 좋았을 뻔했다. 그러면 좀 달랐을 것이다. 싹쓰리가 노래했듯이, 네가 있었기에 내가 있고, 당신 덕분에 내가 별이 될 수 있었다는 고마움을 조금이라도 표현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 마음이 열리면 바닷가 파도에 밀려온 작은 미역 한 조각도 소중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동안 무심코 지나치곤 했던 길가의 작은 꽃들이 다시 새롭게 다가온다.

너무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언제나 바꿀 시간은 있다. 마음이 없을 뿐이다. 남은 시간 동안 좀 더 잘하기 위해서는 그 여름 바닷가에서 들려오는 ‘침묵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만 들어선 안 된다. 민심의 바다 깊은 곳에 유유히 흐르는 소리는 의도적으로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는다. 침묵의 소리는 자연을 닮았다. 이번에 기록적인 폭우가 자연의 위력을 보여주었다. 오만함은 자연의 적이다.

린다G가 싹쓰리 와중에 물구나무 요가 동작 사진을 한장 인스타그램에 공개하면서 그 밑에 이런 제목을 달아 놓았다. ‘흔들리는 세상에서 나만의 중심 잡기’.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일까. 지난여름 바닷가에 가보는 것은 나만의 중심을 잡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특별한 시간에만 가는 것은 아니다. 바로 지금이 그 시간일지도 모른다. 중심 잡기는 린다G에게만 필요한 것도 아니다. 싹쓰리를 감상하거나 갈라진 정치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 개개인이 다 자신만의 중심을 잡을 줄 알았으면 좋겠다.

배영대 근현대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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